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이란, 네오콘 세력을 균열시키나
미국이 주도한 이란전쟁이 예상과 달리 장기화되면서 국제사회는 물론 워싱턴 내부에서도 “미국이 전략적으로 패배하고 있다”는 평가가 확산되고 있다. 특히 이 같은 진단이 반전진영만이 아니라, 과거 이라크·리비아·시리아 전쟁을 설계했던 네오콘(neocon, 신보수주의) 세력 내부에서조차 나오고 있다는 점은 매우 상징적이다.
전쟁 초기 미국과 이스라엘은 압도적 군사력으로 단기간 내 이란을 굴복시킬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전쟁이 시작된 지 한달 만에 영국 언론 인디펜던트는 “이란이 명백한 승자”라고 평가했다. 미국의 공세가 기대한 성과를 내지 못했고, 오히려 트럼프행정부가 출구전략을 찾고 있다는 분석이었다. 이후 미국 주류언론들도 점차 비슷한 평가를 내놓기 시작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적어도 현재까지 이란전쟁은 실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미국, 이란의 외통수에 걸리다(Checkmate in Iran)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이란은 여전히 대부분의 미사일 전력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 인근 33개 미사일 기지 가운데 30곳을 계속 운용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에너지 시장의 핵심 요충지다. 전쟁 이전 전세계 거래 원유의 약 20%가 매일 이 해협을 통과했다. 이란은 미국의 공격 이후 해협 통제를 강화했고, 중국 러시아 인도 등 우호국 선박에는 통행을 허용했다. 미국은 해상봉쇄를 시도했지만 미국 정보당국조차 이란이 수개월 동안 이를 견딜 수 있다고 인정했다.
문제는 이 전쟁이 군사적 충돌을 넘어 글로벌 경제위기로 번지고 있다는 점이다. 원유공급 차질로 국제유가가 급등했고, 이는 전세계 인플레이션 압력을 더욱 자극하고 있다. 비료 공급망도 흔들리면서 식량 생산차질 우려까지 커지고 있다. 실제로 많은 국가에서 에너지와 식량 가격이 동시에 불안정해지고 있다. 미국 정보기관은 또 이란이 중동 지역 미군기지 상당수에 심각한 피해를 입혔다고 평가했다. 트럼프행정부는 이를 부인했지만 정보기관 관계자들의 지속적인 정보유출은 오히려 전쟁상황이 예상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신호로 해석된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네오콘 진영 내부의 균열이다. 미국 외교안보 매체 애틀랜틱은 최근 “미국, 이란의 외통수에 걸리다(Checkmate in Iran)”라는 제목의 글을 실었다. 작성자는 로버트 케이건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이다. 그는 2003년 이라크 침공을 적극 지지했던 대표적 네오콘 이론가이며, 미국 패권전략의 핵심 싱크탱크인 ‘미국신세기프로젝트(PNAC)’ 공동 창립자다. PNAC에는 딕 체니, 폴 울포위츠, 존 볼턴 등 부시행정부 핵심인사들이 대거 참여했다. 이들은 미국이 압도적인 군사력을 통해 세계 질서를 유지해야 한다는 강경한 패권주의 노선을 추구해왔다.
케이건은 이번 글에서 매우 이례적인 평가를 내놓았다. 그는 “현재 이란과의 충돌에서의 패배는 복구하거나 무시할 수 없는 성격”이라며 “현상유지로 돌아갈 수 없게 됐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통제력을 기반으로 중동의 핵심국가로 부상하고 있으며, 중국 러시아 같은 이란 우방의 전략적 입지도 강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반면 “미국은 용맹함을 보여주기는커녕 스스로 시작한 일을 마무리하지 못하는 신뢰할 수 없는 국가로 비춰지고 있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무엇보다 케이건은 미국과 이스라엘이 37일 동안 대규모 공습을 퍼부었음에도 이란 정부를 붕괴시키지 못했고, 실질적 양보조차 얻어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란이 단순히 방어에 성공한 수준이 아니라 걸프지역 전체 에너지 인프라를 위협할 수 있는 전략적 지렛대를 확보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이란의 제한적 공격만으로도 걸프 산유국들의 석유·가스시설이 수년, 심지어 수십년 동안 타격을 받을 수 있으며, 이는 장기 글로벌 경기침체와 경제재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결국 “미국의 패배는 세계적 리더십 자체가 붕괴하는 신호탄”이라고 결론지었다.
“미국 패배는 세계적 리더십 붕괴 신호탄”
이번 전쟁은 단순한 중동지역 분쟁을 넘어 미국 패권체제의 한계를 드러내는 사건으로 확대되고 있다. 미국은 오랫동안 군사력과 달러 중심 금융질서를 기반으로 국제질서를 주도해왔지만 이제는 장기전 수행 능력과 국제적 신뢰 모두에서 균열조짐을 보이고 있다. 반대로 중국 러시아와 글로벌사우스 국가들은 미국 중심 단극체제의 약화를 새로운 기회로 활용하고 있다. 이번 전쟁은 미국 중심 세계질서가 흔들리고 다극질서가 본격적으로 부상하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되고 있다.
박진범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