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에 짓밟힌 민생│① 밀려난 사회적 약자 예산
최씨 예산 늘리며 예술인 생계지원 삭감
내년에도 3560억원 반영 … 저소득·장애인 예산은 줄여
2014년 9월 정부가 새해 예산안을 내놓자 문화시민단체들은 '예술인 긴급복지 지원' 예산을 늘려달라고 요구했다.
시나리오 작가인 최고은씨가 생활고로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예술인복지법 제정과 함께 2013년부터 시행된 이 사업은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인 '예술인 창작안전망 구축' 사업 중 하나였다. 예술인들의 삶이 워낙 어렵다보니 예산이 상반기에 동이 나는 등 수요가 많았고, 문화예술계가 증액을 요청하고 나섰다.
하지만 정부의 생각은 달랐다. 당시 문화체육관광부의 설명은 '수혜자의 기여 없이 일방적으로 지급되는 긴급복지지원금은 특혜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는 것이었다. 2014년 118억2000만원이 편성됐던 예술인 긴급복지 지원금은 2015년에는 예술인 창작준비금 지원금으로 이름이 바뀌며 되레 8억2000만원이 깎인 110억원만 반영됐다.
◆깐깐한 정부, 최씨에게만 선심 = 정부가 모든 예산사업에 대해 이처럼 엄격하고 깐깐하게 심의했던 것은 아니다.
더불어민주당 김병욱 의원에 따르면 문화창조융합벨트 구축사업은 실적도 뚜렷하지 않은데 2014년 71억6100만원이었던 예산이 2015년 119억1000만원으로 늘었다. 올해는 897억6500만원으로 급증했다. 2019년까지 잡혀 있는 예산 총액은 7176억원에 달한다.
문화창조융합벨트 사업은 최순실씨 사무실에서 입수한 '문화융성' 관련 문건에 포함돼 최씨가 예산편성에 개입해 사적인 이득을 취하려 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는 사업들 중 하나다.
정부는 생계난을 겪는 예술인들에게 300만원을 지급하는 것도 '특혜' 일 수 있다고 아까워하면서도 최씨의 조카인 장시호씨가 사무총장으로 있는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는 설립한지 1년여밖에 안됐는데도 7억1700만원의 나랏돈을 지원하기도 했다.
한정된 정부 재원을 어느 한쪽에 몰아주면 다른 한쪽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최씨를 위한 예산이 정말 필요한 이들에게 정부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는 얘기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 이후 정부는 재정개혁과 혁신을 강조해왔다. 유사·중복사업을 대대적으로 통폐합하고 부정수급을 근절하기 위한 노력을 펼쳤다. 꼭 필요한 이들에게 돌아가는 예산마저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많았지만 정부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이렇게 한편에서는 예산을 쥐어 짜내면서도 최씨와 연관된 문화융성과 창조경제 사업 예산은 뭉텅이로 늘렸다.
2017년 예산안도 다르지 않다. 정부가 내년 예산안 가운데 뒤늦게 추려낸 최씨 관련 의혹 예산만 3569억8000만원에 달한다. 문화창조융합벨트 구축사업의 하나인 문화창조벤처단지 구축 및 운영 예산은 올해 390억원에서 내년 555억원으로 늘었고, 문화창조융합벨트 확산 예산도 81억원에서 86억원으로 증액됐다. 문화창조아카데미 조성 및 운영 예산은 올해 347억원보다는 줄었으나 309억원이 반영됐다.
◆"사회 약자 예산 쥐어짜 최씨 몰아준 꼴" = 반면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예산 중에는 제자리 수준에 머물거나 삭감된 항목이 많다.
나라예산네트워크가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빈곤으로 인한 가정해체와 고독사 등의 문제가 지속되고 있는데도 정부는 내년도 긴급복지예산을 올해 추경안보다 200억원 줄여서 편성했다. 긴급복지예산은 갑작스런 위기상황으로 생계유지가 곤란한 저소득 위기가구를 신속하게 지원하기 위한 사업이다.
취약계층 아동과 가족, 임산부의 사례관리를 통해 맞춤형 아동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드림스타트' 사업 예산도 10% 일괄 삭감 방침에 따라 66억8300만원 줄었다.
장애인 관련 예산도 줄줄이 깎였다. 저소득 장애인 의료비 지원액은 추경안보다 141억9100만원, 올해 본예산보다도 23억 9800억원이 삭감됐다.
또 중증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지원하기 위한 장애인활동지원 예산은 추경안 대비 55억8400만원 줄었다. 활동보조인 급여를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월 98만8000원으로 동결하고 인원마저 축소해 버렸다. 정부는 지방자치단체에서 보충적으로 시행하는 장애인 활동보조사업과 중복된다며 중장기적으로 정비하겠다는 방침이다.
박 대통령의 공약이었던 저소득층 기저귀, 조제분유 지원사업 예산마저도 130억원 삭감됐다. 거액의 불용액이 발생했다는 이유에서인데 나라예산네트워크는 공약과 달리 지원대상 요건을 지나치게 까다롭게 잡았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 소장은 "전체 예산 중에 신규 사업 예산은 얼마 되지 않아 특정 사업예산을 늘리려면 다른 사업을 줄일 수밖에 없다"며 "정부가 사회적 약자를 위한 예산을 쥐어짜내 최씨를 위한 예산을 몰아준 꼴"이라고 비판했다.
이와 관련 기재부 관계자는 "추경안이 늦게 처리되는 바람에 내년도 예산에 반영되지 못했다"며 "국회 심의 과정에서 저소득층과 장애인 관련 예산은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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