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대신 택했던 MOU, 한달 만에 흔들
상선 공격에 분위기 반전 미·이란 연일 ‘벼랑끝 대치’
이번 사태의 직접적 계기는 호르무즈 해협에서 발생한 상선 공격이다. 미국은 이란이 국제 해상교통로의 안전을 위협하고 민간 선박을 공격함으로써 MOU의 핵심 정신을 훼손했다고 주장한다.
반면 이란은 미국이 이란산 원유 거래에 대한 한시적 제재 면제를 철회하고 자국 영토에 대한 군사 공격을 감행하면서 먼저 합의를 깨뜨렸다고 맞서고 있다. 양측 모두 상대방이 먼저 약속을 위반했다고 주장하는 상황이다.
이 같은 시각 차이는 이미 후속 협상 과정에서도 드러난 바 있다. 이달 초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미국과 이란의 후속 협상은 양측 대표단이 직접 마주 앉지 못한 채 카타르와 파키스탄 등 중재국을 통한 간접 협의 방식으로 진행됐다. 회담 이후 양측은 협상 채널 유지 자체에는 의미를 부여했지만, 핵 프로그램 제한과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 문제, 대이란 제재 완화, 호르무즈 해협 관리 방식 등 핵심 쟁점에서는 접점을 찾지 못했다.
특히 후속 협상의 핵심 의제로 꼽혔던 비핵화 문제는 사실상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태도 변화도 주목되는 부분이다. 그는 지난달 MOU 체결 직후만 해도 중동 전쟁을 종식시킨 성과를 강조하며 외교적 업적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최근에는 “MOU는 끝난 것 같다”, “이란이 정말 합의를 원하는지 확신할 수 없다”는 발언을 공개적으로 내놓으며 강경한 입장으로 선회했다. 이란 지도부를 향해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낸 것도 이런 흐름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같은 변화에는 미국 국내 정치도 자리하고 있다. 공화당 강경파와 일부 보수 진영에서는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에 지나치게 많은 양보를 했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특히 원유 수출 허용과 제재 완화 조치에 대해 “이란에 시간을 벌어준 것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이런 정치적 부담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란 역시 내부 정치적 제약에서 자유롭지 않다.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 사망 이후 새 지도부가 체제를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상황에서 미국의 군사 압박과 제재 복원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보일 경우 강경 세력의 반발에 직면할 수 있다. 미국의 공습 이후 즉각적인 보복 의지를 밝힌 것도 이런 국내 정치적 환경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결국 양국은 모두 전면전을 원하지 않으면서도 상대에게 물러서는 모습 역시 보여주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장기전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강조하면서도 추가 공습을 승인한 것과, 이란이 협상 의지를 완전히 접지는 않으면서도 보복을 경고하는 모습은 이런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문제는 이러한 구조가 협상보다 충돌을 더욱 쉽게 만든다는 점이다. 양측 모두 상대방을 협상장으로 끌어내기 위한 압박이라고 주장하지만 군사적 대응이 반복될수록 오판이나 우발적 충돌 가능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원유 해상 운송의 핵심 통로라는 점에서 군사적 긴장이 장기화될 경우 국제 에너지 시장과 세계 경제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향후 추가 보복과 재보복이 이어질 경우 MOU는 사실상 폐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