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빅테크들이 우주로 가려고 하는 까닭
머스크·베이조스·피차이·젠슨 황 의기투합 … 데이터센터 전력·냉각문제 해결 가능성에 주목
챗GPT, 제미나이 등 생성형 AI 모델은 학습뿐 아니라 상시 추론 과정에서도 막대한 전력을 소모한다. 기업들은 전력 확보 여부가 곧 AI 경쟁력으로 직결된다고 판단하고 있다.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xAI가 임시로 가스터빈 발전기를 가동해 연산 전력을 확보하고 있는 상황은 이러한 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업계에서는 지상 전력·냉각·데이터센터 건설 병목이 AI 성장 속도를 직접적으로 제약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평가한다.
월가와 기술 업계가 주목하는 핵심 논리는 단순하다. AI 시대 가장 부족한 자원은 전기이며, 우주는 전력과 냉각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것이다.
전력과 냉각 해결하는 우주 공간의 매력
우주 환경의 장점은 분명하다. 태양광을 24시간 안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고, 우주는 약 영하 270℃로 이를 이용한 자연냉각으로 별도의 냉각설비가 거의 필요 없다. 토지 비용과 규제도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지상에서 가장 비용이 많이 드는 전력과 냉각비용이 우주에서는 구조적으로 낮아진다는 점이 기업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일론 머스크는 최근 공개 석상에서 “5년 안에 우주 데이터센터가 지상보다 더 저렴해질 수 있다”고 언급했다. 태양광 발전과 자연냉각 구조를 결합한 위성형 데이터센터 구상을 제시하며 연간 100GW급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위성 체계 가능성도 거론했다. 제프 베이조스 역시 블루오리진을 통해 10~20년 안에 기가와트급 우주 데이터센터를 구축하겠다는 장기 목표를 제시한 바 있다.
구글도 이 흐름에 가세했다.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는 지구 밖 데이터센터 구축이 장기적으로 일반화될 것이라고 언급하며, 2027년까지 우주에 첫 AI 데이터센터 설계를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구글은 최근 학술논문에 5년 임무 기준 TPU는 우주 방사선 환경에서도 치명적 손상 없음을 검증했다.
반면 엔비디아 젠슨 황 CEO는 보다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는 우주환경이 지상과 완전히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며 GPU와 메모리, 보드 전체를 방사선 내성(Rad-hard) 구조로 재설계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발사 비용과 유지·수리 문제, 위성 손실 위험를 감안하면 기술적 장벽이 여전히 높다는 것이다.
마이크로칩테크놀로지와 AMD
이러한 논의는 이미 특정 기업군으로 확장되고 있다. 우주 데이터센터가 현실화 될 경우 방사선 내성 연산 칩과 메모리, 전력 관리, 위성 플랫폼, 설계 소프트웨어 등 각 분야에서 수혜 기업이 등장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방사선 내성을 갖춘 연산 칩과 메모리를 제공하는 마이크로칩테크놀로지, AMD 등은 우주 데이터센터의 뇌를 담당한다.
마이크로칩테크놀로지(Microchip Technology, MCHP)는 RTG4, RT PolarFire 계열 방사선 내성 FPGA(Field Programmable Gate Array=현장에서 회로 구성을 다시 프로그래밍할 수 있는 반도체)와 SoC(System on Chip=여러 기능을 한 개 칩에 집적한 반도체)를 실제 위성 미션에 공급해 온 업체다. RTG4는 우주용 최고 등급인 QML Class V를 충족해 저궤도에서 심우주까지 적용 가능한 방사선 내성을 갖췄고, 미션 익스텐션 비히클 1·2와 CAS-500 등 위성 임무에 실제 탑재된 이력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마이크로칩테크놀로지는 우주환경의 방사선을 견딜 수 있는 연산회로를 제공하면서도 임무에 따라 재구성이 가능하고 전력 소모가 낮다는 강점을 갖고 있다. 다만 실적 개선이 뚜렷하지 않아 주가는 저평가 구간에 머물러 있다. 주가는 2년간 -24.7% 하락했지만 선행 PER은 -60%나 급락해 밸류에이션이 주가보다 훨씬 더 크게 내려간 상태이다. 지상 AI와 우주용 AI 칩을 동시에 갖춘 AMD는 490억달러 자일링스 인수 이후 우주환경에서도 견딜 수 있는 방사선 내성 FPGA(Field Programmable Gate Array=현장에서 회로 구성을 다시 프로그래밍할 수 있는 반도체)와 기존 FPGA를 한 단계 확장한 ‘적응형 연산 가속 플랫폼(ACAP) 제품군을 확보했다.
AMD 칩은 우주환경의 방사선을 견딜 수 있는 연산회로를 제공하면서도 임무에 따라 재구성이 가능하고, 우주에서 머신러닝 연산을 지원하며, 전력소모가 낮다는 강점을 갖고 있다. 실제로 AMD와 자일링스의 FPGA 칩은 화성 방사선 실험, 큐브샛(소형 위성)과 우주실험에 투입된 사례가 있어 실전 검증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주가는 구글 TPU가 부각된 이후 시장 점유율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면서 조정을 받아왔다.
L3해리스와 로켓랩
위성 전체를 설계·제작하고 우주에 띄우는 L3해리스(L3Harris Technologies, LHX)는 오래전부터 방사선 내성 마이크로프로세서·우주항공전자를 개발해 온 대표적인 우주·방산기업이다. L3해리스는 미국 ‘핵무기·방사선·극한환경전자’ 분야 최고 권위 기관 중 하나인 샌디아연구소와 방사선 내성의 CMOS(트랜지스터를 만드는 설계 방식)사업과 협업한 이력이 있다. 또한 방사선 내성 GPS·항법장비 공급 경험을 갖고 있다.
우주 데이터센터 시대가 열릴 경우 L3해리스가 부품 공급을 넘어 ‘데이터센터를 탑재한 위성·플랫폼’을 설계·제작·통합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으며, 미 우주군 NTS-3 프로그램의 주요 공급자(Prime Contractor)로 위성 본체 설계부터 시험·궤도 운용까지 맡았고 우주개발청 위성의 적외선 탑재체와 군 위성 통신·항법 사업에도 참여하고 있다.
주가상승으로 선행 주가수익비율이 22까지 올랐지만 5년 평균 18.6과 비교하면 과도한 수준은 아니라는 평가다. 여기에 중동·유럽을 중심으로 방산수요가 확대되고 실적 개선과 공급망 재편 기대가 겹치며 투자심리가 개선됐다.
로켓랩(Rocket Lab, RKLB)은 일렉트론(로켓) 발사체와 자체 위성버스인 포톤(Photon)·라이트닝(Lightning)을 함께 제작하는 드문 기업으로 단순 발사 서비스 업체가 아니라 위성 제작과 운용까지 아우르는 종합 우주기업이라는 점이 강점으로 꼽힌다.
로켓랩의 매출 구조가 로켓 발사보다 다른 사업 비중이 더 크지만 최근 제품군이 3킬로와트급 고출력 전력 시스템, 방사선 내성, 12년 이상 수명, 중형급 설계 등 우주 데이터센터에 필요한 조건을 충족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로켓랩은 일렉트론을 수십차례 상업 발사했고, 카펠라 스페이스와 미 항공우주국의 캡스톤 달 궤도 임무에 실제 투입된 이력이 있다. 최근 주가 추가상승 여지가 많다고 평가된다.
우주인프라, 양자통신 관련 기업도 수혜
그 외에도 메모리·스토리지 분야 머큐리 시스템즈(Mercury Systems, MRCY)와 마이크론(Micron Technology, MU)은 방사선 내성 메모리·스토리지 분야에서 우주 및 방산용 제품을 공급 중이다. 텍사스 인스트루먼트는 우주환경에서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담당하는 전원 관리 칩 분야의 핵심 업체로 꼽힌다. 레드와이어(Redwire, RDW)는 우주 인프라 구축과 고성능 컴퓨팅, 양자 통신을 동시에 키우는 신생 우주 인프라 기업이다. 그외 전자설계자동화(EDA) 소프트웨어 업체 시놉시스(Synopsys, SNPS)와 케이던스디자인시스템즈(Cadence, CDNS)는 방사선 내성 칩과 고신뢰 보드 설계를 가능하게 하는 EDA 소프트웨어를 제공하는 기업으로 간접적 수혜가 예상된다.
이주영 기자 123@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