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의 시계엔 독립의 역사가 흐른다
UTC보다 5시간 45분
빠른 독자 시간대 사용
국기·달력도 세계 표준과 달라
인도와 중국 사이 히말라야 산악국가 네팔은 세계에서 가장 독특한 시간 체계를 사용하는 나라 가운데 하나다. 세계 표준시보다 5시간 45분 빠른 ‘네팔 표준시’를 쓰는데 인접국 인도보다도 15분 앞서 있다.
대부분 국가가 1시간 또는 30분 단위 시간대를 사용하는 가운데 네팔의 ‘15분 차이’는 단순한 행정편의 이상이다. 강대국 사이에서도 독자 정체성을 지켜온 국가적 상징이라는 해석이 많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27일(현지시간) ‘세계와 늘 15분 어긋난 나라’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네팔의 독특한 시간·달력 체계와 그 배경에 깔린 역사적 자의식을 조명했다.
네팔 수도 카트만두에서는 뉴욕보다 9시간45분이 빠르다. 예컨대 뉴욕이 오후 8시40분이면 카트만두는 다음 날 오전 6시25분이다. 이 시간 시장 상인들은 채소를 진열하고 힌두교·불교 수행자들은 향과 버터등을 밝힌다.
독자성은 시간에만 그치지 않는다.
네팔 국기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직사각형이 아니다. 히말라야 산봉우리를 형상화한 두 개 삼각형 형태다. 공식 달력 역시 국제 표준인 그레고리력이 아니라 힌두 전통에 기반한 ‘비크람 삼밧(Bikram Sambat)’을 사용한다. 이에 따라 현재 네팔의 공식 연도는 2083년이다.
유엔 주재 네팔대사를 지낸 외교관 자야 라즈 아차리아는 NYT에 “네팔인은 수세기 동안 독립을 유지했고 단 한 번도 식민 지배를 받지 않았다는 점에 큰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네팔의 정체성은 지정학적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 인도와 중국 사이에 끼어 있으면서도 티베트나 시킴처럼 주변 강대국에 흡수되지 않았다. 영국 제국주의가 아시아를 분할하던 시기에도 산악 지형과 전사 집단을 기반으로 독립을 유지했다.
현재의 네팔 표준시는 1986년 공식 도입됐다. 기준 경도는 히말라야 봉우리 가우리샹카르산을 지난다. 현지에서는 “네팔 시간은 늘 15분의 여유를 준다”는 농담도 있다. 극심한 교통체증과 느린 생활 리듬으로 유명한 카트만두의 현실을 반영한 말이다.
달력 역시 종교·천문 전통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비크람 삼밧은 태양과 달의 움직임을 함께 반영하는 체계로, 매년 정부가 승인한 점성술사·천문학자 위원회가 새해 시작 시점을 결정한다. 새해는 보통 4월 중순 시작되며, 달마다 날짜 수가 해마다 달라질 수 있다.
네팔 사회에는 티베트 불교 달력과 네와르(Newar)족 달력 등 다양한 시간 체계도 공존한다. 정부 문서는 비크람 삼밧을 사용하지만 국제 업무와 여권에는 그레고리력을 병행한다. 최근에는 서로 다른 달력을 자동 변환해주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도 널리 쓰인다.
NYT는 “세계와 15분 어긋난 네팔의 시계는 단순한 시간 체계가 아니라 강대국 사이에서 살아남아온 산악국가의 독립 선언처럼 보인다”고 전했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