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전환 전력 인프라 시대로

2026-06-16 13:00:01 게재

인공지능·데이터센터, 재생에너지 중심 투자구조 변화 촉발

지난해 전력망·에너지저장장치·원전에 1조5000억달러 투자

최근 10여년간 세계 에너지전환의 핵심 키워드는 태양광과 풍력이었다. 그러나 인공지능(AI)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글로벌 전력산업의 투자방향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발전설비 확대만으로는 급증하는 전력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워지면서 전력망과 저장장치, 원전, 가스발전이 함께 성장하는 ‘다층적 전력 시스템’ 구축이 부상하는 모습이다.

◆미국, 전력수요 급증에 가스발전 투자 3배 증가 = 16일 에너지경제연구원이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세계 에너지부문 투자현황 2026’ 보고서를 분석한 내용에 따르면 2025년 전 세계 전력 부문 투자액은 전년 대비 7% 증가한 1조5000억달러(약 2273조원)를 기록했다.

이중 눈길을 끄는 부분 중 하나는 배터리에너지저장장치(BESS) 투자가 전년대비 30% 증가한 800억달러(약 121조원)에 달했다는 점이다. 재생에너지 확대와 전력망 안정성 확보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핵심 기술로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중동 인도 아프리카 등 신흥국에서도 대규모 프로젝트가 잇따르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10GWh 이상의 저장설비 구축을 위해 30억달러를 투자하고 있다.

전력망 투자는 장기간의 정체기를 거친 후 최근 몇년 동안 투자가 가속화되며 2025년 총 지출이 전년대비 450억달러 증가한 4500억달러를 기록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이는 전력시스템 전반에서 가장 큰 증가 폭”이라며 “2026년에는 17% 더 성장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가장 큰 배경은 데이터센터다. 생성형 AI 확산으로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가 급증하면서 안정적으로 24시간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전원이 중요해지고 있다. 태양광과 풍력은 발전량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대규모 저장장치나 기저전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미국에서 가스발전 투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원전 개발이 재개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IEA는 미국의 전력 수요가 2026~2030년 연평균 2%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으며, 증가분의 절반은 데이터센터가 차지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미국의 가스화력발전 투자액은 2025년 전년대비 거의 3배 증가한 320억달러를 기록했으며, 2026년에는 500억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데이터센터 운영기업들은 전력망 연결을 기다리지 않고 자체 발전 설비를 구축하고 있다. 2025년 데이터센터 관련 에너지 투자 규모는 1050억달러에 달했으며, 자가발전용 가스터빈 주문이 급증하고 있다.

◆원전, AI 시대 기저전원으로 재조명 = 원자력발전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2026년 세계 원전 투자 규모는 800억달러를 웃돌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에서는 AI와 데이터센터 확대에 대응하기 위해 원전 개발 계획이 잇따라 발표되고 있으며, 정부도 원전 프로젝트 지원에 적극 나서고 있다. 다만 설계 승인이 부족한데다, 많은 협약이 구속력이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투자규모는 여전히 불확실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유럽연합(EU)은 2050년까지 신규 원전 건설과 설비 개보수를 위해 총 2410억유로(약 423조원)의 투자가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영국은 롤스로이스 SMR을 중심으로 소형모듈원전(SMR)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으며, 프랑스도 EPR2 원전 6기 건설 계획을 추진 중이다.

중국은 매년 약 10기의 신규 원전을 승인하며 세계 원전 투자액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2030년까지 원전 설비용량을 110GW로 확대한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전력망이 최대 병목…600GW 프로젝트 대기 = 한편 전력 전환 과정에서 가장 큰 과제로는 전력망 부족이 지목됐다. 전력망 투자는 2025년 이후 급증했지만 인허가 지연과 기자재 가격 상승으로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약 600GW 규모의 재생에너지 프로젝트가 계통 연결을 기다리고 있으며, 데이터센터 역시 계통 접속 대기열이 길어지고 있다. 발전소를 지어도 송전망이 부족해 전기를 공급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각국 정부는 전력망 투자 확대에 나서고 있다. 중국은 2026년 전력망에 1000억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며, 인도는 2035년까지 송전망에 910억달러를 투입할 예정이다. 유럽도 대규모 그리드 확충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에너지업계 한 관계자는 “ IEA 보고서가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며 “에너지전환의 승패는 태양광과 풍력발전 확대에만 있는게 아니라 이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전력망과 저장장치, 원전·가스발전 등 보완 전원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구축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이어 “AI 와 반도체와 산업 육성을 추진하는 한국은 앞으로 급증할 전력 수요에 대비해 전력망 확충과 ESS 확대, 원전 활용, 차세대 전력 인프라 투자 전략을 보다 적극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재호 기자 jhlee@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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