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순 칼럼

청나라 역관 정명수와 한국계 미국인 모스 탄

2026-06-08 13:00:14 게재

병자호란 때 청나라 역관(譯官) 정명수(鄭命壽)는 만감이 교차하게 하는 인물이다. 그는 평안도 은산 출신 노비였다. 정묘호란 때 출정했다가 후금(훗날 청나라)의 포로가 된 뒤 역관으로 탈바꿈했다. 그곳에서 만주어를 배우고 조선 사정을 고해바쳐 황제의 신임을 얻었다. 병자호란 때 청나라 장수 용골대·마부대의 통역으로 들어와 모국 침공의 앞잡이 노릇을 했다. 그 뒤 청나라의 뒷배로 조선의 정1품 관직인 영중추부사까지 올랐다.

청으로 귀화한 그는 굴마훈이라는 이름도 얻었다. 청나라를 등에 업은 정명수는 권력을 유감없이 휘둘렀다. 소현세자가 청으로 끌려가다 걸음을 멈추자 정명수는 채찍을 휘두르며 모욕적인 말로 재촉했다. 이를 보고 경악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고 한다. 자기가 총애하던 기생을 꾸짖었다는 이유로 병조좌랑 변호길을 몽둥이로 폭행했다. 조선 조정은 그냥 보기만 했다.

그의 권세는 하늘을 찌르는 듯했다. 자기 친척들에게 벼슬을 내려달라고 강요하는 등 온갖 횡포를 부렸다. 조선 조정에서는 그를 두려워해 뇌물을 주면서 비위를 맞췄다. 청나라로 돌아간 뒤에도 조선 조정을 끝없이 압박하고 괴롭혔다. 조선왕조실록에 그의 이름이 언급되었다 하면 어김없이 그가 저지른 각종 만행도 함께 나열된다.

그는 일신과 혈족의 출세를 앞뒤 가리지 않고 추구하다가 청나라에서도 끝내 노비로 추락했다. 정명수가 나름의 총명한 머리로 어학 능력을 살려 청나라 외교관직까지 올라간 것은 나무라기 어렵다. 하지만 인성이 뒤틀려 모국을 배신·핍박하고 사리사욕을 채운 오명만 남겼다. 역사 속의 반면교사다.

모스 탄, 음모론과 허위사실 선동

시대와 상황이 다르지만 한국계 미국인 모스 탄(한국명 단현명)도 언뜻 정명수를 떠올리게 한다. 리버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인 모스 탄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국제형사사법대사(차관보급)로 일했다. 모스 탄은 최근 주한 미국대사 하마평에도 올랐다. 그는 서울에서 태어나 다섯 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에 이민했다.

그는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이후 한국 정치에 부당하고 끈질기게 개입한다. 그것도 자기 나라 안에서만 아니라 모국을 방문해 ‘윤 어게인’세력과 힘을 합쳐 부정선거 음모론을 끊임없이 펴고, 윤석열 복권을 노린다. 이번 전국동시지방선거 때도 부정선거 감시를 명분으로 5월 하순 한국에 온 뒤 선거에 개입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그는 과거 인천공항에서 트럼프가 한국을 부정선거의 사례로 언급했다고 근거 없이 위협한 적도 있다.

그는 이재명 대통령에 관한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로 한국 경찰의 수사를 받아야 하지만 회피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를 받는 그는 현재 출국정지 상태다. 법원에서 허위로 판명된 ‘이재명 대통령의 소년원 복역설’을 언급해 고발됐다.

그는 출국정지조치를 당한 상태이면서도 서울 송파구 ‘개표소 봉쇄 시위’에 동참해 맹랑한 허위사실로 선동했다. 전자투표기계의 중국산 부품, 중국인 투표 인증 글 같은, 확인되지 않은 근거를 바탕으로 중국음모설을 펼쳤다.

그는 그제 시위대 앞에서 “한국의 선거는 베네수엘라만큼 부패했다”며 “(이란 쿠바 이후) 미국의 다음 타깃은 한국이 돼야 한다”고 으름장을 놨다. 그는 앞서 한국 부정선거와 관련된 보고서를 미국 법무부와 국가정보국에 제출했다는 자랑도 했다.

미국이 한국의 부정선거 의혹을 수사할 수 있느냐고 묻자 “하나님이 정한 시기는 우리의 기대와 다를 수 있으며 그때를 기다리면서 기도해야 한다”고 황당한 답변을 늘어놓았다.

그의 말과 달리 미국 국무부는 전세계 자국 외교관들에게 외국 선거의 공정성이나 민주적 정당성에 대한 언급을 금지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그는 지난해 인천공항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대한민국을 구하기 위해 입국했다”고 어이없는 발언도 했다. 이처럼 그가 그동안 터무니없는 사실을 언급한 사례는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부정선거 음모론이 사실을 이길 수 없어

선거를 포함한 한국 민주주의 수준은 트럼프의 미국보다 훨씬 높다고 국제사회가 인정한다. 올해 3월 스웨덴 예테보리대학 산하 민주주의 다양성 연구소가 발표한 한국의 민주주의 지수는 세계 22위다. 윤석열 정권 때가 기준인 지난해 41위보다 크게 올랐다. 민주주의 분류 최고 단계인 ‘자유민주주의 국가’ 지위도 회복했다.

한국과는 달리 트럼프 행정부 2기의 미국은 지난해 24위(바이든 대통령 행정부)에서 올해 51위로 추락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선거민주주의 국가’로 강등된 것은 더 말할 나위 없다.

이 정도면 모스 탄이 자기 나라 민주주의 수준을 걱정하고 높이려고 해야 마땅하지 않나. 한국계 미국 정치인이나 고위직 인사가 많았지만 모스 탄처럼 비이성적이고 무모하게 한국 정치에 간섭한 사람은 없었다.

고려대 미디어대학 초빙교수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