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셈법에 밀려…22대 국회 강간죄 개정안 발의 ‘전무’

2026-05-28 13:00:41 게재

2018년 미투 땐 10건 발의, 지금은 ‘0건’

‘안티 성평등’ 정치 지형 속 법 개정 지연

22대 국회가 개원한 지 2년이 지났지만 ‘비동의 간음죄’ 법안은 단 한건도 발의되지 못했다. 형법상 강간죄의 판단 기준을 가해자의 ‘폭행·협박 여부’에서 피해자의 ‘동의 여부’로 바꾸자는 시민사회의 요구가 오랫동안 지속돼 왔으나 입법부는 법률 개정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현재 22대 국회에서 강간죄 구성요건 변경을 위한 형법 개정안은 1년 전인 2025년 3월 정춘생 조국혁신당 의원, 정혜경 진보당 의원실 등에서 이미 성안을 마친 상태다. 하지만 법안 제출을 위한 최소 요건인 ‘의원 10명 이상의 찬성 동의’를 얻지 못해 발이 묶여 있다.

27일 국회에서 열린 ‘동의 기준의 성폭력 형사법체계, 우리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나’ 토론회에서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22대 국회가 시작된 지 2년이 된 지금 대한민국 국회는 젠더폭력 법률 개정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고 있다”면서 “많은 의원실을 만났으나 대선, 지선 등 선거가 끝나면 법안 개정을 검토하겠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입법 공백의 배경에는 최근 몇 년간 심화된 ‘안티 성평등’ 정치 지형이 자리 잡고 있다. 2020년 박원순 서울시장의 성추행 사건이 발생한 데 이어 2022년 대선에서 여성가족부 폐지와 성폭력 무고죄 강화를 공약으로 내건 윤석열 후보가 당선되면서 관련 공론장은 급격히 축소됐다.

정치권에 형성된 ‘안티 성평등’ 지형은 법 개정을 가로막는 강력한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김 소장은 “2024년 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민의힘과 개혁신당이 강간죄 개정 정책을 반대하고 나서자 더불어민주당은 이 주장에 영향을 받아 공약에서 강간죄 개정 의제를 감췄다”고 지적했다. 거대 양당이 표심을 의식해 직무를 유기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불과 몇년 전만 해도 국회의 분위기는 지금과 달랐다. 지난 2018년 시작된 ‘미투 운동’의 영향으로 관련 법안 발의가 활발히 이뤄졌었다. 당시 20대 국회에서는 자유한국당(4건), 더불어민주당(3건), 민주평화당(1건), 바른미래당(1건), 정의당(1건) 등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초당적으로 총 10개의 개정안이 발의됐다. 21대 국회에서도 더불어민주당(2건), 정의당(1건) 등 총 3개의 법안이 제출되며 논의의 불씨가 이어졌었다.

국회가 안티 성평등 기류와 선거 표 계산에 묶여 법 개정을 미뤄온 사이 과거 우리와 유사하게 보수적인 법 체계를 유지하던 프랑스와 일본은 이미 형법을 개정해 강간죄의 성립 기준을 ‘동의 여부’로 전환했다.

이날 손 솔 진보당 의원은 축사를 통해 “지금 우리나라 형사법 체계에서 성범죄 피해자는 자신의 권리가 침해당한 사람이라기보다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끊임없이 설명해야 하는 위치에 놓인다”면서 “상대의 침묵이나 체념을 함부로 동의로 간주하지 않는 사회, 성적 관계에서 서로의 의사를 확인하고 존중하는 것이 기본이라는 사회적 기준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소원 기자 hope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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