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한국수출입은행│④ 제도적 대안은

정책금융에 일관성 있는 정책 없어

2015-08-18 10:55:09 게재

자금공급량 급속히 확대, 부실 증가 … '사회적 역할' 재논의해야

한국수출입은행이 지난 76년 설립되고 그해 시장에 공급한 자금액은 500억원이다. 이후 20년이 지난 97년 공급규모가 10조원으로 늘었다. 불과 6년만인 2003년에는 그 두배인 20조원이 됐다. 2007년 공급액이 40조원까지 증가하더니 이명박 정부 들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고 수출입은행은 올해 81조2500억원을 지원하겠다고 지난 13일 밝혔다.

전문가들은 수출입은행의 부실 대출 이면에는 무분별한 자금공급 확대의 영향이 크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규모가 커지면서 정책금융기관간 중복 지원 문제가 발생하고 시중은행들과의 마찰도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특히 제대로 된 여신심사 능력을 갖추지 못한 채 규모만 커지다보니 덩치는 커졌지만 체력은 급격히 약화된 모습이다.


엇갈리는 정부 정책 = 정부는 2000년대 중반부터 수출입은행의 중소중견기업 지원 확대를 주문했고 자금공급액이 대폭 확대되는 계기가 됐다. 수출입은행의 핵심업무가 고위험 중장기사업지원인데 역량이 분산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면서 시중은행들과 마찰도 일기 시작했다. 정책금융기관들이 민간부문과 경쟁하고 있다는 비판이 커진 것이다. 그러자 정부는 금융위원회 주도로 2013년 정책금융기관 역할재정립 방안을 마련했고 수출입은행의 시장마찰을 최소화하면서 해외 고위험 중장기사업 여신정책에 집중할 것을 주문했다.

하지만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수출 확대를 위한 금융지원을 더 늘려야 한다는 정부 정책에 따라 올해 당초 예정 공급액이었던 80조원에서 81조2500억원으로 규모가 또 늘어났다. 2007년 40조원의 자금공급액이 2008년 외환위기 이후인 2009년 56조원으로 크게 증가한 것도 이 때문이다. 국회에서는 매년 국정감사에서 수출입은행의 중소기업 지원 확대를 주문했다.

금융권의 한 인사는 "위기 상황에서 시중은행들이 자금공급을 줄이는데 정책금융기관들은 정부 정책과 맞물려 공급액을 늘려야 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환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수출입은행이 조선 해운 건설 등을 전략산업으로 지정해 집중적으로 지원을 했는데 신용공여를 특정 분야에 집중한 것이 문제"라며 "포트폴리오를 분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자금공급량이 확대되고 중소중견기업에 대한 여신이 증가하면 정책금융기관들이 결국 시중은행들과 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다.

감사원이 올해 발표한 금융공공기관 경영실태 감사에서 시중은행들과의 경쟁을 지적하면서 수출입은행의 단기여신 축소 필요성을 지적한 것도 이 때문이다.

수출입은행의 자금공급이 계속 증가하는 것은 관행화된 업무추진도 한몫을 하고 있다. 수출입은행은 매년 자금공급액 목표를 정해 기획재정부 장관의 승인을 받고 있다. 수출입은행이 설립된 이래로 자금공급액 목표를 줄여서 승인을 받은 적이 거의 없다.

자금공급액을 줄이면 업무를 줄이는 것처럼 비춰지기 때문에 항상 목표액을 높이는 게 관행화된 것이다.


'리스크 관리' 현저히 저하 = 하지만 자금공급이 급격히 확대되면서 여신심사시스템 부실이 당장 문제가 됐다. 대표적인 사건이 '모뉴엘 대출'이다. 수출입은행 직원은 무기계약직을 포함해 올해 1분기 현재 881명이다. 2007년 687명과 비교하면 28.2% 증가했다. 2007년 자금공급액이 40조원에서 올해 두배 넘게 증가했지만 인력 사정상 제대로 리스크 관리를 하기 어려운 구조다. 공공기관의 성격상 인원을 더 늘리기도 어렵다.

하지만 공급할 자금 목표액을 정해놓았기 때문에 실적 달성을 위해 조건이 맞는 회사에 대규모 대출이 이뤄지는 일이 벌어졌다. 실무를 담당하는 직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사업장 방문이나 건전성 점검 등을 기대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모뉴엘 사건에 대해 수출입은행 전체의 모습이 그대로 반영된 축소판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달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2014년 회계연도 결산 예비심사보고서에서 "짧은 시간 내에 여신규모의 양적 확대에 치중하는 과정에서 리스크관리 및 기업심사 역량 제고가 수반되지 못했다"며 "고정이하여신비율이 급증하는 등 전반적인 재무구조가 악화됐다"고 지적했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모뉴엘 사건만 놓고 봐도 돈이 남아서 어쩔 줄을 몰랐던 것이다. 무조건 자금을 지원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며 "자금이 부족한 과거에는 어떻게든 돈을 지원하는 게 정책금융기관의 역할이었다면 이제는 일을 추진하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수출입은행이 지난 87년부터 해오고 있는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수탁사업도 현실적으로 큰 업무부담이 되고 있다. 니카라과 도시의 상수도 확충사업 등 개발도상국을 지원하는 경제협력기금 업무도 크게 증가했다. 2007년 신규사업이 19건에 금액이 5억달러 정도 투입됐다면 지난해에는 28건에 12억달러의 지원이 이뤄졌다. 현재 해당 업무에 수출입은행 직원 110명이 일하고 있다.

'통폐합' 금융지주 논의 수면위로 =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지금 시점에서 정말 정책금융기관들의 역할에 대해 사회적으로 진지하게 고민해봐야한다"며 "조선업의 경우 경기 사이클이 장기적으로는 20년까지 간다고 했을 때 회사들이 살아남기 어려운 구조여서 법정관리 문제에 대해서도 논의를 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 선임위원은 "자금공급액을 계속 늘리면 현재 수출입은행 인력으로는 리스크관리가 전혀 안된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이 문제를 어떤 형태로든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조직을 확대하는 것은 안되고 정책금융기관의 효율적 운영을 위해 장기적으로 정책금융지주회사를 만들어야 한다"며 "단기적으로는 정책금융기관 간에 역할을 조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석헌 숭실대 교수도 "정책금융기관에도 금융지주회사법에 준하는 지배구조 개선이 중요하다"며 "업무 투명성을 높이면서 앞으로 기업 구조조정 문제가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될 것인데 언제까지 정책금융기관이 버팀목 역할을 할 것인지에 대해 심각하게 논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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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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