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젊은 치매’ 환자가 늘어나고 있다
초로기 치매환자 1만명, 전국평균 상회
후천적 요인 비중 커져, 조기 진단 필요
“치매는 노인의 병”이라는 통념이 빠르게 깨지고 있다. 한창 일하고 자녀를 키우며 사회의 중심에서 활동해야 할 40~60대가 기억을 잃기 시작하는 ‘초로기(조기발병) 치매’가 우리 곁에 성큼 다가왔다. 개인의 질병을 넘어 노동과 가족, 복지 시스템까지 흔드는 새로운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서울시는 24일 성북구 치매안심센터에 초로기 치매환자를 위한 ‘초록기억카페’ 4호점을 연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번 사업 의미는 관련 시설 하나가 늘어났다는 데 있지 않다. 서울시가 젊은 치매를 별도의 정책 대상으로 인식하고 대응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시에 따르면 서울의 초로기 치매, 이른바 젊은 치매 환자는 약 1만명으로 전체 치매환자의 6.7%를 차지한다. 전국 평균(6.0%)보다 높은 수준이다. 전국적으로 환자 수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건강보험 진료 통계에 따르면 초로기 치매 환자는 2009년 1만7772명에서 2018년 6만3231명으로 10년 새 3.6배 증가했다.
초로기 치매는 만 65세 이전에 발병하는 치매를 말한다. 무엇보다 경제활동이 가장 활발한 시기에 찾아온다는 점에서 노년기 치매와 성격이 다르다. 직장을 그만두거나 소득이 끊기고 배우자와 자녀가 돌봄 부담을 떠안으면서 가족 전체가 흔들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실제 서울시광역치매센터 연구에서도 초로기 치매환자는 노인성 치매환자보다 심리·경제적 취약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서비스만으로는 해결이 어려워 사회참여와 역할 회복을 함께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최근 의료계는 초로기 치매 증가에 더욱 주목하고 있다. 과거에는 유전적 요인이 원인으로 알려졌지만 최근에는 당뇨병, 대사증후군, 비만, 우울증, 흡연, 운동 부족 등 생활습관과 만성질환이 발병 위험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가 잇따르고 있다. 국내 연구에서는 당뇨병 유병기간이 길수록 초로기 치매 위험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고 해외 대규모 연구에서도 우울증과 신체활동 부족 등이 주요 위험요인으로 제시됐다.
진단 기술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최근 국내 연구진이 참여한 국제 공동연구에서는 혈액검사 기반 바이오마커를 활용해 초로기 치매를 보다 정확하게 진단하고 예후를 예측할 가능성을 확인했다. 전문가들은 “조기 진단이 이뤄질수록 치료와 사회적 지원을 시작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난다”고 강조한다.
해외에서는 이미 ‘젊은 치매’를 별도 정책 영역으로 다루는 사례가 늘고 있다. 영국 NHS는 Young-onset Dementia 서비스를 통해 취업, 가족상담, 심리치료를 함께 지원하고 있다. 네덜란드와 호주도 지역사회 기반의 낮활동 프로그램과 직업·사회참여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의료뿐 아니라 사회와의 연결을 끊지 않는 것이 치료의 중요한 축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의 초록기억카페도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환자들이 스마트팜에서 작물을 재배하고 음료를 만들며 주민을 만나는 과정 자체를 인지재활과 사회참여 프로그램으로 설계했다. 실제 시범 운영 결과 참여자의 우울감은 23% 감소했고 자기효능감은 높아졌다. 가족의 돌봄 부담도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감소했다. 시는 현재 4곳인 초록기억카페를 장기적으로 25개 자치구 치매안심센터 전체로 확대할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초로기 치매를 더 이상 개인이나 한 가정의 불운으로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기대수명 연장과 만성질환 증가 속에서 젊은 치매는 앞으로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 최근 국내 연구에서도 치매 유병률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초로기 치매에 대한 조기 발견과 맞춤형 지원체계 구축이 중요한 과제로 제시됐다.
조영창 서울시 시민건강국장은 “초로기 치매는 노인성 치매환자와 달리 사회적 역할 상실과 관계 단절을 동시에 겪는 경우가 많아 사회 참여 기회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초록기억카페와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환자들이 지역사회와 소통하고 활력을 되찾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한편, 치매환자와 그 가족까지 함께 아우르는 지지 체계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제형 기자 brother@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