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 든 아이들의 언어는 시가 되었다"
교육부 '숲으로 가는 행복열차' 성과 보고회 … 분노조절, 자존감 회복에 효과 커
"절대 질문을 하지 않는다는 게 우리학교 학생들의 '원칙(?)'입니다. 그런데 이 녀석들이 행복열차 3일 동안 질문을 퍼 부었습니다. 20분 수업도 힘들어 했는데, 3시간 집중하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숲에서 2박3일만에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성과보고회에 참석한 원종혁 충북증평공고 교사 말이다.
2일 교육부와 서울특별시교육청은 '2015년 숲으로 가는 행복열차' 성과보고회를 열었다. 한 해 동안 행사에 참여했던 교육청 관계자와 인솔교사, 산림청, 멘토, 국립생태원, 국립휴양림관리소, 울고 웃었던 학생 등 90여명이 함께했다.
기적은 성과보고회에서 또 한 번 일어났다.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정윤이가 장학금을 받았다. 몇몇아이들은 덕유산 정상에서 걷는 게 힘들다며 운영진에게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운영진은 산 정상에서 아이들이 뱉어내는 짧은 언어는 가슴앓이를 하는 상처의 다른 표현이고 세상을 향한 반항일거라 생각했다.
정윤이는 "미혼모지만 씩씩하고 당당하게 살아가겠다"고 말했다. 반 친구들은 "몰랐다. 힘내라. 돌잔치 함께 하자"며 정윤이를 안아줬다. 소원대로 대학 간호학과에 합격했다는 말도 전했다. 이날 아이들에게 전달한 장학금은 행복열차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강사와 스텝, 장학사, 교육청 간부, 교장선생님이 받았던 강사료에 정성을 더한 돈이다. 김진구 대전 동아마이스터고 교사는 "행복열차 열차특강 강사료를 모두 장학금으로 기부하게 돼 기쁘다"며 웃었다.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많은 교사들이 "이렇게 잘 뛰어놀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데 '학교 부적응'으로 분류되었다는 게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정시영 교육부 학교생활문화과장은 "학생들 스스로 타인의 소중함을 깨닫고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체험교육 기회를 제공하고 학부모와 학생이 함께 하는 치유 프로그램도 활성화 시켜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행복열차', 길 잃은 학생에게 희망의 나침판이 되다 = '행복열차'는 전국 17개 시도교육청 소속 학교폭력 가·피해자와 학업중단 위기에 처한 학생들을 태우고 전국 주요 휴양림으로 떠났다. 기차여행이라는 낭만과 숲속 생물의 삶을 통해 몸과 마음을 치유했다. '숲으로 가는 행복열차'는 교육부와 산림청 코레일이 융합한 정부부처 합작품이다.
2015년에는 서울교육청이 맡아 주최하며 현장을 지휘했다. 국립생태원과 업무협약을 맺고 체험형 생태 환경교육을 했다. 박백범 서울시교육청 부교육감은 겨울비가 내리는 휴양림 처마 밑에서 아이들이 먹을 삼겹살 50인분을 구우면서 눈물을 흘렸다(숯 연기 때문에). 아이들은 숲에서 공존과 배려를 배우고 체험했다. 진행자들은 아이들을 독촉하지 않고 기다려줬다. 멘토는 형과 누나 언니 부모 역할을 톡톡히 했다. 분노가 폭발한 아이들이 뱉은 심한 욕설과 주먹다짐도 조용히 다 받아냈다. 이런 아이들을 껴안고 함께 눈물을 흘리며 웃고 웃었다.
아이들은 운영진과 멘토를 믿고 따랐다. 태어나 처음 내손으로 밥도 해보고 화장실 청소도 했다. 용기를 내서 밤길 산행도 마다하지 않았다.
별을 보며 우주를 여행했고, 자신의 꿈을 하늘에 수놓았다. 잠시나마 학교폭력 가피해 공포에서 벗어났다. 게임 유혹도 떨쳤고, 말문을 닫았던 아이들은 마음 문을 열고 친구들과 소통했다. 비슷한 또래 아이들은 서로 손을 잡아줬다. 또래가 물을 엎지르자 분노조절 장애가 심한 아이는 "괜찮아 닦으면 돼"라며 웃었다. 그렇게 행복열차는 아이들에게 긍정적 변화의 밑거름을 뿌렸다.
행복열차는 기존 청소년 프로그램과는 다르게 1박2일 또는 2박3일 동안 학생들이 주체가 돼서 판단하고 결정한다. 선생님 역할은 뒤에서 지켜보는 정도에 그쳤고, 학생들을 훈육의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 아이들 스스로 바로 설 수 있도록. 그렇게 위기학생에게 희망의 나침판이 되었다. 2015년 행복열차는 위기학생에 대해 편견을 버리고 새로운 정책대안이 필요하다는 것을 제시했다.
2015년 행사를 주최한 이상래 서울교육청 학교생활교육과 장학관은 "행복열차는 포기하려는 학생들이 마음 문을 열고 더 단단해지는 시간이 됐다"며 "사랑과 관심이라는 처방만 있으면 마음의 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알면 사랑한다'는 말을 가슴에 품다 = #지난해 12월 16일 마지막 '숲으로 가는 행복열차'가 서울지역 19개 중학교 24명을 태우고 무주 덕유산국립자연휴양림으로 달렸다. 영하 15도 추위와 무릎까지 빠지는 폭설도 아이들에게 장애물이 되지 못했다. 아이들은 욕 대신 '태어나 처음'을 자주 입에 올리며 감탄사를 쏟아냈다. 말문을 닫았던 아이들이 "쌤~ 나무는 왜 겨울에도 안 얼어 죽어요" "산 속 짐승들은 뭘 먹고 살아요?" 라며 질문을 쏟아낸다. 김미선 숲 해설가는 숲에는 많은 동식물이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지혜롭게 살아간다고 설명했다. 사람 사는 세상에 공존과 배려가 왜 필요한지도 덧붙였다.
#"아! 스케치북을 가지고 올 걸 그랬어요. 아쉽지만 저 노을은 제 가슴속에 담아 갈래요" 충남 서천 희리산 정상에서 노을을 바라보던 아이들이 연신 감탄사를 쏟아냈다. 멘토로 참여한 김주아(배재대학교 심리철학 상담학과 4년)씨는 "냄비를 두드리는 모습을 보고 가슴속에 맺힌 게 많이 있겠구나 생각했다"며 "실컷 두드린 후 울면서 '엄마 미안해'라고 말하는 민주(가명)를 꼭 안아 주었다"고 말했다.
#기연이가 에코가방을 만들면서 가방에 큰 글씨로 심한 욕설을 썼다. 큰 나무 아래에는 검은색 물감으로 작은 사람을 그렸다. 자신을 표현했다고 말했다. 신기영 강사가 "힘들고 답답한 일이 많았지?"라며 "솔직하게 표현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잠시 후 기연이는 노란색 물감으로 욕설을 조금씩 지워나갔다. 아이들 입에서는 욕 대신 향기로운 단어가 쏟아졌다. 기연이가 에코가방에 '하나가 아니라 둘이 있으면 외로움이 1000분의 1로 줄어든다'고 썼다. 신 강사 눈에 눈물이 맺혔다.
#“알면 사랑한다는 말, 가슴에 품고 제주로 돌아갑니다”
지난해 9월15일 제주서귀중앙여중 학생들이 충남 서천 희리산국립자연휴양림으로 육지여행에 나섰다.
3일 동안 숲에서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터득했다. 제주로 돌아간 아이들은 어렵고 힘들어하는 친구들 손을 잡아줬다. 선생님보다 앞서 또래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힘을 보태 도와줬다.
#종윤(중2 가명)이가 호두를 까서 강사 손등에 정성을 다해 문질렀다.“쌤, 손이 거칠어요. 호두 기름이 피부에 좋아요”라며 씩 웃었다.인솔교사로 참여한 정효선(서울 강동 위센터) 상담사는 “학교에서는 종일 말이 없는 아이”라며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니 마음 문이 서서히 열린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종훈(가명)이는 웃음을 잃은 아이였는데, 정말 많이 웃고 질문도 많이 하네요”라며 흐뭇해했다.
교육부는 행복열차 프로그램이 위기학생의 분노조절, 자존감 회복 등에 효과가 큰 것으로 분석했다. 이에 따라 가정과 학교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학생들이 위기를 극복하고 치유 받을 수 있도록 계속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성과보고회에 참석한 이영 교육부 차관은 "이 프로그램의 진정한 주인공은 참가했던 학생"이라며 "학생들이 꿈을 키우고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우리나라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삶에 대한 만족도는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이라는 사실을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학생들이 안전한 공간에서 행복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지원 하겠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 행사로 학교는 비공개, 이름은 가명으로 처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