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력 위기 독일 제조업
폭스바겐 10만명 감원? 시험대 오른 공동결정제
과거 경기침체와 다른 자동차산업 대전환 속 노사 정면충돌 … 감원, 공장폐쇄도 노사 합의가 관건
독일 최대 자동차기업 폭스바겐이 전기차 전환, 중국시장 부진, 높은 에너지 비용 등으로 대규모 구조조정을 추진하면서 독일식 공동결정제가 중대한 시험대에 올랐다. 노사는 2024년 말, 2030년까지 3만5000명을 자연감소와 희망퇴직으로 감축하고 강제해고는 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최근 수익성 악화로 최대 10만명 감원과 공장 폐쇄 가능성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경영진은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사업장평의회와 독일금속노조는 책임 있는 경영과 산업정책이 우선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2000명 이상 대기업의 경우 구조조정이 경영진의 일방적 결정이 아니라 노사동수로 구성된 감독이사회에서 주주대표와 사업장평의회, 노조와 합의로 결정된다. 폭스바겐은 그동안 공동결정제에 기초해 해고보다 노동시간 조정, 재교육, 전환배치 등을 통해 위기를 극복해왔다. 그러나 산업 대전환과 글로벌 경쟁 심화 속에서 이러한 독일식 모델이 앞으로도 경쟁력과 고용안정을 함께 지킬 수 있을지 관심을 모은다.
한때 ‘독일 경제의 심장’으로 불렸던 폭스바겐이 흔들리고 있다. 2025년 말 폭스바겐 그룹은 전세계 약 66만명을 고용하고 연간 약 900만대의 자동차를 판매하는 유럽 최대 자동차 기업이다. 독일에만 약 30만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독일 자동차산업은 국내총생산(GDP)의 약 5%, 제조업 부가가치의 20%, 전체 수출의 16%를 차지한다. 2025년 말 직접 고용 73만명 이상이 종사하는 핵심산업이다. 공급망과 연관 산업까지 포함하면 약 170만명의 고용이 추정된다.
전기차 확산과 중국시장에서의 경쟁 심화, 높은 에너지 비용 등으로 산업전환 압력이 커지는 가운데 2024년 말 폭스바겐 경영진은 공장 폐쇄와 비용 절감을 시도했다. 노사협상 끝에 2030년까지 약 3만5000명을 자연감소와 희망퇴직으로 감축하되 강제해고는 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2025~2026년 들어 중국시장 점유율 하락으로 수익성이 예상보다 악화되면서 경영진은 생산체계 재편과 생산거점 축소, 브랜드 통합, 추가 인건비 절감 등을 다시 추진하고 있다. 이 계획으로 최대 10만명 규모의 감원과 4곳의 공장 폐쇄가 거론되고 있다.
◆산업 대전환이 바꾼 자동차 경쟁력 = 10만명에 달하는 인원감축을 계획하는 올리버 블루메(Oliver Blume) 폭스바겐 그룹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독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산업환경에 근본적인 변화를 강조했다.
“세계는 지난 몇 년 사이 근본적으로 변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계속 성공하려면 우리 역시 변화해야 한다.”
이제 차량은 과거처럼 독일공장에서 생산해 세계시장으로 수출하는 전략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미국과 중국 등 주요 수입국이 현지 생산과 공급을 요구하면서 글로벌 기업들은 시장별 생산공장을 구축해야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환경으로 바뀌고 있다.
또한 기업의 경쟁력은 이제 생산규모보다 소프트웨어와 인공지능(AI), 배터리 기술, 디지털 플랫폼에서 결정되고 있다. 생산라인을 자동화하고 공장을 디지털화하는 과정에서 기존 직무는 줄어들고 새로운 직무가 등장하고 있다. 폭스바겐의 경영진은 대규모 구조조정이 단순한 비용 절감이 아니라 산업 대전환에 적응하기 위한 생존전략이며 대규모 감원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대량 감원에 반대하는 다니엘라 카발로(Daniela Cavallo) 폭스바겐 사업장평의회 의장은 성명을 통해 “우리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경영진의 계획에 맞설 것”이라면서 “독일 생산기지를 축소하는 것은 폭스바겐의 미래를 약화시키는 일이며 노동자들에게 위기의 부담을 일방적으로 떠넘겨서는 안된다”고 밝혔다. 독일금속노조(IG Metall)와 사업장평의회는 “문제는 분명하다. 필요한 것은 책임 있는 경영과 현명한 산업정책이지, 인력감축과 임금삭감이 아니다”고 입장을 밝혔다.
◆감독이사회가 쥔 구조조정 열쇠 = 노동자의 경영 참여를 보장하는 공동결정제가 기업 운영의 기본 원칙으로 자리 잡고 있는 독일 폭스바겐의 구조조정은 미국이나 일본 기업과는 다른 방식으로 진행된다. 경영이사회(Vorstand)가 감원 안을 마련하더라도 곧바로 시행할 수 없다. 구조조정 계획은 감독이사회(Aufsichtsrat)의 심의와 승인을 거쳐야 한다. 감독이사회는 주주 대표와 함께 노동자 대표가 절반을 구성한다. 여기에 사업장평의회와 금속노조가 협상에 참여한다. 최대 10만명 감원이라는 숫자가 주는 충격도 크지만 ‘감독이사회에서 논의된다’는 사실도 큰 의미를 갖는다. 구조조정이 경영진의 일방적 결정이 아니라 노사 합의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간 폭스바겐 노사관계는 독일식 공동결정제의 성공 모델로 평가돼왔다. 노사는 수십년 동안 생산성 향상과 고용안정을 함께 추구했고 경기침체기에도 대규모 정리해고보다 노동시간 조정과 자연감소, 조기퇴직 등을 통해 위기를 넘겨왔다. 폭스바겐은 직원들의 자사주 참여도 적극 장려해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자사주 참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기업은 노동자를 장기적인 이해관계자로 참여시키는 문화를 만들고 노사는 단기적인 비용 절감보다 지속 가능한 경쟁력 향상을 위해 함께 결정하는 제도를 발전시켜 왔다. 이처럼 공동결정제는 오랫동안 폭스바겐의 경쟁력과 고용안정을 뒷받침하는 핵심 제도로 평가받았다.
산업 대전환과 글로벌 경쟁 심화로 폭스바겐의 지금의 위기는 과거의 경기침체와는 성격이 다르다. 독일 노사는 변화를 거부하지 않았다. ‘해고보다 전환’을 원칙으로 숙련인력을 유지하며 재교육과 직무 재설계, 전환배치, 자연감소를 우선 추진해왔다. 정부도 직업훈련과 단축근로제 등을 통해 산업전환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변화의 속도와 경쟁 압력이 커지면서 이러한 독일식 해법이 앞으로도 지속 가능할 지 새로운 시험대에 올랐다. 폭스바겐의 선택은 독일 자동차산업의 미래뿐 아니라 산업 대전환 시대에 사회적 대화와 노동자 참여가 기업 경쟁력과 양립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시금석이 될 것이다.
정미경
독일정치경제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