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서울, 지방 정체성을 분명히 할 때다

2026-05-26 13:00:02 게재

올해 서울특별시의 본예산 규모는 51조4778억원에 달한다. 부산 대구 광주 대전 울산 등 5개 주요 광역지자체 예산을 합친 것보다 많다. 권한과 위상도 차원이 다르다. 서울시장은 전국 지자체장 가운데 유일하게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에 고정멤버로 참석한다. 외견상 서울은 ‘지방’이 아니라 또 하나의 ‘중앙’처럼 보인다.

그러나 안을 들여다보면 한계가 분명하다. 껍데기는 거대하지만 본질은 하나의 지방자치단체에 지나지 않는다. 서울 지하철을 운영하는 서울교통공사의 누적 적자를 두고 벌어지는 정부와의 실랑이가 단적인 예다. 서울시는 법정 노인 무임승차로 인한 적자보전을 위해 중앙정부에 줄기차게 국비 지원을 요구하고 있지만 기획재정부와 국토교통부 문턱을 넘지 못한다. 심지어 서울시는 행정안전부 승인 없이는 국장급(2급) 조직 하나 신설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이러한 모순적 지위 속에서 기묘한 갈등이 싹튼다. 서울시가 중앙정부에 예산과 지원을 촉구할 때마다 다른 지방정부들은 “배부른 소리를 하고 있다”며 볼멘소리다. 서울로 국비가 흘러간다고 해서 내 지역에 올 돈이 줄어드는 구조가 아님에도, 왜 다른 지자체들은 서울의 예산 확보 소식에 소외감과 시샘을 느낄까. 이유는 명확하다. 그동안 서울이 덩치에 걸맞은 ‘맏형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서울의 번영과 이해관계가 지역의 삶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느끼는 탓이다.

서울의 번영 떠받치고 있는 지방의 희생

사실 서울은 자력으로는 하루도 유지될 수 없는 도시다. 서울시민이 매일 마시는 수돗물은 경기 남양주시 등 한강 상류 지역 주민들이 수십년간 수변구역 개발제한이라는 막대한 재산권 침해를 감내해 준 대가다. 매일 쏟아지는 서울의 생활폐기물 처리 역시 인천에 있는 수도권매립지에 절대적으로 의존해왔다.

에너지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서울의 전력 자립률은 고작 14% 안팎이며 신재생에너지 전력 자립률은 0.6%로 전국 최하위 수준이다. 서울이 쓰는 전력의 88%는 충남 당진의 화력발전소나 해안가의 원자력발전소에서 송전선로를 타고 먼 길을 거슬러 올라온 것들이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인공지능(AI) 시대 도래로 급증할 전력을 감당하기 위해 경기도와 울산, 전남 등지의 발전소에서 수도권으로 전기를 끌어올리려면 천문학적인 비용과 주민 반발을 수반하는 송전탑 건설이 필수적이다.

물과 쓰레기, 전기만이 아니다. 서울의 빌딩숲을 채우는 청년인재들 역시 지방의 교육 인프라가 비용을 들여 키워낸 뒤 서울로 송출한 ‘지방의 자산’이다. 서울은 전국 지자체들에게 갚기 힘든 막대한 빚을 지고 있다. 이들 지역의 헌신과 협력이 끊어지는 순간 서울의 도시 기능은 단 하루도 유지될 수 없다.

그럼에도 지방선거철에 지역과 공존을 이야기하는 후보나 캠프는 찾아보기 힘들다. 오직 표를 의식해 ‘서울시민’만을 겨냥한 단기성 공약과 개발 정책만 쏟아낼 뿐이다. 그나마 한 후보가 4개 광역 지자체와 상생협약을 맺었지만 이 또한 구체적인 협력 내용을 담고 있진 못하다. 서울이 계속 독보적 지위만 누리려 든다면 지방소멸은 곧 서울의 자원고갈과 비용폭탄이라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

서울시장 후보들, 상생 시나리오 제시해야

서울이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 서울은 중앙정부가 아닌 지방정부의 일원이다. 서울 위주 사고에서 벗어나 자신을 지탱해 주는 타 지자체들을 향해 구체적이고 실사구시적인 ‘상생 시나리오’를 던져야 할 때다.

서울이 낸 세금의 일부를 상류 원수 지역이나 발전소 주변 지역의 복지와 환경개선을 위해 과감히 파이프라인으로 연결하는 ‘공동 번영 프로젝트’가 가동되어야 한다. 수도권 폐기물과 전력, 물 문제를 공동으로 해결하는 광역 협력모델을 만들고 서울의 재정과 행정역량을 지역과 연결하는 상생 프로젝트를 적극 추진해야 한다. 여야 정치권 역시 서울만의 이해를 넘어 국가 전체 균형과 공존의 관점에서 힘을 모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진영논리를 떠나 거대 여야 정당이 먼저 국회와 현장에서 힘을 모아야 한다. 지방과의 상생은 시혜성 시도가 아니라 서울의 생존전략이기 때문이다. 서울시장이 국무회의에 참석하는 진정한 의미도 여기에 있다.

서울만 생각하는 서울시장, 서울만 생각하는 유권자로는 더 이상 지속가능한 도시를 만들기 어렵다. 서울이 전국을 향해 상생의 시나리오를 제시할 때 비로소 서울은 ‘특별한 도시’를 넘어 신뢰받는 동료 지방정부로 인정받게 될 것이다.

이제형 자치행정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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