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혜현의 중남미 톺아보기
밀레이의 친이스라엘 외교, 국익인가 정치인가
지난 4월 중동전쟁의 긴장이 고조되던 시기,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예루살렘으로 향했다. 밀레이 취임 후 세번째 이스라엘 방문이었다. 한 국가가 특정 우방과 전략적 관계를 강화하는 것 자체를 문제삼을 수는 없다. 그러나 아르헨티나처럼 국제질서에서 제한된 영향력을 가진 중견국의 외교적 핵심은 가능한 한 많은 외교적 공간을 유지하고 국가의 위험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최근 밀레이의 이념화된 외교적 행보가 아르헨티나의 선택지를 좁힐 수 있다고 우려한다. 미국과 이스라엘에는 강한 신뢰를 줄 수 있지만 동시에 유럽과 중남미,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과의 관계에서는 불필요한 부담과 마찰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표면적으로 보면 밀레이의 친미·친이스라엘 외교는 이념적 선택처럼 보인다. 실제로 그는 국제정치를 “서방문명 대 반서방세력” “자유세계 대 사회주의” “문명 대 테러”라는 구도로 설명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는 유대-기독교 문명과 자유시장 경제를 강조하며 자신을 서방 자유주의 진영의 전사처럼 묘사한다.
그러나 그의 외교를 단순한 이념의 문제로만 보는 것은 현실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밀레이의 급진적인 외교노선 변화는 아르헨티나의 만성적 경제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생존전략이자, 동시에 국내 정치의 연장선이라는 점을 함께 봐야 한다.
밀레이의 급진적인 외교노선 변화
밀레이의 이스라엘 방문에서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단순한 친이스라엘 발언이나 전쟁 중 예루살렘 방문 자체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이번 행보를 통해 아르헨티나 외교의 방향과 국가 정체성을 근본적으로 바꾸려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한 외교 이벤트가 아니라 전통적인 중남미식 균형 외교에서 공개적 진영 외교와 가치 외교로 이동하려는 선언에 가까웠다.
특히 이번 방문은 시점 자체가 상징적이었다. 중동전쟁의 긴장이 최고조로 치닫고 국제사회가 조심스럽게 거리두기와 중립적 메시지를 유지하려 하던 순간 밀레이는 오히려 예루살렘으로 향했다. 그는 스스로를 “세계에서 가장 시온주의적 대통령”이라고 표현했고, 이란을 “아르헨티나의 적”이라고 규정했다. 이는 단순한 우방 지지 차원을 넘어 “아르헨티나는 더 이상 중립을 지향하지 않겠다”는 정치적 선언이었다고 볼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이 중남미 전체가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중남미 국가들은 오랫동안 비동맹과 전략적 모호성, 실용주의 외교를 통해 강대국 사이에서 자율성을 확보해왔다. 미국과 협력하면서도 완전하게 종속되지 않고, 동시에 중국·유럽·글로벌사우스와의 관계를 유지하는 다변화 전략이 중남미 외교의 기본원칙이었다. 이는 단순한 이상주의가 아니라 국제질서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현실적 생존 전략이었다.
그러나 밀레이는 오늘날 세계를 더 이상 중립과 균형이 가능한 공간으로 보지 않는다. 그에게 오늘날 국제질서는 더 이상 과거처럼 여러 진영 사이에서 유연하게 줄타기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미중 전략경쟁은 경제와 안보, 기술과 공급망을 하나의 진영 문제로 묶고 있고, 우크라이나전쟁은 서방과 러시아 사이의 대립을 장기화시켰다. 여기에 중동갈등까지 겹치면서 세계정치는 점점 “누구와 같은 편인가”를 묻는 방향으로 재편되고 있다.
이런 인식 속에서 밀레이는 전통적인 중립외교를 더 이상 현실적인 선택지로 보지 않는다. 모호한 균형이 오히려 불신을 낳고, 국제금융시장과 미국의 전략적 신뢰를 얻는 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따라서 그의 전략은 모두와 적당히 잘 지내는 외교보다 차라리 미국·이스라엘과 확실한 동맹이 되는 것이다. 서방진영에 분명히 서야 투자와 금융지원, 안보협력, 기술협력에서 실질적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의 친이스라엘 행보는 단순한 외교적 호감 표현이 아니라 아르헨티나가 앞으로 어느 국제질서에 속할 것인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선택에 가깝다.
경제위기 돌파 위한 생존전략
밀레이의 친미·친이스라엘 노선은 아르헨티나의 만성적인 경제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전략과 직접 연결되어 있다. 아르헨티나는 오랫동안 인플레이션과 외환 부족, 국가신용도 하락, IMF 부채 문제에 시달려 왔다. 밀레이정부의 긴축정책과 시장개혁 역시 국민들에게 상당한 사회적 고통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밀레이는 단순한 국내개혁만으로는 경제회복이 어렵다고 판단하는 듯하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국제금융시장과 미국의 신뢰이며, 바로 그 점에서 미국과 이스라엘 편에 분명히 서겠다는 외교적 메시지는 경제전략과 직접 연결된다. 밀레이는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 안으로 보다 확실하게 들어가야 투자와 금융 신뢰를 얻을 수 있다고 본다. 즉 친이스라엘 행보는 단순한 중동정책이 아니라 사실상 워싱턴을 향한 정치적 신호에 가깝다. 시장개방과 민영화, 규제완화와 긴축정책을 성공시키려면 해외자본이 아르헨티나를 신뢰해야 한다.
그는 “아르헨티나는 중국·러시아·이란 쪽이 아니라 미국·이스라엘·서방 진영에 속한다”는 메시지를 반복함으로써 투자자들에게 예측가능한 국가 이미지를 심으려 하고 있다. 또한 이스라엘과의 협력은 농업기술과 물관리, 방산, 사이버보안, 첨단 스타트업 분야에서의 실질적 협력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결국 그의 친이스라엘 외교는 국제금융과 기술, 안보협력을 묶어 경제회복의 기반을 만들려는 계산이 깔려 있는 셈이다.
자신의 국내 정치 브랜드 강화 의도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외교가 지나치게 국내 정치와 결합하고 있다는 점이다. 밀레이의 친이스라엘·친미 행보의 이면에는 경제위기와 정치적 불안 속에서 자신의 지지층을 결집시키고 국내 정치의 주도권을 유지하려는 계산이 강하게 깔려 있다.
급격한 긴축정책과 생활비 상승으로 국민들의 불만이 커지는 상황에서 그에게 필요한 것은 지지층을 계속 결집시킬 수 있는 강력한 정치적 서사와 지도자 이미지다. 그는 경제적으로는 고통스럽더라도 “우리는 가치와 문명의 전쟁에서 올바른 편에 서 있다”는 정치적 서사를 구축하고자 한다.
특히 아르헨티나 국내에서 친이스라엘 노선은 반좌파 정치와 긴밀히 연결된다. 좌파와 페론주의 진영이 가자전쟁과 이스라엘 문제에 상대적으로 비판적 태도를 보이는 상황에서, 밀레이는 자신을 반좌파·반사회주의·친시장자유주의·친서방 지도자로 더욱 선명하게 부각시키고 있다.
또한 아르헨티나는 중남미 최대 규모의 유대인 공동체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들은 경제·사회·문화·언론 분야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친이스라엘·반이란 노선은 밀레이가 자신의 정치 브랜드를 강화하고 정치적 서사를 만드는 중요한 기반이다.
여기에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일어난 1992년 이스라엘 대사관 폭탄테러와 1994년 AMIA 유대인센터 테러라는 역사적 기억도 결합된다. 밀레이는 이를 현재의 안보문제와 연결하며 이란에 대한 강경노선을 정당화하는데 사용한다. 즉 친이스라엘 외교를 단순한 이념이 아니라 반테러와 국가안보의 문제로 만든다. 이는 단기적으로 지지층 결집에 상당한 정치적 효과를 가져올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아르헨티나의 외교적 자율성과 안보위험을 키울 가능성도 결코 작지 않다.
결국 밀레이의 친이스라엘 노선 강화는 일정한 경제적·전략적 실익을 기대할 수 있는 선택인 동시에 상당한 외교적·안보적 위험을 동반하는 도박적 선택이기도 하다. 문제는 아르헨티나처럼 국제질서에서 제한된 영향력을 가진 중견국에게 필요한 것이 과연 선명한 진영외교인지, 아니면 가능한 한 많은 선택지를 유지하는 균형외교인지에 있다. 외교는 신념만으로 운영될 수 없다. 특히 중견국일수록 더욱 냉정한 계산과 절제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