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위험한 정치·경제 실험 나선다
권력은 중앙으로, 경제는 시장으로
공산당 통제 강화 속 연 10% 성장
베트남이 정치적 중앙집권 강화와 민간경제 육성을 결합한 새로운 발전 전략을 본격 추진하고 있다. 공산당의 권력을 더욱 집중시키는 한편 민간기업을 경제 성장의 핵심 동력으로 키워 2030년까지 연평균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10% 안팎을 달성하겠다는 구상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아시아에서 가장 야심차면서도 위험한 정치·경제 실험 가운데 하나로 평가한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에 기고한 에드먼드 말레스키 듀크대 교수와 빅토리아 즐로마노바 듀크대 연구원은 베트남이 기존 성장 모델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대대적인 체질 개선에 나섰다고 분석했다.
베트남은 1980년대 후반 도이머이 개혁 이후 민간기업과 외국계 기업, 국영기업이 공존하는 혼합경제 체제를 통해 고속성장을 이어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국영기업의 낮은 생산성과 국제 경쟁력 부족, 민간기업의 자본·기술력 한계가 동시에 드러나면서 성장 동력이 약화되고 있다. 특히 수출의 상당 부분을 외국계 기업이 담당하는 구조가 고착되면서 성장의 혜택이 국내 산업 전반으로 충분히 확산되지 못한다는 지적도 제기돼 왔다.
변화의 중심에는 지난해 공산당 총서기에 오른 또 럼 국가주석이 있다. 공안부 장관 출신인 그는 대규모 반부패 운동을 통해 당과 국가기구에 대한 장악력을 강화했다. 2016년 시작된 반부패 캠페인으로 16만8000명 이상의 당원이 징계를 받았고 대통령과 부총리, 장관, 지방 지도자 등 고위 인사들이 대거 퇴진했다.
또 럼은 올해 대통령직까지 겸임하며 도이머이 개혁 이후 가장 강력한 권한을 가진 지도자로 평가받고 있다.
주목되는 점은 정치적으로는 권력을 집중시키면서도 경제적으로는 민간기업 중심 전략을 선택했다는 점이다. 베트남 정치국은 지난해 민간기업 발전 지원을 위한 결의안 68호를 채택하고 민간 부문을 경제의 “가장 중요한 성장 동력”으로 규정했다.
정부는 연구개발 투자에 대한 세제 혜택 확대, 산업용 토지 공급, 금융 지원 강화, 인허가 절차 간소화 등을 추진하고 있으며 철도·공항·에너지 시설 등 전통적으로 국영기업이 주도했던 분야도 민간에 개방하고 있다.
베트남 지도부는 중국식 국영기업 중심 발전 모델이 자국 현실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거대한 내수시장과 풍부한 자본, 정책금융을 바탕으로 국영기업을 세계적 기업으로 육성할 수 있었지만 경제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베트남은 민간기업의 혁신과 경쟁력 강화 없이는 지속적인 성장이 어렵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반도체와 디지털 인프라, 첨단 제조업, 신재생에너지 등을 전략 산업으로 선정해 육성하고 있으며 국가 예산의 최소 3%를 과학기술과 혁신 분야에 투입하고 2030년까지 반도체 전문인력 5만명을 양성한다는 계획도 내놓았다.
다만 최고지도부로의 권력 집중이 가져올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