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건강관리 생애주기 관점
청소년에서 노년까지 ‘여성건강’관점 필요
초경부터 폐경, 임신·출산, 피임까지 건강문제 … 출산정책 아닌 '평생 건강권'으로 접근해야
여성의 월경 임신 출산 폐경 등 생애주기 독특한 과정은 여성건강관리에 있어 남성과 커다란 차이를 낳는다. 이는 여성의 아동 청소년기부터 청년 중년 노년에 이르기까지 삶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다. 제4차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에서는 모두가 평등하게 누릴 수 있는 권리로 ‘생애 전반 성·재생산권 보장’을 새로 포함했다. 월경 건강보장, 건강한 임신출산 지원을 추진과제로 내놓았다. 관련해서 한국의 여성건강 정책이 임신과 출산 중심에서 벗어나 청소년기의 초경부터 폐경 이후 노년의 건강까지 아우르는 ‘생애주기 여성건강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2025년 한국 여성의 생애주기별 성·생식건강조사’를 토대로 작성된 보건복지포럼 7월호에서 여성의 건강을 월경, 임신·출산, 피임, 폐경 등 개별 영역이 아니라 하나의 생애주기 과정으로 연결해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은자 보사연 보건의료정책연구실 연구위원은 ‘청소년기부터 노년기까지: 생애주기 관점의 여성 생식건강 증진’ 보고서에서 “여성은 아동청소년기에 월경이 시작되고 중년기에 월경이 중단되면서 폐경을 경험한다”며 “생애주기별로 나타나는 다양한 생식건강 문제를 의료이용을 통해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관리해야 한다”고 밝혔다.
◆“여성건강은 출산만이 아니다” = 그동안 국내 여성건강 정책은 임신과 출산, 저출생 대응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박 연구위원에 따르면 여성의 생식건강은 초경-가임기-임신·출산-폐경-노년으로 이어지는 연속적인 과정이며, 생애주기마다 서로 다른 건강 문제가 나타난다고 설명한다.
2025년 조사 결과도 이를 뚜렷하게 보여준다. 현재 청소년들의 평균 초경 연령은 12.6세로 이전 세대보다 빨라졌으며, 폐경 여성의 평균 마지막 월경 연령은 50.6세였다. 반면 생식기계 질환 유병률은 초기 성인에서 31.2%, 중장년에서 35.5%로 높게 나타났다.
의료 이용도 생애주기별 차이가 컸다. 최근 1년간 산부인과 이용 경험은 초기 성인과 중장년은 40% 이상인 반면 청소년은 14.3%, 노인은 14.4%에 그쳤다. 특히 청소년들은 산부인과 방문에 대한 심리적 부담과 검진의 불편함 때문에 필요한 의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는 여성건강 정책이 특정 시기만 관리해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초경은 빨라지고 폐경 이후 삶은 길어졌다. 생애주기 변화는 과거보다 더욱 커지고 있다. 평균 초경 연령은 계속 낮아지고 있지만 기대수명은 늘어나면서 여성은 폐경 이후 수십 년을 살아가게 된다. 즉 여성은 더 어린 나이에 월경을 시작하고, 더 오랜 기간 폐경 이후 건강관리를 해야 하는 시대에 들어선 것이다.
박 연구위원은 이러한 변화에 맞춰 △청소년기 월경교육 △가임기 생식건강관리 △폐경기 건강관리 △노년기 생식기계 질환 예방 등이 하나의 연속된 정책체계 안에서 운영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월경은 단순한 생리가 아니라 건강 문제 = 전문가들은 월경과 폐경을 여성 삶의 질 문제로 접근한다. 조사 결과를 보면 월경통과 월경전증후군은 매우 흔했다. 최근 3년간 △청소년 74.0% △초기 성인 85.6% △중장년 63.8%가 생리통을 경험했다. 월경전증후군 역시 △청소년 60.5% △초기 성인 86.6% △중장년 73.7%로 나타났다. 특히 심한 생리통(강도 7점 이상)을 경험한 비율도 △청소년 35.3% △초기 성인 47.7%에 달했다.
하지만 상당수 여성은 약국에서 진통제를 구입하는 수준에서 증상을 관리하고 있었으며 전문 의료서비스 이용은 충분하지 않았다.
최지희 보사연 부연구위원 등은 월경 건강을 개인이 감내해야 하는 문제가 아니라 학교와 직장, 보건의료체계가 함께 관리해야 하는 공공보건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폐경 역시 자연스러운 노화로만 인식하기보다 적극적인 건강관리 대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한다.
폐경 이후 여성호르몬 감소는 △골다공증 △심혈관질환 △대사질환 △정신건강 문제 등 다양한 만성질환 위험을 높인다. 그럼에도 지금까지는 폐경이 개인이 감수해야 할 자연적 생리현상으로 보고 정책적 관심은 충분하지 않았다. 보사연 연구진들은 “폐경 건강 역시 예방 중심의 국가 건강관리체계 안으로 포함시켜야 한다”고 제안했다.
연구진은 폐경된 여성보다 폐경 이행기 여성이 신체 정신적 증상을 심하게 경험하는 비율이 더 높았다고 분석했다. 심한 증상을 겪고도 별다른 조치 없이 참고 견디는 경우가 많아 정확한 정보 제공과 치료 필요성에 대한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또한 폐경 건강관리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폐경 이행기 이전부터 선제적인 관리와 상담, 직장 내 휴식권 보장 등 지원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임신·출산도 건강권의 문제 = 문선영 보사연 건강보장정책연구실 연구원 등은 임신과 출산을 단순한 출산율 정책이 아니라 여성 건강권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임산과 출산은 여성의 건강과 삶에 신체적 심리적으로 적지 않은 영향을 주며 원하는 시기에 자녀를 갖는 것도 생식건강 관점에서 중요하다.
조사 결과 난임 경험자 가운데 △초기 성인 17.1% △중장년 11.6%가 난임시술을 경험했다.그러나 가장 큰 어려움으로는 경제적 부담을 꼽았다.
또한 태아 알코올증후군에 대한 인지도는 모든 연령층에서 50% 미만으로 나타나 임신기 건강교육의 부족도 확인됐다.
첫째 아이를 출산하는 평균 연령도 2024년 기준 33.1세까지 높아졌다. 임신과 출산이 특정 연령층 문제가 아니라 생애 전반에서 준비해야 하는 건강 문제라는 점을 보여주는 결과다.
문 연구원 등은 “향후 난임시술과 경험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와 더불어 임신과 출산 관련 보건의료서비스가 충분히 제공되고 있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피임도 여성 자기결정권으로 변화 = 전진아 보사연 건강보장정책연구실 선임연구위원에 따르면 피임 문화에서도 변화가 나타났다. 2025년 조사에서는 2022년에 비해 ‘항상 피임’하는 비율이 증가했다. 현대적 피임법 이용도 증가했으며 피임 결정에서 여성의 자기결정권도 강화됐다. 다만 생애주기별 차이는 뚜렷했다.
2025년 기준 성관계 시 항상 피임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청소년 67.3% △초기 성인 62.0% △중장년 26.2%였다. 반대로 피임을 전혀 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연령이 높아질수록 증가했다.
전 선임연구위원은 “피임을 단순히 임신 예방 수단이 아니라 성매개감염 예방과 성 건강 증진,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포함하는 포괄적 성·생식건강 정책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결국 연구진들은 여성건강 정책의 패러다임을 ‘출산 중심’에서 ‘생애주기 건강관리’로 전환을 강조한 것이다.
고현주 마리앤여성의원 원장(서울대 의학박사)는 “영국의 ‘10개년 여성건강 전략’처럼 선진국은 초경부터 폐경까지 국가가 책임지는 ‘생애주기적 예방 의료’ 체계를 정착시키고 있다. 특히 2025년 조사에서 국내 전 세대 여성이 산부인과 기피 이유로 ‘검진의 불편함과 심리적 부담’을 꼽은 점은 공중보건학적으로 뼈아픈 대목”이라고 말했다.
이어 고 원장은 “가임기 건강과 임신·출산, 난임 치료의 흔적이 중년기 만성질환으로 이어지는 의학적 궤적을 감안할 때, 정부는 단편적 출산 지원을 넘어 여성이 장벽 없이 산부인과를 찾을 수 있도록 의료 인프라를 혁신하고 평생 건강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규철 기자 gckim1026@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