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반도체, 서방 턱밑까지 추격

2026-07-09 13:00:02 게재

AI 칩 설계는 빠르게 자립 … 첨단 제조·HBM은 여전히 높은 장벽

중국 최대 파운드리 기업 SMIC.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중국 반도체 산업이 서방 추격 속도를 높이고 있다. 미국의 수출 통제가 중국 기업을 약화시키기보다 오히려 자국 반도체 생태계를 키우는 보호막이 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다만 칩 설계에서는 성과가 뚜렷하지만, 최첨단 제조와 고대역폭메모리(HBM)에서는 여전히 한국·대만·미국 기업의 벽이 높다.

이코노미스트와 파이낸셜타임스(FT) 보도에 따르면 중국 반도체 산업의 변화는 인공지능(AI) 연산 수요 확대와 맞물려 있다. AI 모델을 훈련하고 구동하는 데 필요한 연산 능력은 기술 패권의 핵심 자원이 됐다. 2025년 말 기준 중국의 AI 연산 능력은 미국의 7분의1 수준에 그쳤지만, 중국은 설계와 제조 양쪽에서 격차 축소에 나서고 있다.

가장 앞선 분야는 칩 설계다. 2023년 전까지만 해도 엔비디아는 중국 AI 반도체 수요의 약 90%를 채웠다. 그러나 미국이 2022년 10월 첨단 반도체 대중 수출을 제한한 뒤 중국 당국은 합법적으로 살 수 있는 외국산 칩까지 줄이도록 자국 기업을 유도했다. 그 결과 알리바바와 바이두 같은 중국 인터넷 기업은 자체 AI 반도체 설계에 나섰고, 캠브리콘 같은 중국 반도체 설계 업체도 성장했다. 올해 중국 내 AI 반도체 지출의 약 80%를 자국 설계 업체가 가져갈 것으로 전망된다.

기술 우회도 빨라졌다. 화웨이는 자체 AI 반도체 어센드를 384개 연결한 클라우드매트릭스 시스템으로 엔비디아 최신 AI 시스템에 도전하고 있다. 전력 소모는 훨씬 크지만, 최신 제조 장비 없이도 성능을 끌어올리려는 시도다. 중국 AI 기업 딥시크는 지난 4월 화웨이 반도체에 맞춘 대형언어모델(LLM)을 내놨고, 화웨이는 엔비디아의 강점인 쿠다 소프트웨어 생태계에 맞서 자체 플랫폼 CANN을 키우고 있다.

하지만 한계는 분명하다. 투자회사 번스타인에 따르면 화웨이의 최상위 AI 반도체 어센드 910C 성능은 약 4년 전 나온 엔비디아 H100의 80% 수준이다. 중국산 칩은 주로 엔비디아가 중국에 판매할 수 있도록 성능을 낮춘 제품과 경쟁하고 있다. 최첨단 AI 모델을 처음부터 훈련시키기보다 이미 만들어진 모델을 구동하는 추론 분야에 더 많이 쓰인다.

더 큰 병목은 제조다. 최첨단 반도체는 대만 파운드리 기업 TSMC 같은 공정이 필요하지만 중국 설계 업체들은 이를 이용하기 어렵다. 중국 파운드리 기업도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업체 ASML의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살 수 없다. 중국은 7나노미터 미만 반도체를 안정적으로 대량 생산하기 어렵고, 최첨단 공정은 이미 3나노미터 이하로 내려가 있다.

중국은 우회로를 찾고 있다. 하나는 멀티패터닝이다. 한 번에 그리기 어려운 미세 회로를 여러 차례 나눠 새기는 방식이다. 기존 장비로 더 작은 회로를 만들 수 있지만 생산 시간이 길어지고 비용과 불량 위험이 커진다. 또 다른 방법은 오래된 공정으로 만든 여러 칩을 하나의 시스템처럼 묶어 성능을 높이는 첨단 패키징이다.

메모리에서는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가 주목받고 있다. FT에 따르면 애플은 중국에서 판매할 기기에 들어갈 CXMT의 D램을 시험하고 있으며, 미국 정부에 더 넓은 사용을 허용해 달라고 로비하고 있다. CXMT는 스마트폰과 서버에 쓰이는 D램의 세계 4위 생산업체로 올라섰다. 시장조사업체 세미애널리시스에 따르면 CXMT의 세계 D램 웨이퍼 생산능력 비중은 지난해 약 11%였고, 2028년에는 15%까지 높아질 전망이다.

다만 AI 반도체의 핵심인 HBM에서는 갈 길이 멀다. HBM은 AI 가속기에 붙어 대량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하는 고성능 메모리다. 현재 대부분은 미국 마이크론과 한국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생산한다. CXMT도 HBM 개발에 나섰지만 EUV 장비 제한 탓에 생산 수율이 낮고 비용도 높다. 중국 반도체 산업은 더 이상 무시하기 어려운 단계에 들어섰지만, 서방을 따라잡기까지는 긴 소모전이 남아 있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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