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을 여는 책 | 국가는 잘사는데 왜 국민은 못 사는가
금권정치에 배반당한 '아메리칸 드림'
'아메리칸 드림'. 누구에게나 기회를 주는 땅, 그 땅에 사는 이들에게 중산층이란 '좋은 일자리와 훌륭한 복지 혜택, 그리고 내 집을 소유한다'는 의미였다. 자본주의의 천국인 미국에서 탄생한 '아메리칸 드림'은, 가난하나 성실하고 꿈을 가진 사람들을 전 세계에서 불러들였다. 그리고 그 신화는 또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그러면 21세기에 접어든 이 시대에도 아메리칸 드림은 여전히 유효한가. '국가는 잘사는데 왜 국민은 못사는가'(원제 'The Betrayal of the American Dream')를 공동 집필한 도널드 발렛과 제임스 스틸은 그렇지 않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탐사보도팀을 이뤄 40년 넘게 함께 일해 온 두 사람은 보도 부문 퓰리처상을 2번씩이나 받은 베테랑 저널리스트들. 그들은 아메리칸 드림이 어떻게 사라지게 되었는지 구체적인 사례들을 추적해 보여준다. 아울러 그 배후에 도사린 미국의 금권정치 실태를 샅샅이 파헤친다.
1% 위한 정책이 불평등 불러왔다
실업과 비정규직의 증가, 연금 재정이 바닥나 축소된 연금, 줄줄 새는 세금, 오프쇼링과 아웃소싱에 따른 일자리 감소가 현재 미국의 자화상이다. 20세기 중엽에만 해도 자본주의의 모범생으로서 찬연히 빛나던 미국사회가 왜 이리 몰락했을까.
지은이들은 서문의 첫 줄부터 강하게 비판한다. "권력을 가진 소수는 스스로를 살찌우면서도 미국의 가장 큰 자산이라 할 중산층의 생존 기반은 허물어뜨리는 정책을 써 왔다"라고. 이어 "지금 미국은 부유하고 권력을 가진 소수 지배층의 손아귀에 놓여 있다"고 경고한다.
그 지배층이란 '다른 이들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면서도 자신들이 누리는 삶의 편익을 극대화하려는 자들과 정치인들이 혼합된 집단'이다. 구체적으로는 다국적기업을 포함한 대기업들과 월스트리트이고, 워싱턴 정계에 자리 잡은 자들이다. 그들을, '싱크탱크'라 불리는 연구단체들과 언론, 사법부가 뒷받침한다.
미국을 소수 지배층에게 넘긴 건 결국 조세 체제, 세금이었다. 1955년 가구 소득 기준으로 최상위 부유층 400명은 수입의 51.2%를 연방세로 냈다. 세율은 갈수록 낮아져 2007년에는 최상위 400명이 수입의 16.6%만을 연방세로 납부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최상위 부자인 연 20만 달러(2011년 기준으로 250만 달러 정도) 이상 소득자들에게는 94%까지 세금을 매겼다. 20만 달러라면, 누구든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는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부자에 대한 세율은 점차 낮아지다가 로널드 레이건이 대통령으로 된 뒤로 급격히 추락했다. 레이건이 취임할 때 배당금과 이자 등 불로소득에 붙는 세금은 70%까지였다. 하지만 2012년 현재 그 세율은 15%로 떨어졌다.
2003년에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관련법을 개정해 배당금에 대한 최고 세율을 15%로 낮추었다. 이 조치로 가장 부유한 자들의 주머니에는 각각 수십억 달러가 들어간 반면 연방정부는 그 후 7년 간 1000억 달러가 넘는 세수 감소를 겪었다.
미국에서도 기승부리는 '관피아'
부시는 훗날 "미국 전역의 가정이 배당금 세율 감면의 혜택을 보고 있다. 미국인 가구의 절반이 주식시장에 투자한다"고 변명했다. 부시의 법 개정은 지난 10여년 사이에 상위 1%가 '극한의 번영'을 누리는 기초가 되었다.
'상위 1%'는 세금 감면으로 넉넉해진 주머니로 워싱턴 정계에 로비를 벌이고 이는 '1%만을 위한 정책'으로 되돌아왔다.
2011년 가을에 일어난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에서는 "당신들이 부자가 되는 것은 관심 없다. 당신들이 우리 정부를 매수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피켓이 등장했다.
로비를 인정하는 미국의 법 체제는 정경유착을 심화했다. 2010년 연방대법원이 '표현의 자유'를 내세워, 개인이건 기업이건 무제한으로 선거자금을 지원하도록 허용하는 판결을 내린 뒤로 선거운동 기부금과 로비 자금은 더욱 기승을 부렸다. 지은이들의 표현을 빌린다면 '대중의 의지가, 현금지급기처럼 뿌려대는 지배층의 자금을 이기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진' 것이다.
2008년 전 세계에 경제 위기를 불러온 미국의 금융 규제 완화는 '99년금융서비스현대화법'에서 비롯되었다. 이 법안을 발의한 텍사스주 상원의원 필 그램은 의원직에서 물러난 뒤 스위스의 거대 은행 UBS의 부회장이 되었다. UBS는 물론 그 법으로 혜택을 입은 은행 중 하나였다.
UBS의 탈세를 내부 고발한 브래들리 버켄펠트가 오히려 감방에 가고, 세금 사기를 주도한 그의 상관은 '형사사건에서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받지 않는다'는 수정헌법 5조를 내세워 기소를 면제받은 사건은 미국을 충격에 빠뜨렸다.
버켄펠트가 법원 판결을 받은 며칠 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친구들과 골프를 치며 휴가를 즐겼다. 동행한 인물 중에는 UBS 미국 법인 대표가 있었는데, 그는 대통령 선거 때 정치자금 주요 모집책이었다.
결국은 투표뿐이다
미국인들은 이제 공과금을 제대로 낼 수 있을지, 아이들을 대학에 보낼 수 있을지, 은퇴 생활을 즐기지 못하고 영원히 일해야 하는 건 아닌지를 걱정한다.
이러한 걱정을 떨치고 중산층을 복원하려면 의회의 도움이 필요하다. 부유층에 대한 세금을 인상해 세법에서 형평성을 되찾으려는 시도는 분명 '계급 간 전쟁'을 촉발할 터이다. 그래도 모든 변화를 위해 국민이 승리해야 한다.
그래서 지은이들은 '여전히 가장 큰 유권자 집단'인 중산층에게 자신의 경제적 생존을 당파적 충성심보다 앞에 두어야 한다고 충고한다. 아울러 후보들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지도록 권한다. '개인 및 법인 세율의 공정성을 회복하는 세제 개혁을 지지하는가?' '경제를 활성화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주요 사회간접자본 시설에 대한 정부 투자를 지지하는가?' 등이다.
유권자가 후보 중에 누구를 선출하고 어떤 계획과 정책을 지지하는가에 따라 미국의 방향이 결정된다고 강조한 지은이들은 연방대법관을 지낸 루이스 브랜다이스의 말로 저작을 끝맺는다.
"우리는 소수의 손에 부를 집중시켜 줄 수도 있고, 민주주의를 누릴 수도 있다. 하지만 두 가지를 동시에 가질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