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여중생 '행복열차' 여행 │덕유산 꽃향기에 취하다
"쌤~! 우리 이야기 다 들어주셔서 진짜 고마워요"
괜찮아 우리! '우리들의 토크 콘서트' … "나를 인정받은 힐링의 시간 보내"
"어차피 할 건데 우리 하고 싶은 대로 그냥 두면 안될까요?" "그래도 우린 중학생이니깐 아이라인과 틴틴(강시처럼 입술 가운데만 빨갛게 바르는 화장법)까지가 적당할 것 같아요"
"학교 밖에서는 풀 메이크업도 상관없다고 생각해요. 학생도 화장할 자유가 있잖아요"
이에 맞선 교사들이 "학생은 학생답게 최소한 화장만 하는 게 좋다"고 맞섰다.
토크콘서트 사회자는 "그건 화장을 거의 다 하겠다는 거네? 욕심이 과하시네…"
3일 대구지역 21개 학교(학교부적응) 여중생 39명이 덕유산국립자연휴양림으로 이른 가을여행을 떠났다. '숲으로 가는 행복열차'에 몸을 실은 아이들 표정이 사뭇 진지했다.
이날 덕유산 국립자연휴양림 강당에서 진행한 '우리들의 토크콘서트' 주제는 '괜찮아. 우리!'
1부는 '화장 어떻게 할까(다른 얼굴 같은 얼굴)', 2부 '학교가기 싫을 때'. 3부 '친구가 밉상일 때'로 구성했다. 토크쇼 주제가 화장이라는 사회자 말에 아이들은 의자를 당겨 앉았다. 여기저기서 마이크를 달라며 손을 들고 소리를 질러댔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화장에 대한 규제가 심하다"며 불만을 표출했다. "하고 싶은 대로 화장을 하면 학교생활이 즐겁고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은근슬쩍 교사들 간을 보기도 했다.
이헌우 대구서부교육청 장학사는 "사람들이 10대들 화장을 예쁘게 안 봐준다. 결국 자기만족이고 또래끼리 과시나 지나친 보여주기 표현"이라며 "익기 전 시고 떫은데 이는 자기보호다. 외부로부터 자기를 보호하고 내적인 아름다움과 향기를 간직했으면 좋겠다"며 의견을 제시했다.
아이들은 "됐다. 우리는 예뻐지는 것에 관심이 많다. 화장하는 것 보다 재미있고 관심이 큰 것은 없다"며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토론 분위기는 목소리 크고 수가 많은 학생들에게 넘어가는 듯했다.
하지만 잠시 후 반전이 벌어졌다. "저는 아직 화장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중2학년이 짙은 화장을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요"라며 '화장 불필요론'을 제기했다. 이지민(대서중 2)양은 "저는 아무리 봐도 샤워 후 제 모습이 가장 아름답고 예쁜 것 같아요" "그래서 아직까지는 화장할 생각이 없어요. 엄마가 그러시는데 싸구려 화장품 마구 처바르면 얼굴이 썩는다고 했어요" 이어 "화장법도 잘 모르고…그래서 아무것도 안발라요. 더 크면 엄마랑 화장품 사러 갈래요" 토크콘서트 장은 웃음바다가 됐다. 카랑카랑한 대구 사투리로 말하는 지민양의 주장에 어른들과 학생들은 박수를 보냈다.
지민 양은 시키지도 않았는데 '내친김에 시낭송을 하겠다'며 목청을 가다듬었다.
'제목 풀꽃, 나 태 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너도 그렇다
이름을 알고 나면 이웃이 되고/색깔을 알고 나면 친구가 되고/
모양까지 알고 나면 연인이 된다/ 아, 이것은 비밀. 기죽지 말고 살아봐/꽃 피워 봐/참 좋아"
'풀꽃'은 나태주 시인이 초등학교 교장으로 근무할 때 아이들에게 한 말을 옮겨 쓴 시다.
지민 양은 "이 시를 읽으면 마음이 편해지고 위로를 받는다"며 환하게 웃었다.
◆화장품 종류는 꿰면서 화장법은 잘 몰라= 대부분 아이들은 화장품 종류에 대해서는 줄줄 꿰고 있었다. 하지만 화장법에 대해서는 어깨 넘어 배운 얼치기 솜씨에 불과했다. 아이들은 "인터넷을 통해 배우거나, TV에 나온 '연예인처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연예인 흉내 내기' 화장은 '다른 얼굴, 같은 얼굴'이 되어가는 청소년들의 현 주소를 잘 나타냈다. 나만의 개성을 찾는 화장법과 청소년시기에 알맞은 화장법 등은 교사와 아이들 모두의 숙제로 남았다.
토크콘서트 패널(panel)로 나선 대전시교육청 김승태 장학사는 "행복은 마음에서 시작합니다. 얼굴에 덕지덕지 많이 바른다고 예뻐지는 것은 아니잖아요. 내가 가장 예쁠 때가 언제인지 찾아보세요".라며 학생들 주장에 답했다. 이어 "성장기 청소년 피부에 잘 맞는 화장품을 잘 고르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2부 주제 '학교가기 싫을 때'는 잠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혔다. 아침잠이 부족하다는 아이들은 밤늦게까지 인터넷이나 게임 등 SNS에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생들은 '부족한 잠은 학교에서 해결한다'고 답했다.
토크콘서트 사회는 대전 MBC에서 맹활약 중인 김주홍(49)씨가 맡아 진행했다. 김씨는 올해 한국방송대상 라디오부문 작품상을 수상했다. 음악은 '어머밴드(어쿠스틱 머신 밴드)' 박용권 정효진 부부가 교육기부로 참여해 흥을 돋궜다.
앞서 아이들은 마음열기 미술치유프로그램에서 마음 문을 열었다. 21개 학교에서 온 아이들은 서로 잘 모르는 상황. 게임을 통해 친밀감과 협동심을 키우고 두 시간 동안 조별로 미술치유 프로그램에 푹 빠져들었다. 조별 대화와 토론에서 자신의 꿈을 이야기 하고 친구 꿈을 격려했다.
아이들은 형형색색의 한지를 찢고 구겨 공중에 날렸다. 이어 하트모양의 투명 리본 끈으로 엮어 마음주머니를 만들었고, 찢어서 공중에 날린 색 한지를 채웠다. 그 안에 꿈을 적은 색종이를 넣어 '마음보물 주머니'를 완성했다.
신기영 미술치유 강사는 "색 한지가 찢어지는 소리는 엄마 뱃속에서 들었던 고향의 소리로, 마음이 차분해지고 편안한 상태로 이완시켜 준다"며 "꿈을 적어 보물주머니에 넣는 과정은 존중과 배려, 자존감을 높여주는 중요한 체험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음날 아이들은 1614미터 덕유산 향적봉 정상에 올랐다. 4시간 등산코스를 단 10분 만에 해결했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는 코스임에도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이른바 저질체력 문제. 전날 밤 자정 12시가 넘도록 방 불을 끄지 못했던 아이들은 아침 프로그램에 지각했다. 한 두 조는 아침 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 짐을 꾸렸다. 그 와중에도 몇몇 아이들은 교사들의 만류에도 짙은 화장과 짧은 반바지 차림으로 산행 길에 올랐다.
케이블카가 있는 설천봉에서 정상인 향적봉까지는 채 700미터가 안 되는 거리임에도 힘들어 했다. 향적봉에서 '인증 샷'을 찍고 난 후 가을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핀 중봉 대피소에서 간식과 담소를 즐겼다. 친한 사이로 보였는지 등산객들이 '어느 학교 수학여행이냐'고 묻기도 했다. 아이들은 중봉으로 가는 길에 주목과 야생화를 향해 휴대폰 카메라를 들이댔다.
◆등산에서 저질체력 유감없이 드러내= 하지만 야생화 이름을 아는 학생은 없었다. 바위틈에 핀 등대시호, 붉은 동자꽃, 분홍색 산오이풀꽃, 바디나물 꽃, 투구꽃 등을 만지거나 킁킁대며 향기를 맡았다.
향적봉에서 중봉까지는 채 20분도 되지 않는 거리다. 아이들의 숨소리는 거칠어졌고, 난간을 붙잡거나 주저앉아 연신 침을 뱉었다. 몇 몇 아이들은 도저히 걸을 수 없다며 인솔교사와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경사진 대피소 계단을 오르던 아이들은 숨이 차서 캑캑거렸고 눈물 콧물까지 흘렸다. 전날 수면부족과 평소 학교체육활동 부실이 원인으로 나타났다. 이름표를 가린 한 학생은 "솔직히 체력에 자신이 없어요. 계단을 오르면서 폐가 찢어지는 것 같아 담배를 끊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라며 "그래도 여기 와서 인정받았다는 생각을 하니 기분이 상쾌하네요"라고 말했다.
부실한 학교체육의 문제점이 제기됐다. 한 교사는 "학교에서 달리기가 사라진지 오래됐다. 사고를 핑계로 없애버린 것이다. 사고 나면 교장 징계하는데 누가 체육활동을 강화하려고 하겠느냐"며 교육정책을 비판했다. 그럼에도 등산 효과는 톡톡히 나타났다. 하산길에 아이들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야~! 짱이라고 우기는 가시나 정상까지 올라왔나~! 못 왔다고? 일진이라면서 일진이 아닌갑네~" "별 것도 아닌 게 큰소리만 친거네~"
이헌우 장학사는 "21개 학교 아이들이 모여서 화합이 될 수 있을지 내심 걱정했다. 그런데 행복열차 프로그램을 지켜보며 기우라고 생각했다. 짧은 등산이지만 강한 인내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낀 시간이었다"며 "프로그램을 지켜보면서 성취감과 스스로 생각하는 힘이 커졌고, 자존감 향상 등 변화되는 모습에 가슴이 뭉클해졌다"고 평가했다.
이어 "콘서트는 학교와 아이들 생각을 공유하고 소통하도록 잘 꾸민 프로그램"이라며 "평소 고민이나 하고 싶은 말을 아낌없이 쏟아낸 시간으로 아이들 속이 후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학교부적응 아이들 문제를 학교와 교육당국의 책임으로만 돌리는 사회 분위기도 개선해야 한다는 게 교사와 강사들의 평가다.
한 교사는 "학교에 장례식장만 들어오면 다 온다는 말도 있다. 학생과 관련된 온갖 것을 학교가 다 떠맡아 운영해야 하는 지금의 상황이 안타깝다"며 "부적응학생 대부분은 가정불화 등 가정에서 문제를 안고 출발하기 때문에 가정과 사회의 역할이 중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늦은 점심을 먹은 아이들이 대구로 돌아가는 차에 몸을 실었다. 아이들은 이 헌우 장학사 휴대폰에 "생각했던 것보다 진짜 재미있었어요. 나를 인정받은 힐링의 시간이었어요. 우리 이야기 다 들어준 멘토 쌤 정말 고맙고 감사해요"라며 문자를 남겼다.
■숲으로가는 행복열차 = 교육부 산림청 코레일이 업무협약을 맺고 추진하는 학교부적응학생을 위한 프로그램이다.
제 6회 행복열차에는 대구지역 21개 여중생 39명이 참여했다.
토그콘서트 진행을 맡은 김 주홍씨는 97년부터 방송진행과 연출, 기획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상을 휩쓸었다. 연극 칠수와 만수, 블루사이공 등을 무대에 올렸다.
'어머밴드'는 거리 카페 지하철 학교 등에서 젊은 청소년들과 연주하는 음악단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