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도 못 꺾은 이란의 생존 경제

2026-06-10 13:00:01 게재

물가 77%·GDP 급감에도 붕괴 피해

제재 회피·우회 무역로가 버팀목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격, 미 해군의 항구 봉쇄, 가파른 물가 상승에도 이란 경제는 아직 무너지지 않았다. 블룸버그통신 8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이란 경제는 전쟁 전부터 마이너스 성장, 고물가, 통화가치 급락에 시달렸지만 완전한 경제 활동 붕괴 단계에는 이르지 않았다. 오랜 제재와 전쟁을 견뎌온 국가 시스템이 충격을 흡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란의 경제난은 분명 심각하다. 달걀, 감자, 쌀, 고기 같은 기본 식품 가격이 뛰면서 가계 부담이 커졌고, 일부 가구는 붉은 고기와 닭고기 대신 대두박 같은 값싼 식품으로 소비를 바꿨다. 리알화 약세는 수입 물가를 더 밀어 올렸다. 이란 중앙은행에 따르면 전년 대비 물가 상승률은 77%에 달했다.

전쟁 피해도 작지 않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폭격은 주거용 건물, 병원, 학교 같은 민간 시설은 물론 가스전, 연료 저장시설, 제철소 등 산업 기반 시설까지 타격했다. 이란 정부는 4월 휴전 전 6주간의 공격으로 약 2700억달러의 경제 피해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이는 국제통화기금(IMF)이 추정한 올해 이란 국내총생산(GDP) 3000억달러에 육박한다.

그런데도 이란 경제가 버티는 배경에는 누적된 제재 대응 경험이 있다. 이란은 수십 년 동안 무역 금수, 경제 고립, 전쟁을 겪으며 외부 압박을 우회하는 방식을 축적했다. 거래를 숨기기 위한 여러 겹의 위장회사, 원유 수출용 ‘그림자 선단’이 대표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 때 미국이 핵합의에서 탈퇴하고 강한 제재를 되살렸을 때도 이란은 낮은 원유 수출 기간을 견뎠다.

완충재도 있었다. 이란은 전쟁 전 원유 선적을 앞당겼고, 전쟁에 따른 유가 상승으로 봉쇄 전 상당한 수입을 확보했다. 이 돈이 당장의 외화 부족을 일부 막아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정부도 국내 물자 확보에 나섰다. 식품과 농산물, 일부 석유화학 제품과 철강 제품 수출을 금지했고, 이란 중앙은행은 필수품 조달에 외환보유액을 우선 배정하겠다고 밝혔다.

무역로도 바꾸고 있다.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에만 의존하지 않기 위해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등 이웃 국가로 가는 철도 수송을 늘렸다. 중국 시안에서 테헤란으로 향하는 화물열차도 증가했다. 러시아와의 교역에 쓰이던 카스피해 북부 항구 의존도도 커졌다. 남부 항구가 막히자 북쪽과 육로를 활용해 숨통을 틔우는 방식이다.

이란이 2013년부터 내세운 ‘저항 경제’ 정책도 이런 버티기의 바탕이 됐다. 이 정책은 국내 생산 능력을 키우고 수입 의존도를 낮춰 서방의 고립 압박에 대비하려는 전략이다. 외국 상품과 브랜드가 사라진 자리를 이란 제조업체가 채운 경험도 있다.

다만 버틴다는 것이 회복을 뜻하지는 않는다. 전후 재건에는 막대한 비용과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는 경제난에 따른 추가 시민 불안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평가했다. 다만 이란 혁명수비대가 권력 장악력을 강화하면서 정권 불안 위험은 중간 수준으로 봤다.

이란 경제는 무너지지 않았지만, 제재 회피와 우회 무역로에 기대 더 가난하고 더 고립된 방식으로 전쟁을 견디고 있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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