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개인계좌, 정책 따라 움직였다
관세 충격 때 집중매수
인텔·희토류주 논란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개인 투자계좌가 지난해 ‘해방의날’ 관세 발표 전후로 대규모 주식 거래를 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커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일 보도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2025년 4월 2일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전 세계를 상대로 한 관세 정책을 발표한 직후인 4월 3일과 4일 그의 투자계좌가 수백개 개별 종목을 사고팔았다고 전했다.
쟁점은 거래 시점이다. 관세 발표로 뉴욕 증시가 급락하자 투자자들은 손실을 피하려 움직였다. 트럼프 대통령의 자산을 맡은 운용자들도 같은 시기 활발히 거래했다. WSJ에 따르면 4월 8일에는 매도 없이 애플, 버크셔해서웨이 등 우량주 327개를 360만달러 이상 사들였다. 다음 날 아침 트럼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에 “지금은 사기에 좋은 때”라고 올렸고, 같은 날 오후 관세 조치 상당 부분을 유예했다. 이후 시장은 급등했다.
트럼프 대통령 측은 직접 거래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백악관 대변인 애나 켈리는 “대통령과 가족은 이해상충 행위를 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그룹도 파이낸셜타임스(FT)에 “투자 자산은 제3의 금융기관이 독립적으로 운용하는 재량계좌에 보관돼 있으며, 트럼프 대통령과 가족, 트럼프그룹은 특정 투자를 선택하거나 지시하거나 승인하는 데 어떤 역할도 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공개 자료가 보여주는 규모는 이례적이다. FT 분석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2025년 한 해 2만2000건이 넘는 주식 거래를 신고했다. 직전 대통령 조 바이든이 4년 동안 신고한 거래는 13건이었다. 거래 내역은 구간으로만 공개돼 정확한 금액 산출은 어렵지만, FT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식 매수액이 적게는 4억6100만달러, 많게는 14억달러에 달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정책 수혜주 거래도 논란을 키웠다. WSJ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 계좌는 8월 18일 하루에만 최소 7500만달러어치 거래를 했다. 한 계좌는 엔비디아, 메타플랫폼스, 마이크로소프트를 각각 500만~2500만달러어치 사들였고, 인텔 주식도 최소 25만달러어치 매수했다. 며칠 뒤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반도체기업 인텔 지분 약 10%를 정부가 확보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희토류 생산업체 MP머티리얼스도 비슷한 논란을 낳았다. 트럼프 대통령 계좌는 취임 직후부터 5월까지 이 회사 주식을 8차례에 걸쳐 2만2000~15만5000달러어치 사들였다. 이후 트럼프 행정부는 7월 미국 내 희토류 산업 육성을 위해 MP머티리얼스 지분 15%를 확보하는 계약을 맺었다. 주가가 급등한 뒤 트럼프 대통령 계좌는 일부 주식을 매도했고, 10만달러 초과~100만달러의 자본이득을 신고했다.
미국 법은 대통령을 포함한 고위 공직자가 1000달러를 넘는 증권 거래를 하면 45일 안에 신고하도록 한다. WSJ는 지난해 2만1000건이 넘는 거래 대부분이 이번 900쪽 분량의 신고서에서야 공개됐다고 전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 정부윤리청장을 지낸 월터 샤우브는 FT에 “통제권이 없다는 사실만으로 금융 이해관계와의 충돌이 사라지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트럼프 측은 독립 운용을 강조하지만, 대통령의 말과 정책이 시장을 흔드는 상황에서 개인 계좌가 정책 수혜 기업 주식을 보유하고 거래했다는 점이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