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에너지 위기 수십년간 지속”
반다 인사이트 창립자 “지정학 의존도, 수입 의존도만큼 커져”
일본· 베트남 등 화석연료 비중 90% … GDP 3~6% 수입 비용
중동 분쟁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잇따른 지정학적 충격으로 에너지 안보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 이 가운데 아시아 국가들이 앞으로도 수십 년간 국제정세 변화에 따른 에너지공급 불안에 노출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22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에너지시장 분석업체 반다 인사이트의 창립자인 반다나 하리 대표는 싱가포르에서 열린 ‘블룸버그 지속가능 비즈니스 서밋’에서 “수입 의존도가 커질수록 지정학에 대한 의존도 함께 커진다”고 말했다.
이어 “아시아는 화석연료 수입 의존도가 계속 높아질 가능성이 크며, 이에 따라 지정학적 위험에도 장기간 노출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리 대표는 “현재 우리는 지정학적 격변기(geopolitical flux)에 놓여 있으며, 이러한 상황은 앞으로 최소 수년, 길게는 수십 년간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아시아의 에너지 소비구조는 여전히 화석연료 중심이다. 블룸버그는 “현재 아시아 1차 에너지 소비의 약 90%는 석유와 천연가스, 석탄이 차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여기에 경제성장에 따른 에너지 수요는 꾸준히 증가하는 반면 대규모 신규 유전과 가스전 개발은 제한적이어서 해외 수입의존 구조가 쉽게 바뀌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최근 미국·이란 전쟁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에너지 공급망이 지정학적 변수에 얼마나 민감한지를 다시 한번 보여줬다. 주요 산유국의 공급차질 우려만으로도 국제유가와 LNG 가격이 급등하는 사례가 반복되면서 에너지 수입국들의 부담도 커지고 있다.
이러한 환경 변화는 재생에너지 확대의 필요성을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 블룸버그NEF가 최근 발표한 ‘신에너지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재생에너지 전환은 특히 아시아 국가들의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는 효과가 클 것으로 분석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기준 일본·베트남·인도네시아·인도의 에너지 수입 비용은 국내총생산(GDP)의 3~6% 수준을 차지했다. 블룸버그NEF는 “신에너지 기술로의 전환은 수입 화석연료 의존도를 낮추고, 향후 국제 에너지가격 급등에 대한 각국의 회복력을 높여줄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국 역시 이러한 흐름에서 자유롭지 않다. 우리나라는 원유와 천연가스 대부분을 해외에서 수입하는 등 에너지 해외의존도가 93.6%(2024년 기준)에 달한다. 중동지역의 공급차질이나 국제 해상 운송로의 불안이 발생할 경우 에너지 가격과 산업경쟁력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와 관련해 국내 정유업계는 미국과 캐나다산 원유 도입을 확대하며 지정학적 위험 분산에 나서고 있으며, 정부 역시 전략비축유 확보와 장기 LNG 도입 계약 등을 통해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고 있다.
재생에너지와 원자력 등으로 에너지원을 다변화해 특정 지역이나 연료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는 것이 중장기 과제로 꼽힌다.
하리 대표는 에너지가 외교와 안보 수단으로 활용되는 이른바 ‘에너지 무기화’ 현상은 이제 피하기 어려운 현실이 됐다고 진단했다. 다만 산유국과 자원 보유국이 존재하는 만큼 국제 원자재 교역 자체가 붕괴되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앞으로는 에너지 안보를 위해 외교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공급원을 다변화하며 충분한 비축 능력을 확보하는 것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호 기자 jhlee@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