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옳다고 믿는 것을 묵묵히 지키는 작은 고집들이 원칙의 원형”

2026-06-06 13:06:50 게재

김기영 전 재판관의 ‘겸손·관용·균형’ 원칙을 위한 질문들

헌법을 생각하는 일/김기영/사회평론/1만7800원

헌법을 생각하는 일 표지
‘헌법을 생각하는 일’ 표지

김기영 전 헌법재판관은 28년간 ‘판단’의 시간마다 ‘원칙’을 꺼내 들었다. 수많은 사건을 만날 때 그는 “원칙으로 돌아가라”며 주문처럼 되뇌었다.

김 전 재판관은 최근 저서 ‘헌법을 생각하는 일’에 법원과 헌법재판소에서 누적된 경험과 고민들을 녹여냈다.

판사 때 그의 원칙은 ‘욕망 내려놓기’였다. 김 전 재판관은 고 한기택 부장판사의 “법관은 무엇이 되려 하지 말고 맡은 일을 하라”는 말을 기억해내며 “나는 지금 무엇이 되려고 하는가”를 자문했다. 그러면서 그는 “작은 실천들이 모여 무사무욕의 태도를 만든다”며 “거창한 철학이나 결심이 아닌, 매일의 사소한 선택과 성찰이 중요하다”고 했다. 원하는 임지 배치, 해외연수 기회, 법원행정처 근무, 대법원 재판연구관 경험 등 되고 싶은 욕심을 열거하며 “법복을 입는 순간 그 욕망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했다. 재판의 독립이나 사법부의 독립에 가려진 법관의 독립을 강조한 대목으로 읽힌다.

그는 법관 독립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으로 ‘스스로의 각성’을 꼽았다. 그러면서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방향을 잃지 않으며 애쓰는 것, 질문을 계속 던지는 자세면 충분하다. 때로는 흔들리고 실패하더라도 다시 일어서서 올바른 길을 찾아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헌법재판관으로서의 원칙은 관용과 겸손 그리고 균형이었다.

김 전 재판관은 영화 ‘콘클라베’를 소환해 “확신은 화합의 가장 큰 적이요, 관용의 가장 치명적인 적”이라는 로렌스 추기경의 말을 인용했다.

입법부와 법원의 판단을 존중하는 게 겸손이고 열린 마음으로 대하는 게 관용이다. 김 전 재판관은 “입법부가 만든 법률을 함부로 무효화하지 않으며 행정부의 판단을 섣불리 뒤집지 않는다”며 “헌법재판소는 기본적으로 자제하는 기관”이라고 했다.

그는 “확신에 차 있는 사람보다 의심하는 사람이, 스스로 완벽하다고 믿는 사람보다 자신의 한계를 아는 사람이 더 현명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며 질문이 곧 성찰임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민주주의는 완벽한 답이 없고 끝도 없는 실험”이라며 “형식과 본질, 효율과 정당성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했다.

‘시대의 기후’와 적절한 간격으로 보조를 맞추는 데도 주력했다. 그는 “너무 빨리 읽으면 성급한 결론에 이르고 너무 늦게 읽으면 시대착오가 된다”고 했다.

김기영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
김기영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

원칙과 균형을 지켜내기 위해 김 전 재판관은 쉼 없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야 했다. 누구를 파면할 것인가. 성실하지 않은 권력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 탄핵은 책임을 묻는 장치인가, 피하는 통로인가. 국회와 헌법재판소 사이에서 회의실 안의 민주주의는 어떻게 지켜지는가. 말할 자유와 침묵할 권리 사이에서, 군인도 시민일 수 있는가. 금지된 책과 금지된 생각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 욕설은 범죄인가. 진실과 명예는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가. 변하는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헌법은 가능한가. 가족이란 무엇인가. 학교는 누구의 것인가. 이미 끝난 사건을 왜 판단해야 하는가. 재난 앞에서 국가가 취해야 할 최소한의 조치는 무엇인가. 끈질긴 질문은 성찰을 낳고 성찰은 겸손과 관용으로 이어져 균형을 찾아가게 해 준다.

법복을 벗은 그는 그동안 붙잡아 왔던 원칙의 뿌리를 찾아냈다. 그는 “평생 작은 가게를 운영하며 출장 수리비를 올리지 않았던 분의 고집, 작은 기업을 지키며 팔순에도 밤새 일하던 분의 성실함, 자식 교육을 위해 정든 터전을 떠나 도시로 향했던 부모님 세대의 결단력 등 내가 배운 삶의 방식은 거창한 법 이론서가 아닌 그분들의 등 뒤에 있었다”며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묵묵히 지키는 그 ‘작은 고집’들이야말로 내가 법정에서 구현하고자 했던 원칙의 원형이었다”고 했다.

김 전 재판관은 1996년부터 22년간 법원 판사로, 2018년부터 6년간 헌법재판소 재판관으로 일했다. 국제인권법 연구회 활동으로 법관의 독립을 비롯한 인권 문제에 천착했고 헌법재판소 재임기간은 이를 실천하는 시간들이었다. 아시아헌법재판소연합 담당 재판관, 베니스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현재는 단국대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박준규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