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쿠바를 해방하고 있다”
라울 카스트로 기소 압박
쿠바 “정치적 날조” 반발
중남미 정세 새 변수 부상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쿠바 혁명의 핵심 주역이자 실질적 최고 권력자로 평가받는 라울 카스트로 전 대통령을 전격 기소하며 쿠바 정권에 대한 압박 수위를 한층 끌어올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우리는 쿠바를 해방하고 있다”고 선언했고, 미국 법무부는 1996년 쿠바 공군의 민간 항공기 격추 사건과 관련해 올해 95세인 카스트로 전 대통령을 포함한 쿠바 지도부 6명을 기소했다.
이번 조치는 경제 제재, 외교 압박에 이어 쿠바 혁명의 상징적 인물까지 형사처벌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쿠바 전략이 정권 교체를 겨냥한 전면적 공세 국면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 법무부에 따르면 카스트로 전 대통령은 1996년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 기반을 둔 쿠바 망명단체 ‘구출의 형제들(Brothers to the Rescue)’이 운용하던 경비행기 2대를 쿠바군이 격추하도록 지시한 혐의를 받는다. 이 사건으로 미국 시민권자와 영주권자 등 4명이 사망했다. 당시 카스트로는 쿠바 국방부 장관이었다.
토드 블랜치 법무장관 대행은 “카스트로가 자발적으로 오든 다른 방식으로 오든 미국 법정에 서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 사건이 유죄로 인정될 경우 최대 사형 또는 종신형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코네티컷주 해안경비대사관학교 졸업식 후 기자들과 만나 “카스트로 기소는 많은 쿠바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라며 “우리는 쿠바를 해방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군사행동 가능성에는 선을 그었다. 그는 쿠바와의 긴장 고조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그럴 일은 없을 것이며 그럴 필요도 없다”며 “쿠바는 이미 무너지고 있고 정권은 통제력을 잃었다”고 주장했다.
이번 기소의 상징성은 매우 크다. 카스트로 전 대통령은 형 피델 카스트로, 혁명가 체 게바라와 함께 1959년 쿠바 혁명을 성공시킨 핵심 인물이다. 1959년부터 약 반세기 동안 국방장관을 지냈고, 2008년부터 2018년까지 대통령직을 맡았다. 공식 은퇴 이후에도 실질적 최고 권력자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쿠바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디아스카넬 대통령은 이번 기소를 “법적 근거가 전혀 없는 정치적 행위”라고 규정하며 “미국의 군사적 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한 날조”라고 비난했다.
그는 1996년 격추 사건에 대해 “쿠바 영공을 반복적으로 침범한 테러리스트들에 대한 정당방위였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실제로 95세의 카스트로 전 대통령이 미국 법정에 설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본다. 그럼에도 트럼프 행정부가 기소를 강행한 것은 쿠바 지도부를 심리적으로 압박하고 체제 내부 균열을 유도하기 위한 정치적 카드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미국은 최근 쿠바에 석유를 공급하는 국가와 기업을 제재하며 사실상 전면 봉쇄에 가까운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이로 인해 쿠바 전역에서 대규모 정전이 이어지고 있으며, 식량과 의약품 부족, 교통 마비, 쓰레기 적체 등 경제·사회 위기가 심화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쿠바 제재가 얼마나 지속될지를 묻는 질문에 “두고 보자. 곧 발표하게 될 것”이라고 말해 추가 조치를 예고했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