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발 인플레이션에 월급이 녹는다

2026-05-27 13:00:28 게재

휘발유·항공료 급등에 실질소득 감소

유럽중앙은행에선 금리인상론도 부상

중동전쟁이 선진국 가계의 지갑을 다시 압박하고 있다. 임금은 오르고 있지만 휘발유와 항공료 등 생활물가가 더 빠르게 뛰면서 실제 구매력은 줄어드는 나라가 늘고 있다. 2022년 에너지 충격 이후 회복되던 실질임금 흐름이 호르무즈해협 폐쇄 충격으로 다시 꺾이고 있다.

뉴욕시 브루클린 크라운 하이츠 지역의 리들 슈퍼마켓에서 사람들이 쇼핑을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파이낸셜타임스(FT) 26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미국의 4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연 3.8%로 뛰었다. 반면 시간당 평균임금은 1년 전보다 3.6% 오르는 데 그쳤다. 미국에서 물가상승률이 임금상승률을 앞지른 것은 2년 만이다. 월급 액수는 늘었지만 실제 구매력은 줄어든 셈이다.

영국도 비슷하다. 보너스를 제외한 평균임금은 3월까지 3개월 동안 실질 기준 연 0.1% 증가에 그쳤다. 앞으로 물가가 더 오르면 감소세로 돌아설 가능성이 크다. 영국은 실업률이 오르고 빈 일자리는 5년 만의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충격의 중심에는 에너지가 있다. 중동전쟁으로 호르무즈해협이 막히면서 원유와 정유제품 공급 우려가 커졌고, 휘발유와 항공료가 빠르게 올랐다. 다이앤 스웡크 KPMG 미국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전쟁은 공급망을 뒤흔들고 있으며, 해협이 내일 다시 열린다 해도 물가를 이전보다 더 높게 밀어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유로존도 안심하기 어렵다. 유럽 노동자들은 2022년 물가급등으로 잃었던 구매력을 이제 막 회복하던 중이었다. 그러나 에너지 충격이 다시 닥치면서 회복세가 멈출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컨설팅회사 판테온 매크로이코노믹스의 클라우스 비스테센은 2026년 유로존 실질임금 증가율이 제로에 가까울 것으로 내다봤다. 프랑스처럼 재정 여력이 부족한 나라에서는 실질임금이 이미 “큰 폭 마이너스”일 수 있다고 했다.

정책당국의 고민도 커졌다. 가계가 소비를 줄이면 전쟁이 성장률에 주는 충격이 더 커질 수 있다. 반대로 노동자들이 물가상승을 보전받기 위해 더 높은 임금을 요구하면 에너지 가격이 내려간 뒤에도 물가압력이 오래 남을 수 있다.

유럽에서는 금리인상 논의도 커지고 있다. FT에 따르면 유럽중앙은행(ECB)의 주요 인사들은 6월 금리인상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자벨 슈나벨 ECB 집행이사는 중동전쟁이 만든 에너지 충격에 대해 “더 이상 일시적 충격으로 보고 넘기는 것은 선택지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오늘 시점에서 보면 6월 금리인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시장도 올해 0.25%씩 두 차례 금리인상을 반영하고 있다. 이 경우 유로존 기준금리는 2.5%로 올라 2025년 3월 이후 최고 수준이 된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네덜란드 중앙은행 총재인 올라프 슬레이펀 ECB 정책위원도 ECB가 물가를 목표치로 되돌리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투자은행 JP모건의 마이클 페롤리 미국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실질임금 감소가 “전적으로 중동분쟁 때문”이라며 호르무즈해협이 다시 열리고 에너지 가격이 내려가면 실질임금도 다시 늘 수 있다고 봤다. 그러나 스웡크 이코노미스트는 높은 물가가 “기업 수익성을 악화시키고 고용시장에도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컨설팅회사 캐피털이코노믹스의 앤드루 케닝햄 유럽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이번 충격이 2022년 에너지 위기보다는 작지만 유로존 경제가 완만한 침체에 빠질 가능성이 커졌다고 진단했다. 그는 “경제가 더 크게 타격을 받을수록 실질임금 회복은 더 느려진다”고 말했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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