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말 줄이는 연준, 불확실성 수출하나
케빈 워시 미 연방준비제도 의장의 첫 의회 통화정책 보고는 그가 추진하는 소통체계 개혁의 방향을 한층 분명하게 드러냈다. 워시는 연준이 시장에 너무 많은 신호를 보내왔다며 자신은 “조금 더 신중하게 말하는 편”이 낫다고 했다. 점도표에 자신의 금리 경로 전망을 제출하지 않은 데 이어, 시장에는 연준 관계자들의 말보다 경제지표를 보라는 뜻으로 “공을 보라, 연준을 보지 말라”고 주문했다.
머빈 킹 전 영란은행 총재 등이 참여한 소통체계 태스크포스는 기자회견과 경제전망, 정책 성명, 공개 발언 전반을 다시 들여다본다. 이제 연준의 소통방식 개편은 공식 검토 과제가 됐다.
연준의 침묵은 왜 위험한가
워시의 문제의식에는 일리가 있다. 중앙은행이 향후 정책 방향과 관련한 선제 안내를 지나치게 구체적으로 제시하면 투자자뿐 아니라 정책 담당자까지 기존 전망에 얽매일 수 있다. 워시도 의회에서 2주 뒤의 결정을 미리 예고하면 새로운 정보 가운데 기존 판단에 맞는 것만 받아들일 위험이 있다고 설명했다. 점도표와 위원들의 발언이 넘쳐 메시지가 뒤섞이는 부작용도 있다. 중앙은행이 시장의 모든 질문에 답하려다 오히려 정책 선택의 폭을 좁히는 일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미래의 금리 숫자를 약속하지 않는 것과 금리를 결정하는 원칙을 설명하지 않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워시는 소통체계 개혁이 투명성을 줄이려는 게 아니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결정 뒤 기자회견을 여는 기준을 공개적으로 정하는 데는 동의하지 않고 사안별로 판단하겠다고 했다.
투명성을 지키겠다는 선언만 있고, 무엇을 얼마나 공개할지는 연준의 재량에 남겨두겠다는 것이다. 소통 개혁의 검토 대상은 공개했지만 실제 정책 판단의 내용은 여전히 불투명하다는 뜻이다.
더 큰 문제는 연준의 대응 원칙이 여전히 흐릿하다는 점이다. 워시는 특정 품목의 가격 상승이 전반적인 물가 수준으로 번지는지를 살피겠다고 했고, “지속적으로 높은 인플레이션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금리를 올릴지 동결할지 내릴지 묻는 질문에는 모두 가능하다고 답했다. 금리와 대차대조표라는 정책수단을 살펴보겠다고 했을 뿐, 어떤 경제 변화가 실제 행동을 촉발할지는 밝히지 않았다.
반면 다른 연준 인사들은 물가 둔화가 나타나지 않으면 행동하겠다거나, 몇 달간의 물가 진정을 더 확인해야 한다는 식으로 판단 기준을 제시했다. 의장이 말을 줄인 자리를 위원들의 서로 다른 발언이 채우면 소음은 줄지 않고 중심만 사라진다. 시장은 연준을 덜 보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단어 하나와 표정 하나에 더 집착하게 된다.
킹의 합류가 우려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영란은행 총재 시절 전망의 세부 수치 공개에 소극적이었고 통화정책위원회의 표결 결과도 늦게 알렸다.
더욱이 워시는 2014년 영란은행의 투명성 개혁안을 마련하면서, 효과적인 중앙은행 소통을 위해서는 가계와 기업, 시장이 새 정보에 정책 담당자들이 어떻게 대응할지를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 그가 킹을 소통체계 태스크포스의 공동 책임자로 불러들인 것은 역설적이다.
한국과 일본이 치를 비용
연준 의장의 소통 공백은 미국 안에서 끝나지 않는다. 시장이 연준의 판단 기준을 알 수 없으면 경제지표가 나올 때마다 금리 전망이 크게 흔들리고, 미국 국채금리와 달러도 급등락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달러 강세와 원화 약세가 수입물가를 끌어올리고 외국인 자금 흐름을 불안하게 하며 한국은행의 정책 선택을 제약한다.
일본에서는 미·일 금리 차에 대한 기대가 바뀌면 엔화가 크게 흔들리고, 엔 캐리 거래 청산이 변동성을 키울 수 있다. 연준의 정책 방향보다 그것을 둘러싼 불확실성 자체가 아시아 금융시장의 비용이 되는 것이다. 미국의 통화정책 재량이 커질수록 다른 나라 중앙은행의 재량은 오히려 줄어들 수 있다.
워시의 의회 증언은 이러한 우려를 더욱 분명하게 드러냈다. 그는 향후 정책 방향과 관련한 선제 안내를 줄이는 데 그치지 않고, 일부 물가 판단 기준을 내놓고도 실제 행동을 촉발할 조건은 밝히지 않았다. 연준은 미래를 약속할 필요는 없지만 현재의 판단 근거는 설명해야 한다. 말을 줄이더라도 책임까지 줄여서는 안 된다.
김상범 국제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