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필수공공의료 안착 …인력·재정·책임 기준이 좌우
의협 “수가 순증·의료사고 면책·현장 협의 필요”
보건의료노조 “직종별 인력기준·공공성 확보해야”
정부가 지역에서 중증·응급·분만·소아 진료를 완결하는 ‘지역·필수·공공의료 강화 추진전략’을 내놓은 데 대해 대한의사협회와 보건의료노조가 입장을 밝혔다. 인력·재정·의료사고 안전망·인공지능(AI) 책임 기준을 구체화해야 한다는 데 공통된 목소리를 냈다.
24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정부는 전국을 대·중·소진료권으로 나눠 환자의 중증도에 따라 의료기관의 역할을 분담하는 ‘지역·필수·공공의료 강화 전략’을 추진한다. 대진료권은 5극3특을 중심으로 중증진료를, 중진료권은 중등도 진료를, 시군구 단위 소진료권은 경증진료와 건강관리를 담당하도록 하는 구상이다.
◆의협 “필수의료 투자 환영…기존 수가 삭감 안 돼” = 대한의사협회는 중증·응급·소아·분만 분야에 대한 집중 투자와 의료사고 안전망 확충 방향은 환영하면서도, 일부 정책은 의료현장의 지속가능성을 해칠 수 있다며 정부와의 공식 협의를 요구했다.
의협은 정부가 건강보험 연 3조6000억원과 지역필수의료 특별회계 1조2000억원을 투입하고 야간·휴일 중증수술 가산과 고위험 분만 수가 등을 인상하기로 한 것은 의료계가 지속적으로 요구해 온 사안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필수의료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이른바 ‘과보상’ 분야의 수가를 삭감하는 방식에는 반대했다. 한 분야의 수가를 줄여 다른 필수의료 분야에 투입하는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가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무엇이 과보상인지는 정부가 일방적으로 정할 것이 아니라 과학적인 원가 분석과 의료계 협의를 거쳐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건강보험 재정 내부의 몫을 재배분하는 수준을 넘어 법정 국고지원을 정상화하고 국고 투입액을 순증해 지역필수의료 인프라에 직접 투자해야 한다고 밝혔다.
공중보건의사와 군의관의 복무기간 단축도 최우선 과제로 제시했다. 현역병 복무기간은 18개월인 반면 군의관·공중보건의사는 훈련기간을 포함해 사실상 38개월을 복무하면서 의대생들이 의무장교보다 현역병 입대를 선택하는 현상이 확산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의협은 공중보건의사 신규 배치 인원이 과거 800명대에서 92명까지 줄었고 공중보건의사가 배치되지 못한 보건지소가 730여곳에 이른다며, 군의관·공중보건의사 제도의 붕괴는 미래의 위험이 아니라 현재 진행 중인 문제라고 강조했다. 복지부·국방부·병무청 협의와 관련 법률 개정을 서둘러야 한다는 것이다.
◆의료사고 안전망, 형 감면 넘어 면책 요구 = 정부는 불가항력 의료사고 보상금을 최대 3억원으로 확대하고 모든 의료기관의 책임보험 가입을 의무화하되 국가가 보험료를 지원할 계획이다. 고위험 필수의료 사고는 최대 18억원까지 손해배상을 지원하고 중과실이 아닌 경우 기소 제한과 형 감면을 허용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의협은 국가의 배상 지원과 형 감면은 긍정적이지만 필수의료 의사들이 느끼는 사법적 위험을 해소하기에는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정상적인 필수의료행위 중 발생한 불가피한 사고는 민사상 배상이 충분히 담보된다면 중과실이 없는 경우 형사책임을 면제하는 수준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새로 설치할 의료사고심의위원회 아래에 진료과와 사고 유형별 전문위원회를 두고, 하위법령 설계 과정에 의료계의 공식 참여도 보장해 달라고 요구했다.
의협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할 경우 환자의 권리구제가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따라서 의료진의 방어진료를 줄이면서도 환자의 신속하고 충분한 피해보상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설계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형사책임 감면·면책의 적용 범위와 중과실 판단 기준, 감정 절차의 독립성, 국가 보상 재원의 지속가능성을 함께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노조 “기능 중심 전달체계는 진전” = 보건의료노조는 이번 전략이 의료기관 명칭이나 종별이 아니라 실제 수행 기능과 환자 중증도를 중심으로 전달체계를 재편하고, 공공병원의 공익적 기능을 별도로 보상하려 했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개별 진료과 수가 인상이나 단기 지원에 머물렀던 종전 대책에서 벗어나 지역의료를 하나의 체계로 구축하려는 종합계획이라는 것이다. 특히 지역거점공공병원의 지불제도를 진료량 중심에서 질·성과와 기관별 총액보상 방식으로 바꾸는 방향을 상당한 진전으로 평가했다.
다만 노조는 진료권을 고시하고 지역수가를 가산한다고 해서 의료기관의 기능이 자동으로 분화되거나 수도권 환자 쏠림이 해소되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진료권별 병상·인력·재정 배분과 함께 상급종합병원의 경증 외래 축소, 실효성 있는 의뢰·회송체계, 부여된 기능을 이행하지 않는 의료기관에 대한 평가·조정 수단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노조가 가장 큰 공백으로 꼽은 것은 보건의료인력 대책이다. 정부 전략에는 국립대병원 전임교수 확대, 계약형 지역필수의사제, 지역의사제, 국립의학전문대학원 등 의사인력 대책이 비교적 상세하게 담겼지만 간호사를 비롯한 비의사 인력 대책은 필수분야 장기근무 지원 확대 등에 그쳤다.
중증응급의료센터와 중증모자의료센터, 달빛어린이병원, 재택의료센터를 확대하고 비수도권 지역거점공공병원의 모든 병동에서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제공하려면 의사뿐 아니라 간호사·의료기사·약사·간호조무사 등 직종별 인력이 함께 확보돼야 한다.
노조는 “인력 확충 없이 순환당직과 파트타임, 인력 파견 등 배치 유연화만 확대하면 부족한 인력을 기존 노동자의 노동강도 상승과 불안정 고용으로 메우게 된다”고 우려했다.
공공병원 총액보상제 역시 적정인력 기준과 결합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적정한 직종별·근무조별 인력기준 없이 총액만 정하면 병원이 비용을 줄이기 위해 결원을 방치하거나 인건비를 줄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수가와 지원금이 실제 인력 확충과 처우개선에 사용됐는지 공개·검증하는 장치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포괄2차종합병원 등 공적 지원을 받는 민간병원에는 인력 배치와 고용 유지, 필수의료 제공, 지원금 사용과 재투자에 관한 책임을 부과해야 한다고 밝혔다. 공공병원의 ‘공익적 적자’와 단순한 경영 부실을 구분할 회계기준을 마련하는 것도 과제로 제시했다.
◆AI에는 양측 모두 ‘안전·책임 기준’ 주문 = 공공의료 AI 도입에 대해서는 두 단체가 공통으로 안전과 책임 기준을 요구했다.
보건의료노조는 공공의료 AI 고속도로와 지방의료원 전산시스템 개선이 디지털 전환에서 뒤처진 지역 공공병원을 지원한다는 점에는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나 AI가 부족한 인력을 대신하는 수단으로 사용돼서는 안 되며, 의료인의 업무 부담을 낮추고 환자안전을 높이는 보완수단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AI 도입 전후 업무량과 인력 변화, 환자안전에 대한 영향평가를 실시하고 현장 노동자가 도입 과정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응급환자의 개인건강기록 열람도 사전동의를 원칙으로 하되 생명·신체에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만 법률에 따라 최소한의 정보를 열람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협 역시 AI 시스템 오류로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때 정부·개발사·의료기관·의료인 가운데 누가 책임을 질 것인지 명확히 해야 한다고 밝혔다. AI의 권고를 참고해 최종 판단을 내리는 의료인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보상이 필요하며, 보건의료 데이터 활용 확대에 앞서 개인정보 보호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한국형 주치의제를 놓고는 의협의 경계가 상대적으로 강했다. 환자의 의료기관 선택권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운영될 가능성이 있다며 규제보다 자율적인 참여와 지원 확대를 중심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로서는 주치의제의 목적이 의료이용 통제가 아니라 지속적인 건강관리와 적정한 의뢰·회송에 있다는 점을 제도 설계와 시범사업을 통해 입증해야 할 과제를 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