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서귀중앙여중 '숲으로 가는 행복열차'
"알면 사랑한다는 말, 가슴에 품고 제주로 돌아갑니다"
'아픈 친구마음 헤아리기' 배우는 소중한 시간
"같은 학년이고 서로 잘 아는 관계라 쉽게 '티피텐트(Teepee-tent)'를 완성할 줄 알았는데 생각대로 쉽지가 않네요." "조원들이랑 설계도를 그릴 때만 해도 파르테논신전 같은 멋진 티피를 세울 줄 알았거든요."
'숲으로 가는 행복열차' 프로그램에 참여한 김아현(제주서귀중앙여중 3학년)양이 소감을 말했다.
지난 9일 제주서귀중앙여중 학생들이 2박3일 일정으로 육지 여행에 나섰다. "뉴스에서만 보던 기차(KTX)와 비행기를 타게 됐다"며 신기한 듯 열차를 만지거나 감탄사를 토해냈다. 기차 안에서는 창밖으로 스치는 풍경을 휴대폰 카메라에 담아보려 애를 썼지만 기차 속도가 빨라 놓쳤다. 학교에서 '또래상담' 활동을 하는 아이들이어서 그런지 자신감이 넘쳤다.
◆같은 조 아이들과 의견모아 인디언텐트 완성 = 티피(Teepee)짓기에 앞서 충남서천 희리산자연휴양림 강당에 모여 인디언텐트, 몽골텐트 등 유목민과 극지방 사람들의 주거형태에 대해 강의를 들었다.
이어 조별로 의견을 모아 설계도를 완성했다. 오전 9시. 휴양림 밖으로 나온 아이들은 재료를 챙긴 후 설계도에 맞춰 기둥을 세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생각대로 쉽게 완성하지 못했다. 기둥을 어디에 세워야 할지 몰라 여기저기에 '세웠다 부셨다'를 반복했다.
의견을 좁히지 못한 몇몇 아이들은 짜증을 내며 돗자리를 깔고 바닥에 누워 낮잠을 청했다.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마음은 더욱 급해졌다. 점심 식사는 조별로 수제비를 만들어 각자 지은 티피 안에서 먹기로 했던 것.
"개인 개인은 다 똑똑한 친구들인데 왜 의견충돌이 심하지?" 오주연 학생이 원인 분석에 들어가더니 이윽고 조정에 나섰다.
마음속에 담아둔 집짓기에 자신의 뜻이 관철되지 않자 시큰둥해진 것이다. "우리 조는 다들 너무 똑똑해서 집을 세우지 못한 것입니다."
"각자 생각을 절반씩만 양보하면 집을 지을 수 있을 것"이라며 조정에 들어갔다.
수제비 반죽할 친구부터 기둥세우기 담당, 천으로 지붕과 벽을 덮는 친구 등 의견을 수렴해 역할을 맡았다. 잠시 후, 집은 순식간에 모양새를 갖추었다. 흥이 난 학생들은 '내친김에 해먹도 만들자며 제안했고, 조원 모두가 동의했다. 집을 세우는 동안 식사 당번은 수제비를 반죽하고 육수에 넣을 야채를 손질했다.
늦은 점심이지만 조원들이 만족한 식사를 마쳤다.
조원 11명 모두 티피안에 들어가더니 발표자를 뽑고 집 소개 내용을 놓고 토론했다.
주연 양은 "의견 좁히는 거요? 조금씩 양보하는 게 최고죠!" "양보하는 것만이 서로 마음 다치지 않고 완성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우리조가 만든 딥시우스(티피 이름)는 방이 두 개에다 별장(숲에서 온 그대), 아주 튼튼한 해먹까지 있는 멋진 작품입니다." "집 천정과 벽은 조원 수대로 11가지 색깔 천으로 꾸몄고요, 다양성과 개성, 높은 활용도가 자랑거리입니다"
조별 발표를 맡은 장은빈(3학년) 양은 고객만족도 1위의 집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2학년들은 "우리가 지은 집은 아늑하고 편안하다. 지붕은 칡넝쿨로 엮어 태풍에 대비했고 햇볕이 잘 드는 서남향 집으로 효용가치가 높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1학년들은 선배들처럼 능숙하게 발표를 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잠시 후 한 친구가 나서더니 조원 이름을 한 명 한 명 전부 부르며 각자 무슨 역할을 했는지 소개했다. 박수가 터졌다. 2학년과 3학년 선배들은 "쟤들 대단하다. 8개 초등학교에서 모였는데 벌써 이름을 다 외우고 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평가와 시상에 나선 김경환 교감은 1학년 조는 '자연과 친해 상'을, 2학년은 '계획대로 잘했어 상'을 3학년에게는 '기능이 짱! 상'과 상품을 수여했다. 김 교감은 "학교에서는 한 줄로 세우는 1등 2등 3등 수직적으로 주는 상과는 차원이 다르다"며 "서로 인정하고 자존감을 높여주는 수평적 상을 주는 행복열차 프로그램을 보고 많은 것들을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생태원서 인간과 자연 조화 배워= 마지막 날 국립생태원으로 간 아이들은 생태원 규모와 시설에 놀라는 눈치다. 생태원 해설사들이 마중을 나왔고 생태원 에코리움 구석구석을 안내하며 설명했다.
백미는 개미박사 최재천 원장의 특강. 최 원장은 '알면 사랑한다'는 주제로 제주 여중생들의 혼을 사로잡았다. "집안에 도둑이 들었는데 아들이 모아둔 세뱃돈 20여만원을 거실에 확 뿌려놓고 갔다. 이곳저곳 다 뒤졌는데 가져갈 게 없으니 화가 단단히 난 모양이다. 경찰이 왔고 도둑을 잡겠다고 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잡지 않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경찰에 잡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얼마나 형편이 급했으면 좀도둑이 됐겠나 싶었다. 도둑의 이야기 들어주다 보면 친구가 될 것이고 술 한잔하고 어깨동무하다보면 주머니 털어 보태줄 수밖에 없을 것 아닌가"라며 환하게 웃었다. 순간 최 원장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이들 시선이 모아졌다. '얼음땡' 된 아이들은 신선한 충격에 빠진 듯 했다.
점심은 생태원 레스토랑에서 자유식사를 했다. 조별이나 학년별로 삼삼오오 모여 원하는 메뉴를 주문했다. 공동으로 시킨 어묵과 떡볶이는 인기메뉴. 닭다리와 돈까스 등 고기류를 주문한 아이들은 고기를 잘라 친구 접시에 담아주기도 했다.
김아현(3학년)양은 "학교에서 어려운 친구를 도와주고 중재하는 '또래상담' 역할을 했다. 그런데 닫힌 친구 마음을 열기에는 부족했다는 것을 이번 여행을 통해 깨닫게 됐다"며 "'알면 사랑한다'는 말이 가슴속 깊게 박힌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학교에 돌아가면 또래상담자 역할을 다시 짚어보고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노력 하겠다"고 말했다.
◆또래상담사 운영, 아이들 스스로 마음 털어 놓게 해 = 제주서귀중앙여중은 2013년부터 또래상담사 제도를 만들어 운영중이다. 교사보다 친구가 더 가깝다고 판단, 또래에게 마음을 털어놓거나 갈등이 생기면 아이들 스스로 해결하도록 한 것이다.
학생회 임원과 또래상담사 활동을 하는 한 학생은 "학생자치법정은 애들한테 완전 외톨이가 됐습니다. 실수하거나 잘못을 저지르면 학생 판검사 변호사가 나서 시시비비를 가리고 형을 선고합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따뜻한 인간미도 없고 각박한 세상의 법칙을 학교 안까지 끌어왔다는 생각이 듭니다"면서 이어 "어떤 이유로든 상처받은 친구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게 훨씬 좋지 않을까요?"
학생회활동과 또래상담 활동에 변화를 선포했다.
김아현 양은 "선생님한테 말 못할 고민을 친구한테는 털어놓을 수 있잖아요. 학교에 '신고함' 있긴 하지만 누가 그곳에 사연을 적은 메모를 넣겠어요"라며 "학교에 돌아가면 학생회 임원들과 토론해서 '고민상담신청함'을 만들고 학생회에서 관리하는 방안을 검토해 시행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제주도에도 국립생태원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교사와 학생들 질문에 최 원장은 "그렇지 않아도 지난주에 원희룡 도지사와 국립생태원 제주분원을 만드는 방안을 검토했다"고 말하자 박수로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