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획일적 중복상장 금지, 벤처기업 성장 방해”
기술성장 특수성 반영 주문 투자회수 선순환 구조 필요
정부가 추진하는 ‘중복상장 원칙 금지·예외 허용’ 제도를 두고 벤처업계의 우려가 지속되고 있다.
일반주주 보호와 주식시장 건전화라는 정책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벤처기업의 기술사업화와 투자회수 구조를 위축시킬 수 있어서다.
27일 벤처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는 ‘중복상장 원칙금지’의 세부기준을 담은 한국거래소 규정과 중복상장 기준안에 대한 공식 의견수렴을 마쳤다. 내부의결을 거쳐 빠르면 이달 말에 시행될 예정이다.
기준안을 살펴보면 금융당국은 중복상장시 모회사 이사회에 5대 의무를 부과한다.
중복상장 시 △주주 영향 평가 △주주보호 방안 마련 △주주 동의 확인 △이사회 결의 후 자회사 통보 △모든 이행사항 공시 등을 지켜야 한다. 이중 주주동의의 경우 3%를 초과하는 의결권을 보유한 주주(최대주주 등)는 3%로 의결권을 제한한다.
금융당국은 이러한 주주보호 장치를 갖춘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중복상장을 허용하기로 한 것이다. 이른바 ‘쪼개기 상장’을 막고 일반주주 권익을 보호하겠다는 취지다.
벤처업계도 정책 취지에는 공감한다. 다만 대기업과 벤처기업의 성장방식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벤처기업협회는 지난 14일 정부의 중복상장 규제에 대한 벤처업계 의견으로 △코스닥 벤처기업 별도 심사경로 신설 △3%룰 완화 및 절차 간소화 △심사기준 명확화와 예측가능성 확보 △해외상장 규제 완화를 핵심 보완과제로 제시했다.
이민형 벤처기업협회 혁신정책본부장은 “벤처기업은 기술사업화를 위해 자회사 설립과 분리상장이 일반적인 성장방식”이라며 “대기업과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벤처기업의 특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벤처기업은 인공지능(AI) 생명공학 반도체 로봇 등 신기술을 사업화하는 과정에서 연구개발 조직을 별도 법인으로 분리하고 외부투자를 유치하는 구조가 일반적이다.
자회사의 기업공개(IPO)나 인수합병(M&A)은 자금확보의 핵심 수단이기 때문이다.
중복상장을 획일적으로 제한하면 투자회수 통로가 좁아져 초기 벤처투자까지 위축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김학균 한국벤처캐피탈협회 회장은 “규제기준을 ‘중복상장 여부’가 아닌 ‘자회사 IPO를 통한 지배주주 지배권 강화 여부’로 재설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우려 가운데 최근 첫 예외허용 사례가 나와 주목된다.
지난 20일 한국거래소는 덕산하이메탈 자회사 덕산넵코어스와 다산네트웍스 자회사 다산DTS의 상장 예비심사를 승인했다. 두 기업 모두 모회사 일반주주의 동의를 거쳐 사업독립성과 주주보호 방안을 인정받아 예외적용을 받았다.
새 제도가 획일적인 금지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 첫 사례다.
하지만 벤처업계는 예외 인정만으로 불확실성이 해소됐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김재원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의장은 “규제에만 무게가 실리면 자금이 절실한 혁신창업까지 위축된다”며 “혁신기업의 자금조달 통로는 지켜 달라”고 말했다.
벤처기업 1세대 남민우 다산그룹 회장도 지난 21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덕산과 다산 사례는 잘 비켜갔지만 여전히 광범위한 중복상장 금지정책은 재고돼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투자자 보호라는 선의에서 시작된 정책이라도 기업가정신과 성장동력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김창배 기자 goldwi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