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한국수출입은행│② 구멍 뚫린 내부통제
'모뉴엘 뇌물수수' 부장 2명 유죄
대출 10억원으로 자금난 겪던 직원이 여신업무 … 여신 담당 팀장·부장 함께 연루
대우조선해양을 비롯해 대출해준 기업들의 잇따른 적자로 한국수출입은행의 건전성에 적신호가 커진 가운데 수출입은행의 내부통제도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해 터진 모뉴엘 사건에서 당시 여신업무를 담당했던 간부 2명이 모뉴엘측으로부터 금품수수혐의로 기소됐고 법원이 최근 이들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6일 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모뉴엘의 대출을 담당했던 이 모 부장(당시 중소기업금융부 팀장)은 아파트 2채를 분양받으면서 8억원 넘게 대출을 받았다. 주식투자 등을 위해 2억원 상당의 단기 신용대출도 받았다. 매월 이자로만 400만원 이상을 내야 했다. 금전적으로 부담이 컸던 시기였고 금품수수 유혹에 쉽게 흔들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 부장은 모뉴엘 대표이사 박 모씨로부터 현금 1억원과 50만원짜리 기프트카드 10장을 받고 모뉴엘의 여신한도를 90억원에서 300억원으로 증액시켜준 혐의로 기소됐다. 이 부장은 박씨한테 받은 1억원을 단기신용대출금 변제 등에 사용했다. 법원은 현금 1억원을 뇌물로 인정하기에는 입증이 부족하다며 빌린 돈으로 판단해 그동안 내지 않은 이자에 대해서만 뇌물죄를 인정했다.
◆'과다 대출자 여신업무 제외' 원칙 뚫려 = 이 부장이 10억원이 넘는 대출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지만 수출입은행은 이 부장을 여신 업무 팀장으로 발령을 냈다. '고양이에 게 생선을 맡긴 꼴'이다.
이 부장은 자신의 계좌로 1억원을 송금받았고 차용증도 작성했다. 모뉴엘 대표인 박씨는 법정에서 "못받아도 어쩔 수 없지만 나중에 돌려주면 받겠다고 생각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법원은 이 부장에게 변제 의사가 있었다며 1억원을 뇌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 부장은 2년간 이자를 한 푼도 내지 않았다.
수출입은행은 과다 대출자를 여신 업무에서 제외한다는 원칙을 세워 놓고 있지만 이 부장을 제대로 가려내지 못했다. 대출 비리에는 이 부장의 상사인 서 모 부장도 연루됐다. 서 부장은 50만원 기프트카드 14장과 현금 9000만원을 수수한 혐의로 기소됐지만 법원이 금품을 전달했다는 공여자 진술의 신빙성을 문제 삼아 기프트카드에 대해서만 유죄를 인정했다.
수출입은행은 1심 판결 직후 2명을 면직했다. 이 사건은 수출입은행 직원들의 대출비리가 드러난 첫 사건이지만 여신담당 팀장과 부장이 함께 연루됨으로써 그동안 수출입은행에 대한 검사와 감독이 부실했던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모뉴엘 사태가 터지지 않고 검찰 수사가 진행되지 않았다면 대출비리가 묻혔을 가능성이 높다 수출입은행 관계자는 "영업점을 지원한 과다 대출자를 다른 부서로 발령을 낸 적도 있지만 직원의 개인정보인 대출 관계를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며 "이 부장의 주식투자도 주변 직원들이 전혀 몰랐던 사실"이라고 말했다.
◆수출입은행에 대한 외부 제재권한 없어 = 현행법에 수출입은행 검사는 기획재정부장관이나 금융위원회의 명령에 따라 금융감독원이 수행할 수 있도록 돼 있다. 하지만 수출입은행이 일반인을 상대로 여신을 취급하는 금융기관이 아니라는 이유로 금융감독원은 2~3년마다 종합검사를 하는 다른 시중은행과 달리 수출입은행에 대해서는 대략 5년에 한번씩 종합검사를 진행한다. 금감원이 이르면 이달말부터 진행할 수출입은행에 대한 종합검사도 5년만이다.
금감원이 검사를 진행하지만 다른 은행과 달리 제재권한은 금감원에 없다. 수출입은행처럼 정책금융기관인 산업은행이나 기업은행에 대해서는 제재권을 행사할 수 있지만 수출입은행은 제외돼 있다.
지난 4월 박명재 새누리당 의원은 수출입은행에 대해 기획재정부 장관이 필요한 제재를 직접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한국수출입은행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수출입은행의 임원이 경영건전성을 위한 명령을 고의로 위반하거나 건전한 경영을 크게 해치는 행위를 하는 경우에 임원의 업무집행 정지, 해임 및 경고 등의 조치를 할 수 있는 권한을 기재부 장관에게 주는 내용이다. 직원에 대해서는 은행장에게 징계를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
현재 해당 법률안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여야 의원 모두 이견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국회가 정상적으로 운영되면 법안 통과 가능성이 높다.
박명재 의원은 "모뉴엘 사건을 비롯해 최근의 대우조선해양 문제 등을 볼 때 수출입은행은 완전 모럴해저드에 빠져 있다"며 "법개정을 통해 제재권한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신심사 강화, 원스트라이크 아웃제 실시 = 수출입은행은 모뉴엘 사건 이후 내부규정을 바꿨다. 그동안 직무와 관련해 500만원 이상을 받으면 면직이고 100만원 이상 500만원 미만은 정직, 100만원 이하는 감봉을 받게 돼 있었다. 뇌물죄 처벌이 강화된 상황에서 공무원 의제를 받는 수출입은행 직원에 대한 징계로는 관대한 규정이다. 결국 모뉴엘 사건으로 올해 4월 이후 금품을 수수하면 액수와 상관없이 면직하는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실시하고 있다. 직무와 관련이 없더라도 50만원 이상을 받으면 면직 대상이 된다.
수출입은행은 여신심사 업무도 강화했다. 지난 1일 기존의 리스크관리단을 리스크관리본부로 격상하고 조직을 확대했다. 리스크관리단의 단장이 영업부서의 장보다 직급이 낮아 제대로 된 견제가 안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동안 여신부서에서 승인하면 대출이 나갔지만 앞으로는 리스크관리본부에서 별도의 심의를 거치게 된다. 리스크관리본부에 신설된 심사평가부가 업무를 담당한다. 수출입은행 관계자는 "리스크관리본부와 영업 부서간의 갈등이 벌어지겠지만 부서간 견제를 통해 부실 대출과 비리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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