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까지 힘 몰아준 민심…‘1년반 정책 골든타임’ 열렸다
6·3 지방선거 여당 승리 … 내년 말까지 선거 없는 정치공백기
5극3특·공공기관 추가이전 등 발표에 과감한 구조개혁까지 예고
여당 압승 아닌 ‘신승’ … “속도전 보다 여론과 발맞춘 정책을”
지방선거가 여당의 승리로 마무리됐다. 이에 따라 이재명정부 2년 차를 맞은 대한민국 경제가 미래 수십 년의 운명을 가를 분수령을 맞이하고 있다. 내년 말까지 약 1년 반 동안은 전국 단위의 대형 선거가 없는 이른바 ‘정치적 공백기’이자 ‘정책 집중기’이기 때문이다.
선거철마다 반복되는 표심 의식용 정책에서 벗어나, 국가미래 체질개선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지만 표를 잃을 수도 있는 과감한 구조개혁을 밀어붙일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기도 하다.
4일 정부 고위관계자는 “앞으로 1년6개월을 ‘경제대도약의 골든타임’으로 보고 그동안 수면 아래에서 다듬어온 구조개혁 카드를 제시하고 국민과 함께 추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번 지방선거 결과가 당초 예고된 ‘여당의 압승’이 아닌 ‘신승’이란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야당의 지지부진에도 여당에 표를 주지 않은 국민들이 상당수 이른다는 점도 함께 확인됐기 때문이다. 명분이 있는 정책이라 하더라도 국민과 소통하지 않는 경우엔 언제든 큰 반발과 갈등을 자초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코스피 8800선 안착 속 거시지표 최고조 = 국민주권정부 출범 1주년 직후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선거 뒤 개혁드라이브’에 대한 국정인식의 일단을 드러냈다. 구 부총리는 “6월 이후는 우리 경제의 체질을 바꾸고 잠재성장률 반등의 기반을 마련할 골든타임”이라며 혁신·구조개혁의 주도권을 확실하게 가져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실제 재경부는 이달 말쯤 ‘하반기 경제성장전략’을 발표하며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대폭 상향 조정할 전망이다. 최근 반도체 슈퍼 사이클에 힘입어 지난달 수출액이 전년 동월 대비 53.2% 증가한 877억5000만달러를 기록하는 등 역대급 실적을 경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달 수출 증가율은 1984년 1월 이후 42년 4개월 만에 가장 높았다. 반도체 수출액(371억 6000만달러)은 1년 전보다 169.4% 급증했다. 이에 따라 한국은행과 한국개발연구원(KDI) 등은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각각 2.6%, 2.5%로 일제히 상향 조정했다.
이러한 반도체 기반의 전례 없는 경기 회복세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는 금융시장이다. 지난 2일 코스피 지수는 8801.49에 마감하며 ‘코스피 8000 시대’에 안착하는 흐름을 이어갔다. 이재명 대통령 취임일인 지난해 6월 4일 코스피 종가(2770.84)와 비교하면 1년 만에 가파른 폭으로 수직 상승한 수치다.
◆고환율·고물가 ‘복합 위기’ 상존 = 그러나 한국 경제에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대외 여건은 여전히 불확실성 투성이다. 민생의 하방 위험도 상존한다.
우선 중동전쟁 장기화로 인한 공급망 불안이 물가를 계속 자극하고 있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5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3.1%를 기록하며 26개월 만에 3% 벽을 뚫었다. 특히 석유류 물가가 24.2% 폭등해 3년 10개월 만에 최대 상승 폭을 기록했다. 물가의 기조적 흐름을 보여주는 근원물가 역시 2.5%로 상방 압력이 지속되는 모양새다.
외환시장 분위기는 한층 더 엄중하다. 원달러 환율은 주간거래 종가 기준 12거래일 연속 1500원대에 머물며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기록을 넘어섰다. 고환율은 원자재와 에너지, 식료품 수입 가격을 다 불려 가뜩이나 가파른 물가 부담을 부채질하는 요인이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의 올해 성장률을 2.6%로 높여 잡으면서도, 한국 정부가 시행 중인 최고가격제와 유류세 인하 등 한시적 물가안정 조치들을 단계적으로 폐지할 것을 권고했다. 이런 조치가 길어지면 가격 신호를 왜곡해 물가인상을 자초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정부로서는 민생 체감물가 안정을 도모하면서도 개혁의 방향성에 맞춰 지원 조치를 조율해야 하는 딜레마에 직면한 셈이다.
◆반도체만 웃는 ‘K자형 양극화’ = 또 다른 문제는 반도체 중심의 급격한 경제회복 과정에서 나타난 ‘K자형 양극화’다. 거시지표의 호황이 아직 민생 전반으로는 온기가 확산되지 않고 있음이 통계로 증명되고 있다.
실제 지난 1분기 제조업 생산은 전 분기보다 3.0% 증가했지만 반도체를 제외한 생산 증가율은 0.2%에 그쳤다. 서비스업 역시 금융시장 호조로 금융·보험업 생산은 14분기 만에 최대 폭으로 증가한 반면, 서민 경기와 직결된 숙박·음식점업, 예술·스포츠·여가 관련 서비스업은 오히려 감소했다.
분배 지표도 좋지 않다. 1분기 균등화 처분가능소득 5분위 배율(소득 상위 20%와 하위 20%의 배율)은 6.59배로 고공행진하며 2020년 1분기(6.89배) 이후 가장 큰 격차로 벌어졌다.
고용시장 역시 지난 4월 청년층 고용률이 전년 동기 대비 1.6%p 하락하며 24개월 연속 내리막길을 걷는 등 심각한 고용 양극화가 진행 중이다.
◆압도적 다수가 동의하는 정책부터 = 이때문에 정부가 준비 중인 교육재정개혁이나 2차 공공기관 추가 이전, 5극3특 지정 등 굵직한 과제들이 자칫 출발부터 이해관계자들의 반발을 부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경제지표가 주는 ‘화려한 착시’에 갇혀 일방강행식 정책 드라이브를 밀어붙이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OECD가 한국의 내년도 성장률이 다시 1.9%로 주저앉을 것으로 예측했듯, 반도체 외의 내수 엔진이 모두 꺼져 있는 구조적 한계가 명확하기 때문이다.
생산과 소득·고용 등 경제 전 분야에서 가시화되는 ‘K자형 양극화’를 방치한 채 구조개혁을 강행하면 국민공감대를 얻지 못하고 국민저항이란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 당장 교육재정 교부금을 손질하는 교육재정 개혁이나 지역 이해관계가 얽힌 공공기관 이전은 정교한 여론 수렴 없이는 정쟁의 늪에 빠지기 십상이다. 김대규 대한변협 인권위원장(법무법인 티와이로이어스)은 “정부가 추진하는 구조개혁의 정당성은 거시지표가 아니라, 국민의 실제 삶을 얼마나 안정시키느냐에 따라 확보된다”면서 “일방적인 속도전보다는 여론과 발맞추어 단계적으로 정부 신뢰의 기초를 쌓아나간다는 자세가 더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논란이 뒤따르는 정책보다는 압도적 다수 국민이 동의하는 정책부터 추진하라는 지적인 셈이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