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한반도 군사·안보 구조 재정립할 적기다

2026-02-03 13:00:02 게재

탈냉전 이후 지난 30여 년간 국제질서는 미국 주도의 규칙에 기반해 작동해왔다. 미국은 동맹에 군사·경제력을 제공하는 공급자였고, 동맹국들은 그 틀 안에서 안정과 번영을 추구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는 2017년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점차 변화를 나타내기 시작했고, 지난해 12월과 올해 1월 연이어 발표된 트럼프 2기 행정부 국가안보전략(NSS)과 국방전략(NDS)을 통해 일대 전환점을 맞았다.

두 전략서의 공통된 메시지는 명확하다. 미국은 본토 방어와 국익을 최우선 목표로 설정하고, 동맹에 더 이상 포괄적 공여국 역할 대신 ‘비용 분담’과 ‘책임 전가’를 전제로 한 거래적 동맹 모델로 전환을 선언했다. 특히 선택과 집중 원칙에 따라 중국을 최우선 전략적 경쟁자로 규정하고, 미국의 패권적 지위와 핵심 이익이 위협을 받을 경우, 단호한 ‘거부(denial)적 억제’로 대응하겠다는 구상을 분명히 했다.

이에 따라 미국은 동맹국에 자국 방위의 1차적 책임은 물론 집단방위 차원의 역할 확대를 요구한 반면, 제한적·선별적 지원으로 조정하였다. 그 결과 한미동맹의 역학구조 역시 ‘한반도 방위의 한국 주도·미국 지원’, ‘인도-태평양에서의 한국 역할 확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강화’라는 방향으로 재편되고 있다.

과거 규칙과 현재 규범이 충돌하는 한반도

이에 대한 우리 정부의 반응은 비교적 차분하다. 이는 지난해 제57차 한미안보협의회의(SCM)와 양국 정상회담을 통해 이미 큰 틀의 공감대를 형성한 결과로 보인다.

국방비의 GDP 대비 3.5% 증액, 한국 주도의 한반도 방위, 주한미군의 계속 주둔과 방위공약 유지, 전작권 전환을 위한 한국군의 핵심 역량 강화, 확장억제의 지속 제공 등이 그 핵심이다.

다만 국민 여론은 안보 공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전작권 전환은 이미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 '전작권 전환 이후 연합방위지침'을 통해 미래연합방위구조가 합의된 사안이다. 또한, 동맹의 현대화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확대에 국한된 개념이 아니라 미국의 여타 동맹국에도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흐름이다. 또한, 북한 비핵화 문제 역시 향후 미국의 ‘핵태세검토보고서(NPR)’에 구체적으로 반영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한미동맹의 급격한 해체가 아닌 관리 가능한 안정적 변화를 겪고 있는 만큼, 과도한 불안보다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한반도에서는 과거의 ‘규칙(rule)’과 현재의 ‘규범(norm)’이 충돌하고 있다. 이는 1953년 정전협정이라는 군사적 규칙, 트럼프 행정부의 현실주의적 대외전략, 그리고 이재명정부가 지향하는 적극적 평화 구상 사이의 긴장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미국의 한반도 정책은 여전히 ‘전쟁의 부재’를 목표로 하는 소극적 평화에 머물러 있다. 반면, 이재명정부는 전쟁의 구조적 원인을 제거해 항구적 평화를 구축하려는 적극적 평화를 지향한다.

최근 '비무장지대의 보전과 평화적 이용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안'을 둘러싼 유엔군사령부와의 마찰은 정전협정의 원형과 변용에 있어 경직된 규칙과 확장하고자 하는 평화 규범이 충돌한 상징적 사례다. 전략의 성공은 목표·방법·수단의 균형에 달려 있다.

동맹 역시 책임과 권한의 균형이 필수적이다. 미국이 본토 방어와 국익을 최우선 목표로 삼듯,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는 대한민국의 최우선 전략목표다. 군사적 논리만으로 냉전적 구조를 평화적 질서로 전환할 수 없다. 한국의 방위책임과 함께 안보주도권이 병행되어야 하는 이유다.

한국 방위책임과 함께 안보주도권 병행돼야

미국의 새 국방전략에는 엘브리지 콜비 국방부 정책차관의 구상이 상당 부분 반영된 것으로 평가된다. 콜비는 최근 방한 연설에서 “동맹은 정렬된 이해관계, 공유된 리스크, 비례적 기여, 상호 이익에 기초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기준에 비춰볼 때, 한미가 전략적 조율에 나선다면 한국의 안보주도권을 확대할 여지는 충분하다. 우리는 지난 70여 년간 동맹에 과도하게 의존한 결과 정전체제의 고착화를 자초했다.

이제는 축적된 경제력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한반도 안보의 주도권을 회복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미국의 새 전략은 우리에게 도전이자 기회이다. 지금이야말로 걱정보다 전략적 결단으로 한반도의 군사·안보 구조를 균형 있게 재정립할 시점이되었다.

임명수 이화여대 특임교수 안보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