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삼성중공업 하도급법 위반 자진시정안 수용
서면 지연발급 혐의…시스템 개선과 113억원 규모 상생방안 제시
“예상 과징금 최대 2억원대 … 제재보다 피해구제 혜택이 훨씬 커”
공정거래위원회가 삼성중공업의 하도급법 위반 혐의에 대해 동의의결 절차를 개시하기로 결정했다. 삼성중공업은 서면 지연 발급 등 계약 체결 과정에서의 미비점을 인정하고, 이를 근본적으로 시정하기 위한 계약관리시스템 개선과 함께 총 113억원에 달하는 대규모 상생 지원 방안을 약속했다. 이번 조치는 기업의 자발적인 거래질서 개선과 신속한 수급사업자 피해구제를 유도하는 동의의결 제도의 취지를 살린 사례로 평가받는다.
공정위는 10일 삼성중공업의 하도급법 위반 혐의 관련 동의의결 신청에 대해 절차를 개시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동의의결은 법 위반 혐의를 받는 사업자가 스스로 시정방안을 제시하면, 공정위가 타당성을 판단해 법 위반 여부를 확정하지 않고 사건을 종결하는 제도다.
◆대금 협의 전 작업 지시 관행 제동 = 이번 사건은 삼성중공업이 사내협력사(수급사업자)에게 선박 임가공 작업을 위탁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삼성중공업은 수급사업자와 1년 단위로 하도급 기본계약을 맺은 뒤, 물량이 정해지면 개별계약을 체결해 왔다.
그러나 공정위 조사과정에서 삼성중공업은 공정계획과 도면 등을 제공해 수급사업자가 이미 선박 제조 작업을 시작했음에도, 대금 등을 확정하는 개별 계약서는 작업개시 이후에 발급한 혐의를 받았다. 공정위 조사가 본격화되자 삼성중공업은 소송 등 법적 판단을 다투기보다는 수급사업자와의 상생과 신속한 거래질서 회복을 위해 지난해 12월 22일 공정위에 동의의결 개시를 신청했다.
삼성중공업이 제시한 시정방안은 크게 거래질서 개선과 상생협력 지원으로 나뉜다. 먼저 구조적인 서면 지연 발급을 막기 위해 전산 계약관리시스템을 전면 개선하고, 표준하도급계약서 전면 도입 및 임직원 교육을 실시하기로 했다. 아울러 원·하청 간 상설협의체를 구성해 소통을 강화한다.
◆제재 예상수위 뛰어넘는 상생안 제시 = 수급사업자들을 위한 경제적 지원 방안은 총 113억원 규모다. 매년 30억5000만원의 동반지원금을 인상하고, 협력사 근로자들을 위해 연간 52억5000만원 상당의 명절 귀향비와 휴가비를 신설한다. 또 조선업 숙련기술자의 이탈을 막기 위해 근로자가 160만원을 납입하면 총 800만원을 수령할 수 있도록 20억원을 투입해 ‘숙련기술자 희망공제사업’을 실시하기로 했다. 협력사 자녀 학자금 등을 지원하는 공동근로복지기금도 기존 20억원에서 10억원을 증액하기로 했다.
아울러 삼성중공업은 올해 1월 88개 수급사업자 직원 6900명에게 290억원의 성과급을 지급했고 상생차원에서 앞으로도 이를 늘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원청사가 하도급업체 직원에 성과급 지급을 약속한 것은 동의의결제도 시행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공정위는 이러한 삼성중공업의 상생안이 법 위반에 따른 예상 제재수준과 균형을 이루고, 거래질서 회복과 수급사업자 보호에 적절하다고 판단, 동의의결 절차를 개시했다. 이번 결정은 하도급법 제3조(서면의 발급 및 서류의 보존)와 관련해 지난해 6월 엔터테인먼트 5개사 사건 이후 역대 두 번째로 동의의결이 개시된 사례다.
◆실질적 피해구제 효과 기대 = 공정위는 이번 동의의결 개시가 처벌보다 실질적인 구제책을 이끌어내는 데 훨씬 효과적이었다고 설명했다.
이태휘 공정위 하도급조사과장은 “서면 지연 교부 행위가 법 위반으로 최종 판단될 경우 예상되는 법적 시정조치는 시정명령 및 과징금 부과 등”이라며 “이번 사건의 경우 행위의 성격상 중대한 위반행위 수준까지는 아니기 때문에 법대로 처벌하더라도 통상 4000만원에서 2억원 사이의 과징금이 부과될 수 있는 사안”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삼성중공업이 자발적으로 제시한 피해구제와 상생방안의 규모가 113억원에 달해, 예상되는 법적 제재 금액보다 훨씬 크다는 것이다. 이 과장은 “서면 지연 교부의 재발방지를 위해 기업이 스스로 계약관리시스템을 전면 개선하겠다고 나선 것 역시 수급사업자들과의 해묵은 거래 관행을 고치고 공정한 거래질서를 개선하는 데 매우 적절한 조치”라고 평가했다.
공정위는 빠른 시일 내에 삼성중공업과 협의해 시정방안을 구체화한 뒤 잠정 동의의결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이후 30~60일간 수급사업자 등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관계기관 협의를 거쳐 최종 동의의결안을 위원회에 상정해 최종 확정할 방침이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