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보수 재건’은 말로 이뤄지지 않는다

2026-06-10 13:00:04 게재

6.3 지방선거의 결과는 한국 보수정치에 구조적 과제를 던졌다. 겉으로는 가장 상징적 지역인 서울을 사수했고 재보궐선거에서도 나름대로 선방한 모양새지만, 그 속내를 뜯어보면 단순한 승패를 넘어선 거대한 지각변동의 조짐이 감지된다.

특히 당 지도부의 제명처분에 맞서 무소속으로 부산 북갑에서 생환한 한동훈, 그리고 지도부와 철저한 ‘탈동조화’를 선택해 서울을 지켜낸 오세훈의 승리는 장동혁 체제의 정당성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 이른바 ‘장동혁의 우산’ 밖에서 개인의 정치적 브랜드로 살아남은 이들의 등장은 보수 내부의 권력방정식뿐만 아니라 향후 ‘보수의 재건’이라는 담론의 방향성을 재규정할 것을 요구한다.

“보수 재건” 외치지만 개혁 청사진은 어디에

지금 대한민국 보수는 사실상 지리멸렬 상태다. 보수 출신 두 대통령의 탄핵, 그리고 총선과 대선, 지방선거의 연이은 참패가 그 실상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당 지도부부터 일반 당원에 이르기까지 당의 주류가 극우세력의 광기와 음모론에 포섭되면서 합리적 개혁적 보수가 설 공간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그러면 한동훈 오세훈의 생환이 보수의 재건을 보장하는가. ‘글쎄올시다’이다.

사실 보수가 이런 지경에 이른 것은 단순히 선거전술이나 공학의 실패가 아니다. 근저에는 ‘시대정신의 상실’이 자리잡고 있다. 과거 보수가 성장담론을 주도하며 ‘유능함’을 과시했지만 지금의 보수는 양극화 심화, 저출생, 잠재성장률 저하, 기후위기 등 사회구조적 전환기에 아무런 사상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이념적 진공상태에 빠져 있다.

영국 보수당이 200년 넘게 살아남으며 주류 권력을 유지한 비결은 이념의 순결성이 아니라 시대의 도전에 기민하게 응답한 ‘유연한 현실주의’에 있었다. 19세기 중반 벤저민 디즈레일리는 산업혁명으로 양극화된 영국 사회를 보며 ‘하나의 국가(One Nation)’ 담론을 제창했다. 기득권을 지키려하기보다 숙련공 노동자 계급에게 참정권을 선제적으로 부여하고 복지를 확대함으로써 체제안정과 보수의 집권을 영속화한 것이다. 20세기 들어 여성참정권의 물꼬를 튼 것도 보수당이었다.

그러나 지금 보수 재건을 외치는 이들에게서는 이러한 개혁적 청사진이 보이지 않는다. 시민들은 “장동혁 체제가 왜 잘못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지만 “한동훈 오세훈의 보수가 대한민국을 어디로 이끌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무런 답을 듣지 못했다. 보수의 개혁을 꿈꾼다면 마땅히 한국 사회가 직면한 과제들에 대해 자신들만의 ‘시대적 솔루션’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런데 6.3 선거 후에도 한 의원과 오 시장은 ‘기승전 이재명정부 잘못’만 따지는 ‘부정의 정치’에 머물러 있다. 이들이 진정한 보수의 리더로 거듭나려면 이제는 투사의 언어를 내려놓고 ‘미래의 언어’를 꺼내 들어야 한다. 특히 지난 일을 단죄하는 데 길들여진 검사 출신 한 의원의 경우 좀더 과감하게 미래로 눈을 돌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의 정치역정 내내 윤석열처럼 ‘검사스럽다’는 달갑지 않은 꼬리표가 붙어 다닐 것이다.

냉정하게 말해 지금 대한민국 보수 정치권의 실력은 이재명정부와 거대 진보권력을 상대할 깜냥이 아니다. 이미 시대의 주류로 자리잡은 정권과 싸워 이기려면 그들보다 더 유능하고, 더 공익적이며, 미래세대를 진심으로 걱정한다는 ‘도덕적·철학적 우위’를 스스로 입증해 내야만 한다. 성찰 없는 비판은 정치 기술자들의 말장난일 뿐이다.

‘자산보수’에서 ‘가치보수’로 체질을 바꾸지 못하면

이번 6.3 지방선거는 대한민국 보수에게 이중적 과제를 던졌다. ‘인적자산의 생환’이라는 기회를 주었지만 동시에 여전히 ‘양남(영남과 강남) 의존증’이라는 한계를 다시 보여줬다. 개혁보수의 과제는 바로 이 모순을 혁파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영남·강남연대’라는 폐쇄적 기득권을 스스로 해체하고 외연을 확장할 수 있는 개혁블록을 형성해야 한다.

좀더 길게는 ‘자산보수’에서 ‘가치보수’로 체질개선을 단행해야 한다. 이번 선거를 통해 보수는 ‘부동산 세금 부담’이라는 사적 이익의 결집 외에는 수도권에서 표를 모을 방안이 없다는 해체적 위기감을 뼈저리게 깨달아야 한다.

그나마 허물어지고 있는 영남과 강남이라는 성벽 안에 갇혀 “부정선거” “윤 어게인”을 외치는 퇴행적 극우세력과 과감하게 선을 긋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는 유능함을 증명해 내는 것만이 대한민국 보수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전략이자 보수 재건의 길이다.

남봉우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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