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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국립대가 아니라 도립대라고 할까

2025-12-19 13:00:02 게재

“국립대가 아니라 도립대입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깜짝 놀랐다. 대학 브랜드파워를 어떻게든 충전하려고 대학명에 ‘국립’을 붙여 ‘국립○○대학교’로 개명했는데 도립대라니…. 중소 국립대의 현실을 이처럼 희화적으로 응축한 말도 없을 듯하다.

거점국립대를 제외한 국립대와 사립대는 사면초가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명분으로 새해 고등교육 재정이 거점국립대에 집중되는 상황이어서다. 당장 2026학년도 정시 모집에서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곳이 수두룩할 수 있다.

중소 국립대의 자조는 뭘까. 옥상옥 문제다. 윤석열정부에서 시작해 이재명정부로 이어진 글로컬(Glocal)과 라이즈(RISE)사업은 대학이 교육부에 더해 자치단체에도 머리를 조아리게 만드는 구조다.

두 사업은 산학연 강화와 자치단체와의 연계가 중요하다. 광역단체와 기초단체가 사업의 공동 실행기관으로 묶인다. 그간 교육부가 대학에 고등교육 예산을 배분하던 것을 자치단체에 일부 넘기고, 자치단체는 정부 예산을 대리 집행한다. 자치단체는 일부를 자체 재원으로 대야 한다. 국토 균형발전을 이루자는 취지다.

취지는 근사한데 현실은 가시밭길이다. 대학은 사업을 따내는 과정에서 계획서에 자치단체와의 ‘협력’을 강조했다. 그런데 같은 국민 세금인데 자치단체를 거치다 보니 돈의 유통구조가 복잡해졌다. 어느 대학은 단체장과 정부 성향이 맞지 않아 삐걱거리고, 어느 대학은 단체장의 ‘교육 무관심’에 애를 먹는다. 총장이 단체장을 붙들고 읍소하고, 교수들은 공무원에 조아린다. 재정 집행도 더디다. 대학은 지방선거를 앞둔 단체장의 ‘표 놀이’에 자존심을 구긴다. “국립대가 아니라 도립대”라는 어느 총장의 자조는 그런 맥락이다.

대학에 ‘갑’ 군림 지자체, 예산 집행 부작용

사업 명칭도 어렵다. 교육부는 사업명을 대부분 영어로 만든다. ‘세계적 대학 육성’이나 ‘지방대학 혁신’ 식으로 단순화해도 될 일인데 말이다. 예는 숱하다. 에이스(ACE)’ ‘스터디 코리아 300K’ ‘링크(LINC)’ ‘하이브(HiVE)’….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2일 교육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이걸 뭐라고 하더라, 나이스라고 하던가요?”라고 물은 것도 이해된다. ‘나이스(NEIS, National Education Information System)’는 학생·교원·행정을 통합 관리하는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이다. 영문 약자가 ‘NEIS’인데 ‘나이스’로 부르는 것은 이상하다.

그날 교육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특이한 장면이 있었다. 교육에 남다른 관심이 없어 보였던 이 대통령의 질문은 직설적이었다. “같은 국립대인데 연구용역비를 제외하면 왜 서울대에 돈을 더 많이 주나. 산업화 시대에는 자원이 없어 큰아들에게 몰빵했지만 지금까지 그러고 있는 것은 너무 잔인한 일이다. 큰아들이 부자가 돼 떵떵거리고 사는데 계속 더 몰아주고 있는 꼴이다. 이유가 뭔가?”

최교진 장관은 답변 못 했다. 최은옥 차관과 윤소영 지역인재정책관이 대신 나섰는데 긴장해서인지 엉성했다. 윤 국장은 “서울대는 연구용역비를 제외한 정부 재정이 7200억원, 거점국립대는 평균 2980억원”이라며 두루뭉수리 답변했다. 이 대통령이 답답해하며 “왜”를 재차 묻자, 최 차관은 “서울대는 법인이라 통째로 주고, 그간 신경 써 편성한 것이 누적돼서~”라고 했다. 최 장관의 인식은 협소했다. 당시 이 대통령과의 대화 내용을 있는 그대로 되새겨 보자. 이 대통령 “(세종)교육감에서 교육부 장관으로 입지가 바뀌었는데 일부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대학 재정으로 넘기는 데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최 장관 “시도교육청 예산을 보면 80% 이상이 인건비 등 고정경비이고, 새로운 사업이 늘고 있어 교육 환경을 개선하는 데 돈이 많이 필요합니다. 교부금에 손대기보단 고등교육재정 교부금은 새롭게 (제정하는 방법으로) 모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대통령 “교육감으로서 정체성을 여전히 갖고 계신 것 같네요.”

장관은 ‘교육감 옷’ 벗고 멀리 넓게 봐야

교육부는 대통령의 말을 가벼이 여겨서는 안된다. 선방했다고 안도해서도 안된다. “국립대가 아니라 도립대”라는 현장의 외침, 사립대 재정 지원 불균형,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의 재설계 당위성 등을 더 큰 눈으로 더 멀리, 더 넓게 봐야 한다. 그게 교육부 장관과 교육관료의 ‘존재이유’이고 실력 아닌가.

양영유 단국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