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 무면허 부담금 강화’ 후 사고 줄었다
2022년 법 개정 이후 감소세
5년 만에 1000억원 밑으로
2022년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자배법)이 개정되면서 음주운전, 사고 후 미조치(도주·뺑소니), 무면허, 마약 및 약물 투약 후 운전을 하다가 사고를 낸 운전자의 사고부담금이 상향됐다. 그 결과 관련 사고가 크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형사처벌 강화와 사회적 인식 개선도 작용했지만, 보험업계에서는 이른바 ‘금융치료가 답’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금융치료란 개인이나 기업의 잘못에 대해 위자료나 벌금 등 경제적 책임을 무겁게 묻는 것을 의미한다.
29일 내일신문이 삼성화재·메리츠화재·현대해상·KB손해보험 등 4개 주요 손해보험사의 2020~2025년 음주 무면허 뺑소니 마약·약물 등 중대 위반 보험사고에 대한 구상사고와 구상금액 추이 를 집계한 결과, 2025년에만 2만6702건, 954억3934만원에 달했다.
사고 1건당 평균 357만원의 보험금이 지급된 셈이다.
전체 손보사의 데이터를 모두 확보한 것은 아니지만, 경찰청이 집계한 음주운전 사고가 2022년 1만5059건에서 매년 감소해 2025년 1만351건을 기록한 추이와도 유사하다.
◆대형 사고 내도 달랑 400만원 = 사고부담금 제도는 매년 논란이 됐다. 2020년까지만 해도 음주운전으로 사고를 내면 피해자와 피해 차량 규모에 상관없이 운전자가 대인 300만원, 대물 100만원만 내면 나머지 피해는 보험사가 모두 떠안았다. 음주운전으로 인한 대형 사고로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의 피해가 발생해도 사고 운전자가 부담하는 금액은 최대 400만원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는 보험사의 손해율 악화는 물론, 안전운전을 하는 선량한 보험가입자들의 보험료 부담으로 이어졌다. 마약 및 약물 복용 후 운전하다가 대형사고를 내도 보험사가 전액 부담했다. 마약이나 약물 복용 후 발생하는 사고들이 사회적 이목을 끌면서 2020년에야 비로소 운전자가 사고부담금을 책임질 수 있게 됐다.
이후 사고 운전자의 부담은 매년 늘어났다. 음주운전의 경우 2022년 6월 대인Ⅰ 1000만원, 대인Ⅱ 1억원, 대물 의무보험 500만원, 대물 임의보험 5000만원으로 증가했다. 이어 한 달 뒤인 2022년 7월 28일부터는 음주운전과 뺑소니, 무면허, 마약·약물 등으로 사고를 내면 대인Ⅰ과 대물 의무보험은 지급 보험금 전액을, 대인Ⅱ는 1억원, 대물 임의보험은 5000만원을 운전자가 직접 부담하도록 강화됐다.
◆음주운전 압도적 = 유형별로는 음주운전 사고가 전체 70%를 차지하고 있다. 폐쇄회로TV(CCTV) 및 블랙박스 보급으로 인해 뺑소니는 두드러지게 감소했다.
2025년 기준 4개 보험사가 사고 운전자에게 구상금을 청구한 사고는 음주(1만9305건) 무면허(5901건) 뺑소니(1438건) 마약·약물(58건) 등 총 2만6702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2020년 4만1105건에 비해 35%나 줄어든 수치다. 마약·약물 사고는 2022년부터 집계됐다. 발생한 차량 사고는 1건이더라도, 보험사에서는 피해자와 피해 차량을 각각 1건으로 나눠 통계를 잡는다.
보험사가 집계한 구상금액은 2022년이 1429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최근 6년 중 최대치다. 이후 감소세로 돌아서며 지난해 954억원을 기록했다. 사고 1건당 평균 피해액은 2022년 378만원에서 2023년 397만원으로 올랐다. 2024년부터는 감소세로 전환했다.
보험업계에서는 인명 사고에 따른 치료비 상승과 첨단 기능을 갖춘 차량 보급 확대로 인한 부품값·공임 인상이 전체 피해액 상승을 견인한 것으로 분석했다.
종목별 평균 피해액을 보면 음주운전은 2022년 약 420만원에서 2025년 396만원으로 줄었다. 마약·약물은 229만원에서 183만원, 뺑소니는 358만원에서 353만원으로 각각 감소세를 보였다. 반면 무면허 운전은 216만원에서 233만원으로 오히려 상승하는 추세다.
◆미지급에는 소송으로 대응 = 음주나 뺑소니, 무면허, 마약·약물 운전 등으로 사고가 발생하면 보험사가 우선 피해자의 치료비와 차량 수리비를 지급한 뒤, 사고 운전자에게 구상권을 행사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사고 운전자가 보험금이 피해자의 치료비와 수리비를 지급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지만 대형 사고의 경우 감당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패가망신했다’는 사건들이 상당하다.
지난해 5월 경기도에서 술에 취해 운전하던 A씨가 4중 추돌사고를 냈다. A씨가 가입한 B보험사는 우선 1억5000만원의 보험금을 피해자 등에게 지급했다. 2020년 전이라면 A씨가 보험사에 낼 사고부담금은 400만원에 불과했겠지만, 이제는 전액을 내야 한다. 특히 중상자 1명이 후유장해 등을 이유로 소송을 제기한 상태여서 A씨가 책임져야 할 사고부담금은 2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현재까지 A씨가 B보험사에 지불한 비용은 전체의 5% 수준인 1000만원에 불과하다. 이에 B보험사는 A씨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2023년 경기도에서 음주운전 사고를 낸 C씨도 비슷한 처지다. C씨의 사고로 D손해보험사는 대물 7000만원, 대인 900만원 등 8000만원가량 보험금을 지급했다. C씨는 사고부담금을 일부 납부했지만 이내 잠적했다. D보험사는 C씨와 연락이 두절되자 바로 민사소송을 제기했고, C씨는 최근 보험금 전액을 입금했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자동차보험이 음주운전을 한 가입자까지 보호해 주는 측면이 있었으나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며 “형사처벌도 무섭지만 강력한 경제적 불이익이 음주·뺑소니·무면허·마약 운전 등을 예방하는 데 큰 효과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오승완 기자 osw@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