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왕산 스키장 예정지에 주목 대군락
2013-07-09 11:32:03 게재
하봉 연습코스에 100여그루 … 임도엔 수천마리 '은판나비' 대집단
11만그루 훼손에 121그루 이식 … 산림청 "나머지는 대부분 노쇠목"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알파인스키 활강경기장 건설이 추진중인 가리왕산 슬로프 예정지에서 주목 대군락이 확인돼 환경영향평가에서 큰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산과자연의친구'(우이령사람들) 김영호 현장조사위원장은 "최근 가리왕산 하봉능선 연습경기장 예정지에서 100여 그루에 이르는 대규모 주목 군락을 확인했다"며 "이런 중요 식생에 대한 보호대책 없이 '환경올림픽'이란 구호를 쓰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가리왕산스키장 환경영향평가서(초안) 요약보고서에 따르면, 슬로프 건설로 인해 총 11만 1636그루의 나무가 훼손될 것으로 추정된다. 강원도는 이 가운데 슬로프 노선상에서 53그루, 인접지 68그루 등 총 121그루의 나무를 옮겨심기로 했다.
산림청은 이식 수목은 옮겨 심은 후 생존률을 높일 수 있도록 높이 3~5m에 지름 14cm 이하의 '비교적 작은 나무'를 대상으로 선정했으며, 주목은 '최대한' 이식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임도 전체에 수천마리 '은판나비' 대집단 = 산과자연의친구 현장조사팀은 지난해 여름부터 가리왕산 스키장 예정지 내 식생조사를 진행중이다. 기자도 동행한 이번 식생조사는 1일차 하봉능선~연습코스, 2일차 하봉 아래 임도~남자 활강경기장 슬로프 예정지 순으로 진행됐다.
조사 첫날 가리왕산 임도 일대에서는 수천마리 이상으로 추정되는 '은판나비' 대규모 집단이 발견됐다. 가리왕산에는 해발 1000m 높이로 조성된 임도가 있는데, 은판나비는 전체 임도 구간에서 팔랑나비와 함께 무리지어 나타났다.
은판나비들이 집중적으로 모여 있는 곳엔 예외 없이 삵 똥으로 추정되는 동물 배설물이 있었다. 사람들의 왕래가 뜸한 탓인지 나비들은 확인을 위해 배설물을 나뭇가지로 헤치는 동안에도 날아가지 않았다.
은판나비는 앞날개 길이가 38~54mm에 이르는 아름다운 대형나비다. 연 1회 발생하며 나비 성충은 6∼8월에 나타난다.
유충은 느티나무·느릅나무 등의 잎을 먹으며 3령 애벌레 상태로 겨울을 난다. 한국 중부 이북의 산지, 러시아의 아무르강 우수리강 등에 비교적 넓게 분포하지만 이런 규모의 초대형 집단은 매우 드물다.
가리왕산스키장 환경영향평가서(초안) 요약보고서는 이런 중요한 사실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육상곤충 56과 144종이 조사되었다"(42쪽)고 간단히 서술할 뿐이다.
◆'병풍쌈' '연령초' '두루미꽃' 등 희귀 고산식물 군락 = 중봉과 하봉 사이 능선에서 숙암리 방향으로 내려가는 연습코스 상단(해발 1322m)에는 '병풍쌈' '연령초' '두루미꽃' '눈개승마' 등 희귀 고산식물 군락이 펼쳐졌다.
1305m 지점에서는 가슴높이지름 88cm와 125cm에 이르는 초대형 주목 두 그루가 발견됐다. 여기서부터 해발 1264m까지 100여그루에 이르는 대규모 주목 군락이 이어졌다.
이 일대 주목 군락의 특징은 지름 1m가 넘는 초대형 노거수에서부터 10cm도 안되는 어린 주목들까지 다양한 세대가 한꺼번에 나타난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묘목 상태의 주목들도 다수 관찰됐다.
김영호 현장조사위원장은 "소백산이나 태백산 설악산 지리산 등지의 주목 군락지들의 경우 노거수들만 있지, 대를 이어줄 후계목들이 자라지 않아서 일부 인공조림까지 하고 있다"며 "어린 나무와 장년층, 노거수까지 다양한 세대가 한꺼번에 나타나는 이곳 주목 군락은 가리왕산 스키장 예정지의 산림 생태계가 얼마나 건강한지 잘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날 연습코스 상단부 조사에서는 △신갈나무(직경 64cm, 76cm, 68cm) △산벚나무(직경 55cm) △음나무(직경 94cm) △분비나무(직경 51cm, 53cm) △사시나무(직경 45cm) 등 다수의 노거수와 '산작약' 군락(해발 1289m 지점)이 발견됐다.
◆산림청, 노거수들을 '노쇠목'이라 표현 = 조사 둘째날, 남자 활강경기장 슬로프 예정지인 하봉 하단 능선에서 지난해 8월 처음 확인했던 가슴높이지름 1.02m의 거대한 '들메나무'를 다시 만났다.
이 들메나무는 북한 평안북도 동림군에 있는 천연기념물 제70호 '동림 들메나무'(가슴높이지름 1.4m)에 버금가는 규모와 아름다운 수세를 보여준다. 일명 '가리왕산 할머니 산신나무'로 불리는데, '할아버지 산신나무'는 장군목이 능선 상단부에 있는 가슴높이지름 1.3m의 '신갈나무'이다.
산림청에 따르면, 가리왕산의 주요 식생 보전을 위해 중봉 정상 부근을 제외하는 등 총 7개의 슬로프를 변경했다. 하봉 능선에서 숙암계곡으로 내려가는 연습코스 하나도 시설하지 않기로 했다. 슬로프가 변경되면서 남녀 코스도 서로 바뀌었다.
문제는 이렇게 슬로프 변경을 해도 훼손이 불가피한 나무가 11만 1636그루에 이른다는 것이다. 산림청은 "주목, 분비나무, 전나무 등 보호가치가 있는 수종 121그루를 이식하기로 했다"며 "나머지는 주로 사스래나무나 참나무류로 전국적 분포가 많고 '노쇠목'이기 때문에 이식대상에서 제외했다"고 주장한다.
'가리왕산 보전과 환경동계올림픽 실현을 위한 대책위원회' 김경준 운영위원은 "가리왕산은 1차 유치신청 전부터 스키장 개발이 불가능한 유전자보호림이었다"며 "6월 28일자로 가리왕산 산림유전자원보호림 해제가 고시된 만큼 환경동계올림픽 구호도 거짓일 뿐"이라고 말했다.
산림청이 공식 보도자료에서 가리왕산의 노거수들을 '노쇠목'이라 표현한 것에 대해서도 큰 비판이 일고 있다.
여기에 대해 최병암 산림청 산림환경보호과장은 "노쇠목은 노령목과 고사목을 합친 말"이라며 "환경단체는 수령이 오랜 나무도 옮겨야 한다는데 예산이 많이 들고 기술도 확실치 않다. 개인이나 기업·단체 등에 분양도 하려 하지만, 안되면 베어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향후 복원 계획에 대해 최 과장은 "강원도는 계속 스키장으로 사용하려 하고 환경단체와 산림청은 복원이 원칙"이라며 "복원보다 활용이 이익이라는 게 명확하면 사후 활용도 할 수 있다는 여지를 뒀다"고 덧붙였다.
정선 가리왕산 = 글·사진 남준기·정연근 기자
남준기 기자 namu@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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