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이 바꾸는 인사권, 채용·평가·배치까지
퇴직 관리로도 활용 확대 … 공정성과 책임성 확보가 과제
인공지능(AI)이 취업 준비를 넘어 기업의 인사권까지 바꾸고 있다. 채용과 성과평가, 교육훈련, 인사배치, 퇴직관리까지 인공지능이 관여하는 시대가 열리면서 기업들은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고 있다. 반면 알고리즘이 사실상 인사 결정을 좌우하면서 공정성과 책임성, 개인정보 보호를 어떻게 담보할 것인지를 둘러싼 논의도 본격화하고 있다. 인사권을 보조하는 수준에 머물지, 인사권 행사 방식 자체를 바꾸는 수준으로 발전할지도 새로운 쟁점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은 최근 발간한 ‘AI의 발달과 인사관리(HR)에 대한 적용’ 보고서에서 생성형 인공지능이 인사관리 전반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며 기술 확산에 걸맞은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취업도 AI와 함께 준비한다 = 인공지능은 구직자의 취업 준비 방식부터 바꾸고 있다. 자기소개서를 첨삭하고 모의면접을 진행하는 수준을 넘어 개인의 경력과 역량을 분석해 지원 기업과 직무를 추천하고 취업 전략까지 설계하는 도구로 활용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사람인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인공지능 취업 준비 서비스 이용자는 지난해 하반기보다 96% 증가했다. 조사 대상자 10명 가운데 6명은 취업 준비 과정에서 인공지능을 활용한다고 답했다.
민간과 공공 취업서비스도 관련 기능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잡코리아에서는 인공지능 추천 채용공고를 통한 입사 지원이 2023년 4분기보다 2025년 4분기 280% 증가했고 추천 공고 조회는 93% 늘었다. 고용노동부의 고용24에서는 인공지능 일자리 연결 서비스를 통해 취업한 사람이 2025년 17만2000명으로 전년보다 66% 증가했다. 추천 일자리에 지원해 취업한 사람은 2만1000명으로 61% 늘었고, 직무역량 분석 서비스인 ‘잡케어’ 이용도 41만2000건으로 29% 증가했다.
서비스도 자기소개서 첨삭과 모의면접에 머물지 않는다. 맞춤형 채용공고 추천과 직업탐색, 직업훈련 연계, 경력설계까지 지원하면서 인공지능이 구직자의 취업 준비 전반에 들어온 것이다.
◆인사권도 데이터로 움직인다 = 기업의 인사권 행사 방식도 경험과 직관 중심에서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으로 빠르게 옮겨가고 있다.
인공지능은 사람을 대신해 판단하기보다 방대한 인사 데이터를 분석해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활용된다. 자기소개서와 면접 결과, 성과, 교육 이력, 근태, 보상 등 다양한 정보를 종합 분석해 채용과 평가, 배치에 필요한 근거를 제공하는 것이다.
연구진은 이를 스마트공장에 비유했다. 생산 데이터를 활용해 공정 효율을 높이듯 인사 데이터 분석을 통해 의사결정의 객관성과 효율성을 높인다는 의미다.
생성형 인공지능은 직무기술서와 채용공고, 면접 질문을 작성하고 머신러닝은 직원 역량을 분석해 맞춤형 교육을 추천하는 등 단순 행정 지원을 넘어 인사 전략을 지원하는 단계로 발전하고 있다.
관리자의 경험과 직관에 더해 데이터 분석 결과가 주요 판단 근거로 자리 잡고 있다.
◆채용의 기준도 달라졌다 = 변화가 가장 먼저 나타난 분야는 채용이다. 초기에는 이력서를 자동 분류하는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면접 평가와 직무 적합성 분석까지 활용 범위가 확대됐다.
삼성전자와 SK그룹 유니레버 소프트뱅크 등 국내외 기업들은 인공지능을 활용해 서류 심사와 직무 분석, 채용 절차를 고도화하고 있다. 인공지능은 채용 기간을 단축하고 평가의 일관성을 높일 수 있지만 학습 데이터에 편향이 남아 있으면 기존 차별을 반복하거나 새로운 차별을 만들 가능성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기업 인사담당자는 “인공지능은 수많은 지원자 가운데 적합한 후보를 빠르게 압축하는 데 강점이 있지만 조직 적합성과 성장 가능성까지 판단하는 일은 결국 사람이 맡아야 한다”고 말했다.
◆평가와 교육이 하나의 과정으로 = 채용에서 시작된 변화는 성과평가와 교육훈련으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기존 성과평가는 일정 기간의 실적을 종합해 결과를 평가하는 방식이었다. 반면 인공지능은 업무 자료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목표 달성 정도를 파악하고 필요한 교육과 상담까지 제안한다.
기업들은 평가 결과를 직원별 역량 진단과 맞춤형 교육, 경력 개발에 활용하고 있다. 평가와 교육훈련이 별개의 절차가 아니라 연속된 인재 관리 과정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인사이동에도 데이터 분석이 활용된다. 직원의 경력과 성과, 직무 경험, 교육 이력, 희망 근무지 등을 종합해 적합한 직무와 부서를 추천하는 방식이다.
KB국민은행과 우리은행 등은 인공지능 기반 인사배치 시스템을 활용해 인력 운영의 객관성과 효율성을 높이고 있다. 조직 규모가 클수록 데이터 기반 인사 운영은 배치의 일관성과 투명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활용 범위는 퇴직 가능성 예측으로도 넓어졌다. 근태와 성과, 보상 수준, 승진 여부, 교육 이력 등을 분석해 이탈 가능성이 높은 직원을 가려내고 핵심 인재 유지나 직무 전환 대책을 마련하는 데 활용한다.
◆효율성 높였지만 공정성은 숙제 = 인공지능 기반 인사관리는 채용 기간을 단축하고 평가의 일관성을 높이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알고리즘이 채용과 평가, 승진 등 의사결정에 깊숙이 관여할수록 공정성과 책임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는 더욱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오계택 노동연구원 노사관계연구본부장 등 연구진은 알고리즘 편향과 설명 가능성, 개인정보 보호를 인공지능 인사관리의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학습 데이터가 특정 성별이나 연령, 학력 등에 편중돼 있으면 기존 차별이 반복되거나 새로운 차별이 생길 수 있으며 채용 탈락이나 낮은 평가의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면 결과에 대한 신뢰를 얻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알고리즘이 과거의 채용·평가 자료를 학습하는 과정에서 기존 조직에 남아 있던 편견까지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효율성을 이유로 판단 과정을 공개하지 않으면 당사자는 어떤 자료와 기준 때문에 불이익을 받았는지 알기 어렵다.
이 때문에 해외에서는 인공지능을 인사 결정의 보조 수단으로 제한하기 위한 제도 마련이 시작됐다.
유럽연합(EU)은 AI법(AI Act)을 통해 채용과 성과평가, 승진, 해고 등에 활용되는 인공지능을 ‘고위험 AI’로 분류했다. 위험관리와 데이터 품질 확보, 인간의 감독, 투명성 확보 등을 의무화해 알고리즘이 인사 결정을 전적으로 대신하지 못하도록 했다.
우리나라도 ‘AI 기본법’을 제정해 산업 육성과 신뢰 기반 마련에 나섰지만 고용 분야에서 인공지능을 어떻게 활용하고 통제할 것인지에 대한 세부 기준은 아직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동계에서는 인공지능 활용 자체를 반대하기보다 노동자가 자신에 관한 어떤 정보가 수집·분석됐는지 확인하고 결과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채용과 평가, 승진 등 인사 결정의 최종 책임은 기업이 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인공지능이 조직문화와 협업 능력, 리더십, 잠재력처럼 수치로 환산하기 어려운 요소까지 온전히 평가하기는 어렵다. 인사 결정의 최종 책임을 사람이 져야 한다는 원칙이 중요한 이유다.
기업에 필요한 것은 인공지능 도입 실적이 아니라 활용 기준이다. 어떤 업무에 적용하고, 판단 과정을 어디까지 공개하며, 오류나 차별이 발생했을 때 누가 책임질지를 정하는 일이 기술 도입보다 앞서야 한다.
장세풍·한남진 기자 spj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