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형 보복범죄, 집중 단속에도 확산
텔레그램서 행동대원 공개 모집 … 경찰 “조직형 플랫폼 범죄 수준”
“월 1000만원 가능. 검거율 최하.”
최근 텔레그램 기반 ‘보복대행’ 조직 모집 글에 등장한 문구다. 조직원 검거 직후에도 이들은 “처리반 항시 대기 중”이라는 표현과 함께 새 행동대원을 공개 모집했다. 간장 투척과 래커칠, 개인정보 유포 같은 사적 보복이 온라인 중개 구조와 결합하면서 범죄가 하나의 ‘서비스 시장’처럼 확산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7일 경찰 등에 따르면 전날 전북 남원의 한 아파트에서는 현관문에 간장이 뿌려지고 래커로 문구가 적힌 사건이 발생했다. 현관문에는 ‘보이스피싱 보복’ ‘연대’ 등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경찰은 실제 보복대행 조직 연계 여부와 함께 모방범죄 가능성도 열어두고 수사 중이다.
같은 날 서울 구로경찰서는 타인의 주거지에 간장을 뿌리고 벽면에 래커칠을 한 20대 행동대원을 구속 송치했다. 이 남성은 범행 대가로 약 80만원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해당 조직이 텔레그램 대화방에서 의뢰자와 실행자를 연결한 정황도 확인했다.
최근 한달 사이 서울 강북구와 구로구, 경기 의왕시, 인천 서구, 부산, 남원 등 전국 곳곳에서 유사 범행이 이어지고 있다. 범행 방식도 비슷하다. 특정인의 집 현관문이나 외벽에 간장·오물 등을 뿌리고 붉은 래커칠을 하거나 협박성 문구와 개인정보 출력물을 붙이는 방식이다.
일부 사건에서는 가족 정보까지 함께 노출된 것으로 전해졌다. 피해자들은 현관문 훼손보다 “누군가 집 주소와 가족관계를 알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더 무섭다”고 호소한다.
특히 일부 피해자는 새벽 시간 현관문 공격 이후 외출 자체를 두려워하는 등 일상생활 불안을 호소하고 있다.
경찰은 이 범죄를 단순 재물손괴 사건이 아니라 플랫폼 기반 조직범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서울경찰청 광역범죄수사대는 온라인상에서 활동 중인 보복대행 업체 2곳을 특정해 내사에 착수했다. 경찰은 광고 게시자와 개인정보 제공자, 행동대원뿐 아니라 의뢰자까지 범죄단체 일원으로 보고 수사하겠다는 방침이다.
실제 범행은 의뢰·모집·실행이 분리된 구조로 운영되는 양상이다. 텔레그램 등 익명 채널에서 의뢰자가 범행을 주문하면 중간 연결책이 실행자를 확보하고 행동대원은 건당 수십만원을 받고 범행을 수행하는 방식이다. 일부 사건에서는 개인정보 제공책과 실행자, 총책까지 역할이 세분화된 정황도 확인됐다.
최근에는 범죄 진입장벽 자체도 크게 낮아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조직들은 “팔다리만 달려 있으면 된다”는 식으로 미성년자까지 행동대원으로 끌어들였고 “신고율 15% 미만” “검거율 낮다”는 표현으로 범죄 참여를 부추겼다. 온라인 익명성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기반 모집 구조, 익명 결제 방식이 결합되면서 범죄 확산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개인정보 범죄와 결합하는 양상도 뚜렷하다. 경찰은 배달 애플리케이션 외주업체 등을 통한 개인정보 유출 가능성을 수사 중이다. 최근에는 주민등록증 사진과 이름·전화번호·주소 등을 텔레그램에 공개하는 이른바 ‘박제방’ 방식까지 등장했다. 단순 오물 투척을 넘어 개인정보 범죄와 사이버 협박, 스토킹 범죄가 결합하는 양상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문제는 범죄가 조직화됐지만 처벌 체계는 여전히 개별 범죄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현재 대부분 사건에는 주거침입·재물손괴·협박 혐의가 적용된다.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보복범죄는 형사사건 관련 보복에만 적용돼 개인 원한 기반 범죄에는 적용이 쉽지 않다. 결국 실제 총책이나 의뢰자보다 행동대원 중심 처벌이 반복되는 구조다.
텔레그램 대화방 삭제 기능과 가상자산 결제 구조까지 결합되면서 상선 추적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일부 조직은 상품권으로 받은 돈을 테더코인 등 가상자산으로 전환해 자금 흐름을 숨긴 것으로 전해졌다.
전문가들은 이 범죄가 이미 ‘시장 구조’를 형성했다고 진단한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의뢰·모집·실행이 분리된 플랫폼 구조가 형성되면 참여자만 바뀌며 범죄가 계속 반복된다”며 “금전 대가가 형성되면서 범죄가 거래 형태로 고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찰은 현재까지 관련 피의자 50여명을 검거하고 14명을 구속했다. 대통령실도 강경 대응에 나섰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5일 “보복을 부탁하는 사람도, 실행하는 사람도 모두 중대범죄자”라며 엄정 대응을 지시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단속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범죄는 이미 조직형·플랫폼형으로 진화했지만 처벌은 여전히 재물손괴 중심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조직형 보복 범죄에 대한 별도 처벌 규정과 개인정보 유출 차단, 플랫폼 기반 범죄 중개 행위 규제 등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함정수사 도입과 범죄단체조직죄 적용 확대 필요성도 제기된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