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열보다 먼저 무너진 안전
붕괴 위험신호에도 달린 열차 59대
거더 침하·균열 확인 뒤에도 운행 지속 … 구명줄 미착용 정황까지 드러나
경찰, 서소문고가 붕괴 수사 속도 … 구조물 결함 넘어 안전관리 체계 규명
서소문고가 붕괴 전 교량 핵심 구조물인 거더가 내려앉고 균열이 발견됐지만 사고 직전까지 59대의 열차가 고가 아래 철로를 통과했다. 경찰과 국토교통부는 구조물 붕괴 원인과 함께 위험 신호가 확인된 뒤 보고와 판단, 안전조치가 적절하게 이행됐는지에 수사 초점을 맞추고 있다.
29일 국토부와 서울시, 한국철도공사(코레일) 등에 따르면 사고 당일인 26일 새벽부터 붕괴 직전까지 사고 구간 아래 철로를 통과한 열차는 모두 59대였다. KTX 등 고속열차 28대와 전동열차 31대가 지나갔다. 붕괴 5분 전에는 승객 42명을 태운 KTX가, 붕괴 1분 30초 전에는 무궁화호가 해당 구간을 통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전문가들은 붕괴 시점이 조금만 달랐거나 구조물이 철도 방향으로 떨어졌다면 대형 철도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국토부는 서울시가 사고 전 고가 상부에서 약 2.9㎝ 높이차(단차)를 확인하고도 코레일 등에 즉시 통보하지 않았는지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코레일은 단차 발생 사실이나 안전진단 계획을 서울시 또는 시공사로부터 전달받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관련 사실관계는 국토부 조사와 경찰 수사를 통해 확인될 전망이다.
사고 직전 현장에서는 거더 침하와 균열이 확인되자 감리단장과 시공사 현장관리소장, 외부 구조기술사 등이 현장 확인에 나섰다. 그러나 점검 도중 구조물이 붕괴하면서 이들 3명이 추락해 숨졌다.
숨진 이들은 현장 안전과 구조 안정성을 판단하는 책임자들이었다. 침하와 균열 원인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비계에 올라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현장에서도 이상 징후를 심각하게 받아들였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안전관리계획 이행 여부도 주요 쟁점이다. 국토안전관리원이 국회에 제출한 안전관리계획서에 따르면 시공사는 작업자가 세트앙카를 설치한 뒤 구명줄과 안전블록, 카라비너 등을 연결해 추락을 방지하도록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사고 당시 현장 점검에 나선 관계자들은 안전모와 방진복, 장갑 정도만 착용했고 구명줄 등 추락방지 장비는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계획 자체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제대로 이행됐는지가 쟁점이 되고 있는 셈이다.
사고 이후에는 서울시와 코레일, 국가철도공단 사이의 책임 공방도 이어지고 있다.
서울시는 철도 운행 중 공사가 제한돼 야간 3시간 정도만 작업할 수 있는 여건이었다고 설명했다. 최대 확보 가능한 작업시간 확대를 요청했지만 철도 관련 기관과 협의 과정에서 제한을 받았다는 것이다.
반면 코레일은 안전을 위해 열차 운행이 중단된 심야시간에 공사를 시행하도록 협의해 왔다고 반박했다. 또한 야간작업은 서울시측이 먼저 제안한 방식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때문에 향후 조사에서는 침하 발견 이후 보고 체계뿐 아니라 공사 일정과 작업시간 설정, 공사 방식 결정 과정까지 함께 검증 대상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도 28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이번 사고를 언급하며 철저한 진상 규명과 책임 규명을 주문했다. 이 대통령은 “우리 사회 일각에는 안전보다 돈, 안전보다 효율을 중시하는 못된 관행이 여전하다”며 “국민 안전에 앞장서야 할 공공부문이 관련됐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크다”고 말했다.
경찰은 사고 당시 폐쇄회로(CC)TV 영상을 확보해 분석 중이다. 이상 징후 발견 시점과 현장 대응 과정, 안전수칙 준수 여부 등을 확인하고 있다. 경찰 수사도 본격적인 강제수사 단계에 들어갔다. 서울경찰청 광역범죄수사대는 29일 서울시 도시기반시설본부를 비롯해 원청업체와 하청업체 본사, 현장사무실 등 모두 7곳에 대해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경찰은 서울지방고용노동청 근로감독관과 함께 총 53명을 투입해 공사 관련 문서와 안전관리 자료 등을 확보하고 있다. 확보된 자료를 토대로 위험 신호 발견 이후 보고 체계와 안전관리계획 이행 여부, 작업 중지 판단 과정 등을 집중적으로 확인할 방침이다.
이번 사고로 3명이 숨지고 공무원 등 3명이 다쳤다.
전문가들은 경찰의 압수수색이 시작되면서 수사가 구조물 붕괴 원인 규명을 넘어 안전관리 책임 규명 단계로 확대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고가 특정 현장의 관리 부실을 넘어 공공 인프라 안전관리 체계를 점검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침하와 균열이라는 경고가 있었지만 보고와 판단, 안전조치가 적절하게 연결되지 못했다면 단순한 구조물 붕괴가 아니라 안전관리 체계 전반의 문제로 기록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