“성과 없으면 예외 없이 칼질”…재정사업 ‘역대급 대수술’
2487개 사업 전수조사 … 10개 중 4개 ‘감액·통폐합’ 확정
7.7조원 규모 지출 구조조정… 최근 5년 평균 대비 2배 이상
공무원 통근버스 폐지 등 ‘국민 눈높이’서 낭비 요소 걷어내
정부가 국민 세금이 투입되는 재정사업에 대해 유례없는 고강도 ‘메스’를 들이댔다. 성과가 미흡하거나 관행적으로 지속된 사업을 과감히 정리해 나라살림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겠다는 의지다. 그동안 해왔던 자율평가 대신 외부 전문가 중심의 평가위원회를 구성, 평가과정 자체를 객관화했다는 점도 특색이다.
19일 기획예산처에 따르면 전날 재정성과위원회 심의를 거쳐 ‘2026년도 통합 재정사업 성과평가’ 결과를 확정 발표했다. 이번 평가는 단순히 수치를 맞추는 요식행위를 넘어, 민간 전문가들이 주도해 재정사업의 실효성을 원점에서 재검토한 ‘재정 개혁’의 신호탄으로 풀이된다.
◆“성역은 없다” = 이번 평가의 가장 큰 특징은 ‘역대 최대 규모’와 ‘절대평가 방식의 도입’이다. 평가 대상이 된 2487개 사업(예산 규모 185조4000억원) 중 감액, 폐지, 통합 등 구조조정 판정을 받은 사업은 총 901개로 전체의 36.2%에 달한다. 이는 최근 5년 평균 구조조정 비율인 15.8%의 두 배를 훨씬 웃도는 수준이다.
정부가 이처럼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나선 이유는 명확하다. 재정 여건이 넉넉하지 않은 상황에서 기존의 비효율적인 지출을 줄이지 않고서는 미래 성장을 위한 새로운 투자가 불가능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우석진 통합재정사업평가 단장은 “과거 상대평가 방식에서 벗어나, 사업의 필요성과 성과를 절대적인 기준으로 검증하다 보니 구조조정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어떤 사업이 깎였나 = 구조조정 대상으로 분류된 구체적인 사례를 보면 정부의 단호한 의지가 읽힌다.
우선 858개의 관행적 지원 사업이 철퇴를 맞았다. 특히 수도권 지역 공무원 통근버스는 지하철 등 대중교통 접근성이 충분하다는 점을 감안해 폐지하기로 했다. 세종청사 등 취약 지역 위주로 재편된다.
국가 금연 지원 서비스 역시 사업 계획의 구체성이 미흡하고 다른 사업과 대상이 중복된다는 지적에 따라 예산이 감액됐다. 청년도약계좌사업은 신규 가입 중단에도 불구하고 유보금이 과다하게 쌓여 있어 지출 효율화 대상으로 선정됐다.
정부 개입 명분이 사라진 사업 3건도 폐지된다. 3D 프린팅 산업 육성사업은 민간의 기술 역량이 이미 충분히 향상돼 정부가 더 이상 직접적인 예산을 들여 지원할 필요성이 낮아졌다고 판단했다. 이밖에도 제주해양치유센터 건립, 서울도시철도 전동차 증차 한시 지원 사업 등이 폐지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기후부의 노후 공동주택 세대별 점검과 전기설비 안전점검 사업은 관리 체계가 유사함에도 별도로 운영되던 것을 하나로 합쳐 행정 효율을 높이기로 했다.
◆7.7조 지출 구조조정 효과 = 이번 평가로 절감되는 예산 규모는 최대 7조7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구조조정 규모(1조3000억원)의 6배에 달하는 파격적인 수치다.
평가 결과는 발표로 끝나지 않는다. 각 부처는 이번 달 말까지 기획예산처에 제출할 ‘2027년 예산요구서’에 이번 감액 계획을 의무적으로 반영해야 한다. 만약 불가피한 사유로 예산을 줄이지 못할 경우에는 이유를 담은 ‘미반영 사유서’를 작성해 ‘열린재정’ 홈페이지에 공개해야 하는 등 국민의 직접적인 감시를 받게 된다.
한편 성과가 뛰어난 ‘우수 사업’에는 확실한 인센티브를 부여한다. 평가단이 선정한 우수 사업은 다음 해 성과평가를 면제해주고, 특히 국민 체감도가 높은 최우수 사업은 대국민 투표를 거쳐 해당 사업 담당자에게 별도의 포상을 실시할 계획이다.
정창길 기획예산처 성과평가국장은 “이번 통합평가는 재정지출의 사각지대를 없애고 국민의 눈높이에서 정책 효과를 전면 재검증한 첫 사례”라며 “앞으로도 돈만 쓰고 성과 없는 사업은 철저히 가려내 재정의 주인인 국민에게 그 혜택이 온전히 돌아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