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부터 움직여라’ 회생 막는 조건의 덫

2026-07-10 13:00:39 게재

MBK·메리츠, 홈플러스 회생 놓고 양보 없는 대치 … 국회 압박 강화

서울회생법원이 홈플러스 회생절차를 폐지한 이후 정치권과 노동계, 정부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최대주주 MBK파트너스와 최대 채권자인 메리츠금융그룹을 잇달아 불러 회생 자금 마련을 촉구했고, 국민연금과 국회 청문회를 통한 압박에도 나섰다.

하지만 회생의 핵심인 운영자금 조달 논의는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는 점포를 매각해도 운영자금으로 활용하기 어려운 구조와 MBK·메리츠가 서로에게 선결 조건만 요구하는 상황이 드러나면서 회생보다 청산 가능성이 커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10일 정치권과 법조계, 유통업계에 따르면 서울회생법원은 지난 3일 홈플러스 회생절차를 폐지하면서 최소 2000억원의 운영자금을 전제로 한 회생계획의 실행 가능성이 입증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운영자금을 확보해 오는 20일까지 즉시항고하면 회생절차를 다시 진행할 가능성을 열어뒀지만, 이후에도 자금 조달은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자금조달 구조부터 막혀 = 이번 사태의 핵심은 운영자금 규모가 아니라 실제 돈이 움직일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민주당 을지로위원회에 따르면 홈플러스는 폐점 예정 점포 37곳 가운데 2곳을 약 1700억원에 매각하기로 했다. 홈플러스는 이 가운데 일부를 긴급 운영자금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제시했지만 메리츠는 채권 회수에 우선 사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메리츠는 최종 매각 계약이 아직 체결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자산을 처분하고도 회생 자금으로 쓰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회생보다 채권 회수가 앞서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서로 ‘너부터’만 외친 MBK·메리츠 = 운영자금 집행 방식도 평행선을 달렸다.

MBK는 메리츠가 2000억원 전액에 대한 대출 계약을 먼저 체결해야 김병주 회장의 개인 연대보증을 제공하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메리츠는 보증이 이뤄지더라도 법무법인·회계법인 검토와 이사회 의결 등을 거쳐야 1000억원을 집행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김남근 의원은 이를 두고 “양측 모두 지뢰를 많이 심어놨다”고 표현했다.

결국 MBK는 메리츠의 선대출을, 메리츠는 MBK의 선책임을 요구하면서 실제 자금 집행은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 서로 상대방이 먼저 움직여야 한다는 조건만 내세우면서 회생 시계도 함께 멈춰선 모습이다.

법조계는 이 대목을 회생절차 폐지의 핵심 원인으로 보고 있다. 회생기업은 자구안보다 실제 자금이 투입된다는 객관적 자료가 제시돼야 하기 때문이다. 법원이 요구한 것도 새로운 회생계획이 아니라 실행 가능한 자금조달 방안이었다.

기업회생절차가 중단된 홈플러스의 파산 가능성이 커진 가운데 9일 경기도 의정부시의 한 상가에 홈플러스 협력업체들의 물품 할인 판매를 알리는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 임병식 기자

◆국회, 국민연금까지 압박 카드 꺼냈다 = 정치권의 압박도 강해지고 있다.

민주당 을지로위원회는 MBK와 메리츠에 회생 자금 마련을 촉구한 데 이어 국민연금공단과 간담회를 열어 MBK에 대한 투자금 회수와 위탁운용사 자격 재검토를 요구했다.

국민연금은 MBK가 운용하는 사모펀드에 약 2조2000억원을 투자하고 있으며 홈플러스 인수 당시에도 약 6000억원을 투자했다. 민주당은 금융당국 제재가 확정되면 국민연금이 위탁운용사 자격과 투자금 회수 여부를 함께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회 청문회도 추진된다. 정치권은 회생 실패 여부를 넘어 MBK와 메리츠가 회생 지연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까지 규명하겠다는 방침이다.

◆남은 시간은 열흘 = 정부는 체불임금 대지급, 협력업체 긴급 유동성 지원, 만기 연장과 상환 유예 등 피해 확산 방지 대책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반면 회생을 위한 직접적인 운영자금 지원에는 선을 긋고 있다.

이는 정부가 회생 여부는 시장과 이해관계자가 해결해야 할 문제로 보고 정책의 초점을 기업 회생보다 노동자와 협력업체 피해 최소화에 맞추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현장 상황도 악화하고 있다. 신선식품과 주류 납품이 끊기고 일부 외주 시설관리 인력이 이탈하면서 직고용 직원들이 청소와 시설관리 업무를 대신 맡는 비상 운영 체제가 이어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영업 지속 자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회의 압박도, 정부의 피해 지원도 회생을 대신할 수는 없다. 결국 홈플러스 회생의 성패는 MBK와 메리츠가 ‘너부터’라는 조건을 거두고 실제 자금이 움직일 수 있는 합의를 만들어내느냐에 달렸다. 남은 열흘이 홈플러스 회생의 마지막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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