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기본의료’ 추진
보건소부터 응급실까지 인공지능으로 연결
지역 의료공백 해소 위한 국가 의료 인공지능전환 전략 발표 … 2029년까지 72개 책임의료기관 연결 ‘공공의료 AI 고속도로’ 완성
정부가 보건소와 동네의원, 구급차, 응급실, 지방의료원과 국립대병원을 인공지능으로 연결하는 ‘AI 기본의료 전략’을 추진한다. 의료진이 부족한 농어촌에서는 AI가 영상 판독과 만성질환 관리를 돕고, 응급환자가 발생하면 인공지능이 중증도를 분류해 치료 가능한 병원을 실시간으로 찾는다.
전국 공공병원은 중앙의 ‘공공의료 AI 플랫폼’에 접속해 고가의 그래픽처리장치와 의료 AI를 공동으로 이용한다. 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질병관리청, 국립암센터, 국립대병원 등에 흩어진 데이터를 결합해 한국인의 질병·진료 특성을 반영한 ‘소버린 의료 AI’도 개발한다.
정부가 22일 발표한 AI 기본의료 전략의 비전은 ‘생명을 지키는 AI, 모두가 누리는 의료혁신’이다. 기술 개발과 산업 육성에 머물렀던 기존 의료 AI 정책에서 벗어나 AI를 보편적 건강권을 보장하는 의료 기반으로 활용하겠다는 구상이다.
전략은 △국민이 일상에서 체감하는 AI 의료혁신 △전국 어디서나 첨단의료를 누리는 AX 기반 구축 △지속 가능한 AI 의료혁신 생태계 조성 등 3개 축으로 구성됐다.
서준범 국가AI전략위원회 기본의료 소그룹장은 이날 오후 청와대서 열린 이재명 대통령 주재 간담회에서 “AI 기본의료 전략은 AI가 당면한 보건의료 문제를 해결할 핵심 기술이라는 시각에서 출발했다”며 “지난 10개월 동안 지방의료원을 비롯한 다양한 이해당사자를 만나 현장에서 필요한 AI 기술을 발굴하고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다만 정부도 AI가 의료인력 부족과 지역 의료격차를 단독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서 그룹장은 “인공지능만으로 지역·필수·공공의료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는 없다”며 “그러나 AI 전환과 함께해야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면서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보건소에 영상판독·의무기록 AI 공급 = 우선 전국 보건소와 보건지소 등 지역보건의료기관에 ‘패키지형 AI 솔루션’을 도입한다. 영상 판독 보조와 음성 기반 의무기록 작성 등 의료진의 진료를 지원하는 패키지와 만성질환 관리, 개인 건강기록을 활용한 질병 예측 등 건강관리 패키지로 구분된다.
AI 솔루션은 보건소 전자의무기록과 행정을 통합 지원하는 지역보건의료정보시스템(PHIS)과 연계한다. 의료진이 별도 프로그램을 오가거나 환자 자료를 중복 입력하지 않고 진료 과정에서 바로 AI를 활용하게 한다는 취지다.
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가정의학과 등 취약지 필수진료과목 의원에는 ‘일차의료 AI 패키지’ 이용 바우처를 지원한다. 만성질환 관리 과정에서는 AI가 환자 문진을 자동으로 요약하고 개인별 건강관리 방안을 제시한다.
의료진이 부족한 섬과 벽지에서는 방문간호사가 측정한 생체정보와 환자 상태를 AI로 분석하고 원격지 의사와 비대면으로 협진하는 모델을 시범 적용한다. 일차의료 분야 사업은 2027년부터 본격 추진할 예정이다.
AI 기반 지역 의료수요 예측모델도 개발한다. 인구 고령화와 감소, 환자의 의료 이용, 의료기관 접근성 등 여러 요인을 분석해 지역별로 필요한 병상과 의료인력, 진료과목을 전망하는 방식이다. 정부는 이를 지역 의료계획과 의료자원 배치에 활용할 방침이다.
간담회에서는 AI 지원 대상을 보건소와 보건지소뿐 아니라 전국 1890개 보건진료소까지 확대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왔다.
장지희 순천시 쌍지보건진료소장은 “보건진료소는 1인 근무지가 많아 소장이 자리를 비우면 주민이 다른 의료기관을 찾아야 한다”며 “공중보건의사 부족으로 보건진료소장이 인근 보건지소까지 책임지는 곳도 있다”고 말했다.
장 소장은 특히 고령 환자가 호소하는 소화불량이 단순 증상인지 심근경색의 전조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사례를 들며 “AI 기술이 보건진료소까지 보급된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AI를 활용할 수 있는 교육과 대체인력 확충도 동시에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는 AI만 보급하고 현장 인력을 충원하지 않으면 기술이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보건진료소와 보건지소의 법적 소관과 정보시스템이 서로 달라 AI 기본의료의 사각지대가 생기지 않도록 제도 정비도 필요하다.
◆구급차가 병원마다 전화하는 관행 바꾼다 = AI 기본의료의 두 번째 생활밀착 과제는 응급환자 이송이다. 정부는 구급대의 현장 출동부터 환자 중증도 분류, 수용 가능한 병원 선정, 응급실 치료와 상급병원 전원까지 지원하는 가칭 ‘응급 통합 AI 플랫폼’을 구축한다.
현재 구급대는 환자를 수용할 병원을 찾기 위해 여러 응급실에 반복해 전화해야 한다. 병원에 도착한 뒤에도 실제 수술이나 시술이 불가능해 다시 다른 병원으로 옮기는 사례가 발생한다.
정부 구상에 따르면 구급대원과 환자·보호자의 대화, 환자의 혈압·맥박·산소포화도와 증상 등을 AI가 실시간으로 수집해 중증도를 분류한다. 이어 환자 상태와 병원별 인력·장비·수술 가능 여부를 분석해 적정 병원을 추천한다.
병원은 환자가 도착하기 전에 상태를 확인해 의료진과 검사 장비를 준비한다. 지역 병원에서 최종치료가 어렵다고 판단되면 AI가 검사 결과와 진료기록을 요약해 전원 의뢰서를 작성하고 상급병원은 이 자료를 받아 치료계획을 미리 세운다.
정부는 이 시스템을 소방청의 ‘119 구급 스마트시스템’과 중앙응급의료정보망에 연결할 계획이다. 올해 하반기부터 실증·확산을 시작한다. 병원별 진료 역량을 실시간으로 평가하는 중앙 응급관제시스템은 2027년부터 고도화한다.
응급실에는 구급일지와 간호 초기평가 등 응급환자 특화 데이터를 학습한 임상의사결정 지원시스템을 개발한다. AI가 뇌출혈이나 대혈관 폐색 등 응급질환 가능성을 의료진에게 제시해 검사와 치료 결정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의식 소실 등으로 환자의 동의를 받기 어려운 때에는 의료진이 ‘나의 건강기록’을 열람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도 추진한다. 다만 사전에 응급상황 열람 동의를 받거나 예외적인 주민등록번호 처리지침을 마련하는 등 개인정보 보호장치가 전제돼야 한다.
◆‘국민 AI 건강비서’가 진료기록 해석 = 환자가 자신의 의료정보를 직접 관리하는 ‘국민 AI 건강비서’도 2027년부터 도입한다.
건강비서는 여러 병원에 흩어진 진료정보를 한 번에 확인할 수 있는 ‘나의 건강기록’ 플랫폼을 기반으로 작동한다. 처방전과 검사 결과, 의무기록에 포함된 어려운 의학용어를 일상적인 언어로 설명하고 개인별 건강관리를 지원한다.
CT와 MRI 등 의료영상도 나의 건강기록에 연동한다. 환자가 QR 인증을 통해 의료영상과 진료정보를 다른 병원에 전송할 수 있도록 해 병원을 옮길 때마다 종이 의무기록이나 영상 CD를 발급받는 불편을 줄인다. 불필요한 중복검사도 감소할 것으로 정부는 기대한다.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의뢰하거나 회송할 때는 AI가 방대한 기록을 분석해 환자 의뢰서와 수술계획서 작성 등을 보조한다. 다만 AI가 진료기록을 잘못 요약하거나 존재하지 않는 정보를 만들어내는 ‘환각’ 현상을 줄이기 위해 비정형 의료정보를 국가 임상데이터 전송표준인 ‘KR Core’에 맞춰 구조화하기로 했다.
AI 건강비서가 건강정보를 설명하는 기능과 의료행위를 구분하는 기준도 필요하다. 정부는 건강비서의 기능을 의학용어 해석과 비의료적 건강상담 등에 두고 구체적인 제공 범위는 추가 의견수렴을 거쳐 정할 계획이다.
◆72개 책임의료기관 잇는 AI 고속도로 = 지역 의료격차 해소의 핵심 기반은 ‘공공의료 AI 고속도로’다. 17개 권역책임의료기관과 55개 지역책임의료기관을 중앙 공공의료 AI 플랫폼에 연결한다.
개별 지방의료원은 고가의 GPU와 AI 서버를 직접 구축하지 않아도 중앙 플랫폼에 접속해 영상 판독과 의무기록 생성, 환자 의뢰·회송 정보 요약, 약물처방 적정성 검증 등의 AI를 사용할 수 있다.
올해 시범사업에는 권역책임의료기관 3곳과 지역책임의료기관 6곳이 참여하고 GPU 80장이 투입된다. 2027년에는 권역 10∼15곳과 지역 15∼20곳, 2028년에는 권역 17곳과 지역 30∼35곳으로 확대한다. 2029년에는 17개 권역책임의료기관과 55개 지역책임의료기관을 모두 연결한다. GPU는 2027년 약 320장, 2028년 800장 규모가 필요할 것으로 추산됐다.
노후한 지방의료원 전산시스템도 교체한다. 2026∼2027년 AI 솔루션과 연동되는 구독형 클라우드 병원정보시스템을 개발하고, 2027년부터 지방의료원의 의학용어와 임상데이터 표준화를 지원한다.
서울대병원 헬스케어AI연구원장인 이형철 교수는 간담회에서 “지방과 필수의료 분야는 GPU를 구매할 여력이 없고 병원마다 개별적으로 구축하는 것도 비효율적”이라며 “국가 AI 데이터센터와 병원을 연결하는 공공 AI 고속도로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의료 AI 분야에서 사용할 GPU가 여전히 부족하다며 중앙의 연산 자원을 병원이 실제로 이용할 수 있는 통신망과 망 분리 정책이 함께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 측도 의료 AI 서비스 확장을 위한 GPU와 국산 AI 반도체 지원을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진료·간호·수술·원무를 AI 중심으로 재설계 = 정부는 진료와 간호, 수술, 병동관리, 원무 등 병원 업무 전반을 AI 중심으로 재설계하는 ‘AI 네이티브 병원’ 구축도 추진한다.
국립대병원을 중심으로 가칭 ‘AI 지능형 병원정보시스템’을 공동 개발한다. 각 병원이 별도의 시스템을 반복적으로 개발하지 않도록 설계 단계부터 핵심 모듈을 함께 만들고 공동 사용하게 한다.
2026∼2027년에는 5대 권역별 AI 특화병원 시범사업을 추진한다. 폐렴·부정맥 진단과 폐결절 관리, 심뇌혈관질환 예후 예측, 환자 상태 악화와 낙상 감지, 음성 기반 회진·간호기록 작성 등을 실증한다.
지역 의원에서 상급종합병원까지 환자 기록을 토대로 의료기관 간 협진을 지원하는 AI 에이전트도 적용한다. 정부는 진료 정확도뿐 아니라 대기시간 단축과 의료진 업무부담 감소, 환자 편의성 등을 평가해 시스템을 보완한다.
다만 AI가 의료진을 대체하는 방식이 아니라 반복적인 행정과 기록 업무를 줄이고 의료진의 판단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설계돼야 한다. 특히 의료진이 부족한 지역에서 AI 도입이 추가 인력 확보를 미루는 명분으로 작용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 과제로 꼽힌다.
◆공공데이터 결합해 ‘한국형 의료 AI’ 개발 = 국민건강보험공단과 심평원, 질병관리청, 국립암센터 등에 흩어진 보건의료데이터를 확인하고 이용할 수 있는 가칭 ‘국가 보건의료데이터 원스톱 지원센터’도 설치한다.
기관별 데이터 보유 현황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보건의료데이터 지도’를 만들고 각 기관에 데이터 분석 전담팀을 둔다. 공공기관 데이터와 국립대병원 임상데이터, 국가통합바이오빅데이터의 연구자료를 결합해 AI 학습에 제공한다.
이를 토대로 국내 임상데이터와 독자 AI 모델을 결합한 소버린 의료 AI를 개발한다. 급성기 환자의 상태 악화 예측, 여러 영상의 종합 판독, 치료·수술계획 보조 등에 우선 적용한다. 외국인 데이터를 중심으로 학습한 AI가 한국인의 질병 특성과 진료환경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를 보완하겠다는 것이다.
데이터 활용 규제도 위험도에 따라 차등화한다. 비식별성이 확보된 저위험 가명데이터는 데이터심의위원회의 신속심의를 적용하고, 물리적 위해 가능성이 없는 가명데이터 연구는 기관생명윤리위원회 심의를 면제하는 방안을 검토한다. 자체 데이터심의위원회가 없는 지역 벤처와 스타트업을 위해 공용 심의기구도 설치한다.
반면 공공의료데이터의 상업적 오남용과 재식별, 유출 위험을 막기 위한 법적 장치도 마련한다. 정부는 디지털헬스케어법 제정 등을 통해 이용 목적 제한과 유출 방지, 관리·감독 체계를 정비할 방침이다.
◆AI 성과 평가해 건강보험으로 보상 = AI 기본의료가 의료기관의 일회성 시범사업에 그치지 않도록 건강보험 보상체계도 개편한다.
현재 일부 혁신 의료 AI는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 후 임상근거를 축적하는 최대 4∼5년 동안 비급여로 사용될 수 있다. 정부는 개별 AI를 사용할 때마다 비용을 지급하는 방식뿐 아니라 AI 도입이 환자의 건강 결과와 의료기관 운영을 얼마나 개선했는지 주기적으로 평가해 보상하는 체계를 검토한다.
평가지표에는 진단 정확도와 치료 성과, 환자 안전, 의료진 업무부담 감소와 함께 데이터·인프라·보안 등 의료기관의 AI 활용 기반도 포함할 예정이다.
간담회에서도 의료 AI가 비급여로 제공돼 소득에 따른 이용 격차를 키울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임상혁 녹색병원장은 “이미 의료현장에 많은 AI와 신의료기술이 보급됐지만 대부분 비급여”라며 “일반 국민이 감당하기 어려운 고가 기술이 되지 않도록 건강보험 수가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임상효과가 충분히 입증되지 않은 기술까지 서둘러 급여화하면 건강보험 지출이 늘고 불필요한 검사가 확산할 수 있다. AI 사용량 자체보다 중복검사 감소와 치료시간 단축, 합병증 예방 등 검증된 의료성과를 중심으로 보상하는 가치 기반 접근이 필요하다.
◆윤리·보안 없으면 국민 신뢰 얻기 어려워 = 의료 AI 윤리 가이드라인은 올해 하반기 대한민국의학한림원 연구를 거쳐 마련한다. AI의 오류가 발생했을 때 의료진과 병원, 개발기업 가운데 누가 책임을 질 것인지, AI의 판단을 환자에게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등이 주요 쟁점이다.
민감한 의료정보를 클라우드에서 처리할 수 있도록 보안 기준도 손질한다. 의료정보의 중요도에 따라 접근 권한을 구분하고 물리적 망 분리 대신 논리적 분리를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한다. 국가정보원 기준을 충족한 민간 클라우드를 활용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정도 정비한다.
지역 국립대병원의 연구개발비는 2021년 437억원에서 올해 1004억원으로 2.3배 늘었다. 정부는 이를 기반으로 지역 특화산업과 의료 AI를 연계한 권역별 AX 거점을 조성한다. 2026∼2028년에는 해외 의료 AI 연구자도 매년 6명씩 총 18명 유치한다.
한국형 AI 기본의료 모델의 해외 진출도 추진한다. 세계보건기구 AI 허브를 국내에 설립하고 오는 10월 제5차 세계바이오서밋에서 가칭 ‘AI 헬스케어 서울선언문’을 발표할 계획이다. 국내 병원과 의료 AI 기업이 함께 진출하도록 연구개발부터 실증, 사업화까지 묶어 지원한다.
AI 기본의료는 의료진과 병원이 부족한 지역에 수도권 대형병원의 역량을 디지털 방식으로 공유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AI는 진료할 의사와 간호사, 환자를 방문할 인력, 응급환자를 실제 수용할 병상을 대신할 수 없다.
보건진료소까지 포함하는 촘촘한 적용 범위, 현장 종사자 교육과 인력 확충, 공공병원 전산망 개선, 개인정보 보호, 임상적 효과에 따른 건강보험 보상이 함께 갖춰져야 한다. AI가 의료격차를 줄이는 ‘기본의료’가 될지, 비급여 중심의 새로운 의료격차를 만들지는 앞으로의 세부 제도 설계와 공공 투자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