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나타날 엘니뇨, 세계 경제 덮친다
식량·에너지 가격 압박
중동전 이어 또다른 변수
올해 엘니뇨 현상이 다시 나타날 가능성이 커지면서 세계 경제의 새로운 부담으로 떠오르고 있다. 중동 전쟁 여파로 에너지와 물가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폭염과 가뭄, 홍수까지 겹치면 식량과 에너지 가격이 다시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다.
월스트리트저널(WSJ) 28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미국 등 주요 기상 당국은 올해 엘니뇨가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엘니뇨는 열대 태평양의 무역풍이 약해지고 바닷물이 따뜻해질 때 발생한다. 보통 몇 년에 한 번씩 나타나며 최대 1년가량 이어지고, 연말 무렵 강해지는 경우가 많다. 아시아에는 고온과 건조한 날씨를, 미국 걸프 연안 등 일부 지역에는 많은 비를 가져오는 식이다.
문제는 이번 엘니뇨가 기후변화로 더워진 지구 위에서 발생한다는 점이다. 지난 2022~2023년 엘니뇨 때도 충격은 컸다. 인도는 쌀 수출을 금지했고, 뎅기열이 확산됐으며, 파나마운하 수위가 낮아졌다. 브라질에서는 대규모 홍수가 발생했고, 코코아 작황 부진으로 초콜릿 가격도 올랐다.
가장 먼저 흔들릴 수 있는 곳은 아시아 농업과 에너지 시장이다. 아시아 농민들은 이미 디젤과 비료 가격 상승에 시달리고 있다. 여기에 엘니뇨로 폭염과 가뭄이 심해지면 작황이 나빠지고 식량 가격이 오를 수 있다. 인도는 이미 심한 폭염을 겪고 있으며, 올해 몬순 강수량도 평년보다 적을 것으로 전망된다.
에너지 시장도 불안하다. BNP파리바의 원자재 전략가 제이슨 잉은 아시아에서 냉방용 전력 수요가 늘면 액화천연가스(LNG) 수요가 추가로 커질 수 있다고 봤다. 그는 “아시아의 냉방 수요가 늘면 LNG 물량이 유럽 대신 아시아로 갈 수 있다”며 “이 경우 유럽은 겨울 난방철을 앞두고 가스 비축을 충분히 하지 못할 수 있다”고 말했다.
폭염이 심해지면 냉방 전력 수요가 늘어난다. 동시에 가뭄은 수력발전 생산을 줄인다. 이 경우 천연가스와 석탄 발전 의존도가 커질 수 있다. WSJ는 지난 엘니뇨 때 중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전했다.
농산물 가격도 다시 불안해질 수 있다. 지난 엘니뇨 때 가나와 코트디부아르 등 주요 생산지의 건조한 바람이 코코아 작황을 망치면서 초콜릿 가격이 뛰었다. 코코아 선물 가격은 최근에야 당시 이전 수준으로 돌아왔지만 다시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설탕과 천연고무 등 다른 농산물 가격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다만 일부 작물 생산 지역은 오히려 비가 늘어 혜택을 볼 수도 있다.
전문가들은 엘니뇨 자체보다 더워진 지구와 결합할 때 충격이 커진다고 본다. 호주 모나쉬대학교의 기후과학자 앤드루 왓킨스는 현재 인도 폭염에는 엘니뇨 시작이 영향을 줬을 수 있지만, 유럽 폭염은 직접 관련이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엘니뇨의 영향이 더 뜨거워진 지구에서 증폭되고 있다며 “화석연료 연소 때문에 이미 높아진 극단적 사건 가능성에 대한 위험 증폭기”라고 말했다.
엘니뇨는 단순한 기상 현상이 아니라 물가, 전력, 식량, 물류를 동시에 흔드는 경제 변수다. 중동 전쟁으로 세계 경제가 이미 에너지 충격을 겪는 상황에서 엘니뇨가 겹치면 소비자 물가와 기업 비용 압박은 더 커질 수 있다. 올해 세계 경제의 다음 시험대는 중앙은행 회의장뿐 아니라, 태평양의 수온과 아시아의 하늘에도 걸려 있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