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K·메리츠 충돌에 홈플러스 회생 멈춤
여당, 2000억원 조달 압박 … 국민연금·청문회로 책임론 확대
더불어민주당이 홈플러스 회생을 위해 최대주주 MBK파트너스와 최대 채권자인 메리츠금융그룹을 국회로 불러 긴급 운영자금 마련을 공개 촉구했다. 서울회생법원이 회생절차를 폐지한 이후 정치권이 양측을 한자리에 앉혀 직접 중재에 나선 것은 처음이다. 민주당은 운영자금 2000억원 마련을 요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국민연금의 MBK 투자 문제와 국회 청문회 추진까지 거론하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회생의 열쇠인 자금조달 방안은 이날도 제시되지 않았다.
9일 정치권과 법조계에 따르면 민주당 을지로위원회는 이날 국회 의원회관에서 MBK와 메리츠금융그룹, 홈플러스 경영진이 참석한 가운데 간담회를 열고 회생 방안을 논의했다.
서울회생법원은 지난 3일 최소 2000억원의 외부 운영자금을 전제로 한 회생계획에 대해 이를 뒷받침할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자금조달 방안이 제시되지 않았다며 회생절차를 폐지했다. 다만 운영자금을 확보해 즉시항고하면 회생절차를 다시 진행할 가능성은 열어뒀다.
정치권이 직접 중재에 나선 것은 MBK와 메리츠가 회생의 핵심인 운영자금 조달을 놓고 끝내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양측 모두 홈플러스 정상화를 위해 추가 자금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공감하지만 누가 먼저 얼마나 부담할 것인지를 두고 평행선을 이어가고 있다.
MBK는 메리츠가 회생에 필요한 2000억원 전액을 대출하면 그 가운데 1000억원에 대해 김병주 회장과 공동 연대보증을 제공하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메리츠는 MBK가 먼저 1000억원을 자체 조달해야 나머지 1000억원에 대한 금융 지원을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지원 여력을 둘러싼 시각도 다르다. MBK는 회생 개시 이후 직접 출연과 보증 등을 통해 약 4000억원을 지원해 추가 지원 여력이 거의 없다고 주장한다. 반면 메리츠측은 상당 부분이 지급보증이고 실제 현금 투입은 제한적이었다며 대주주가 추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서울회생법원도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지는 않았다. 다만 회생계획을 실제 이행할 수 있는 구속력 있는 자금조달 방안이 마련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민병덕 민주당 의원은 이날 간담회에서 “20일까지 해법을 찾지 못하면 노동자와 입점업체, 지역상권 등 10만명에 이르는 민생이 무너질 수 있다”며 “메리츠와 MBK가 운영자금 2000억원을 마련해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민주당은 그동안 기자회견과 청문회 추진 방침을 밝혀왔지만 이날은 MBK와 메리츠를 직접 불러 공개 중재에 나서며 압박 수위를 한층 높였다.
김광일 MBK파트너스 부회장은 “홈플러스 일로 많은 분들이 고통을 겪고 있는 데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중현 메리츠화재 대표도 “실질적인 해법이 나왔으면 좋겠다”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조주연 홈플러스 대표도 “1만명이 넘는 직원과 협력업체 종사자들이 있다”며 회생 지원을 요청했다.
하지만 간담회에서도 구체적인 자금조달 합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민주당은 이날 국민연금공단과도 간담회를 열고 MBK 투자 문제를 논의했다. 국민연금은 2015년 MBK의 홈플러스 인수 당시 상환전환우선주(RCPS)와 보통주 등에 약 6100억원을 투자했다. 최근 RCPS의 공정가치를 사실상 0원으로 평가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투자금 손실 논란도 커지고 있다.
민주당은 국민연금에 MBK 투자금 회수 방안과 위탁운용사 관리 강화를 주문할 계획이다. 국민연금을 통한 압박으로 MBK의 책임 있는 대응을 이끌어내겠다는 취지다.
국회 정무위원회의 홈플러스 청문회 추진도 같은 맥락이다. 정치권은 회생 여부와 별개로 자금조달 과정과 경영 책임에 대한 검증도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정부 역시 대응의 무게를 회생 지원보다 피해 최소화에 두고 있다. 체불임금 대지급과 협력업체 유동성 지원은 확대하고 있지만 운영자금을 직접 지원하는 방안에는 선을 긋고 있다.
결국 정치권의 압박도, 정부의 지원도 회생을 대신할 수는 없다. 법원이 요구한 것도 새로운 회생계획이 아니라 실제 집행이 가능한 자금조달 방안이었다. 이제 공은 다시 MBK와 메리츠로 넘어갔다. 양측이 평행선을 좁혀 책임 있는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면 홈플러스 회생은 물론 노동자와 협력업체, 지역경제를 둘러싼 불확실성도 더욱 커질 가능성이 높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