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원전생태계 복원과 호남반도체 클러스터

2026-07-02 13:00:01 게재

국내 원자력 발전 생태계 복원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최근 대형 원전 건설부지로 경북 영덕군을, 차세대 에너지원으로 주목받는 국내 첫 소형모듈원자로(SMR) 건설부지로 부산 기장군을 각각 확정했다.

신규 원전 부지가 선정된 것은 2011년 이후 처음이다. 과거 문재인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2017년 중단됐던 신한울 3·4호기 건설이 2024년 재개된 데 이어 마침내 신규 원전 건설의 문이 활짝 열렸다.

전세계는 인공지능(AI) 시대 개막으로 전력 수요가 폭증, 전력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탄소배출 없이 전기를 24시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원전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지난 30년 동안 사실상 잠들어 있던 미국이 신규 원전 300기를 건설할 예정인 데다 탈원전 바람에 휩쓸렸던 이탈리아 등 일부 유럽 국가들과 사고를 겪은 일본조차도 원전 회귀로 방향을 틀었다.

부산에 국내 최초 SMR 건설 결정은 AI시대 대비한 획기적인 조치

크기가 기존 대형 원전의 약 1/100에 불과한 SMR을 국내 최초로 부산에 건설하기로 한 것은 미래를 내다 본 획기적인 조치다. 공장에서 모듈을 생산해 조립만 하기 때문에 초기 투자 비용이 아주 적게 들고 건설기간이 3~5년 이내로 10년 이상 걸리는 대형 원전에 비해 짧으며 출력 조절이 상대적으로 쉽고 수명도 80년으로 길다.

SMR은 안전 시스템이 기존 원전과 완전히 다르다. 안전원이 능동적으로 개입해 안전을 확보하는 기존 원전과는 달리 사람이 직접 개입하지 않아도 저절로 냉각돼 핵연료가 녹아 내려 대형사고로 이어지는 것을 막도록 되어 있다. 갓 조리한 음식을 실온에 두면 저절로 식듯이 전원이 끊어지더라도 사흘가량 두면 자연스럽게 냉각되는 방식이다. 이 같은 설계 개념이 나온 것은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계기가 됐다.

SMR 역시 핵연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기존 원전처럼 사용후핵연료인 방사성 폐기물이 나온다. 그러나 중대사고 발생 확률은 1/10억 수준에 불과하다. 사고 확률이 이처럼 낮더라도 조심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SMR은 “아무리 큰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주변 주민이 대피할 필요가 없다”는 취지의 인증을 2023년에 미국 규제기관으로부터 부여받아 SMR에 대한 안전 여부 논의가 사라진 상태다.

또한 엄청난 양의 냉각수가 필요해 바닷가에 지어야 했던 기존 원전과 달리 SMR은 내륙이나 도서 산간 지역에도 지을 수 있다. 대형 데이터센터나 반도체 공장 등 전력 수요지 인근에 건설, 송전망 구축 부담을 줄일 수 있다. 반도체 호남 클러스터가 예정된 우리에게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SMR의 진짜 강점은 고정된 형태를 넘어서 석탄화력발전 대체, 데이터센터, 선박, 군사용 등 다양한 산업적 요구에 맞춰 진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물 대신 액체 나트륨을 냉각재로 쓰는 석탄화전 대체용 나트륨 원자로, 선박용 액체 용융염 원자로, 군사용으로 사용될 트라이소 연료 기반 원자로 등 용처별로 서로 다른 방식의 다양한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가장 큰 시장은 석탄발전 대체다. 석탄발전소를 원자로로 치환하기만 하면 된다. 데이터센터용 SMR은 바다 위에 데이터센터를 짓고, 바로 옆에 해상 부유식 SMR을 띄워 해수를 활용한 냉각과 전력 공급을 동시에 해결하는 조합이 중장기적 모델로 논의되고 있다.이밖에 탈취당해도 핵무기로 전용할 수 없는 트라이소 연료를 사용하는 군사용 SMR도 개발되고 있다.

미국 국방부는 이 연료를 활용 트럭에 실어 이동할 수 있는 1~5MW급 초소형 ‘마이크로 원자로’를 만들어 내년에 군부대 전력용으로 상용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 SMR은 드론 등 첨단무기 도입으로 전력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군부대의 독립형 에너지원으로 안성맞춤이다.

전 세계 SMR 상용화 추세는 한국에 다시 없는 기회

전세계의 이 같은 에너지 패러다임 급변은 한국엔 다시 없을 호기다. 한국의 원전 시공 능력이 탁월한 데다 원전 건설 수주 기회가 널려있기 때문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50년까지 전세계에 SMR 1000기가 들어설 것으로 전망한다.

한국은 SMR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적 기반을 보유했던 국가다. 서방 세계 최초로 SMR 표준설계인증(SMART)을 도입했을 정도로 시대를 앞서갔다. 그러나 개발 당시 전세계 시장의 미성숙으로 인해 조기 상용화에 실패한 바 있다.

박현채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