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위헌 법률 방치하는 직무유기 국회

2026-02-03 13:00:01 게재

국회가 위헌 결정이 난 법률을 고치지 않고 내버려 두는 사례가 너무 많다. 헌법재판소가 지정한 개정 시한이 지난 법도 4건이나 된다. 가장 앞장서서 국민을 보호해야 할 대표기관이 외려 국민 권익을 침해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사실상 자기들이 법을 잘못 만들어 위헌 결정이 났는데도 책임 의식이 없다.

헌법재판소가 위헌이라고 결정했지만 국회가 방치하고 있는 법은 2일 현재 28건에 이른다. 위헌 16건, 헌법불합치 12건이다. 위헌 법률은 판결 즉시 효력을 잃는다. 헌법불합치도 위헌이기는 마찬가지다. 다만 즉각적인 무효화에 따르는 사회적 혼란을 막기 위해 개정할 때까지 한시적으로 그 법을 존속시키는 결정일 뿐이다.

국민 보호해야 할 대표기관이 외려 국민 권익 침해

위헌 법률 방치로 피해를 본 시민이 숱하게 나온다. 낙태한 여성과 의사를 처벌하는 형법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형법 조항은 7년여간 입법 공백 상태다. 헌재는 2019년 형법의 해당 조항에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아울러 2020년 말까지 법 개정을 권고했다. 하지만 국회는 온갖 핑계를 대며 아직 논의만 하고 있다.

표를 의식한 국회의원들이 위헌 법률 개정을 강하게 반대하는 보수계층의 눈치를 본다는 얘기가 들려온다. 여성들과 의료 현장, 수사기관만 혼란을 겪는다. 불법 임신중지 약물 유통과 그에 따른 부작용이 만만찮다. 국회가 생명권과 여성 건강권 관련 입법을 장기간 방치하는 것은 국민을 우롱하는 행위다.

미혼부(未婚父) 출생신고법 미비로 ‘유령 아동’을 만든 사례가 수백 건에 달한다. 이런 ‘미신고 아동’은 건강보험 혜택과 아동수당 같은 기본적인 복지 체계에서 배제된다. 어린이집에도 가지 못한다. 최근 1차 민생회복 소비쿠폰 지급 대상에서 미혼부 자녀가 제외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미혼부의 출생신고에 차별을 둔 현행법은 2023년 위헌 결정을 받고도 지난해 5월까지인 개정 시한을 넘겼다. 출생신고를 할 수 없던 미혼부에게 2015년 이를 조건부로 허용하는 속칭 ‘사랑이법’이 만들어졌으나 장벽이 너무 높아 실효성이 떨어진다. 유전자 검사 등 복잡한 요건을 충족해야 하기 때문이다. 심각한 저출산 인구감소 위기에 처한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패륜적 행위자를 상속인에서 빼도록 민법을 고쳐야 하는 일도 국회가 손을 놓고 있다. 개정 시한도 지난해 말로 지나버렸다. 상속 체계에 일대 변화를 불러올 배우자·직계존비속 유류분 조항의 개정이 지연되면서 재산권 행사에 혼란이 초래될 수밖에 없다. 틈을 노린 기습 상속이 가능해져 법조계도 혼란스러워 한다.

시급한 국민투표법 개정 역시 12년째 이뤄지지 않아 중대 현안인 개헌의 장애물로 떠올랐다. 재외국민의 투표권을 일부 제한하는 조항이 개정되지 않아 국민투표를 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개헌에 합의하더라도 국민투표법을 먼저 고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헌법재판소는 2014년 국내 거소 신고가 된 유권자만 투표할 수 있도록 하는 법 조항이 재외국민 투표권을 침해한다면서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와 함께 2015년 말까지 법 개정 시한을 정했다. 국회는 지금까지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 국민투표법 개정이 이토록 지연된 배경에는 여야의 극한 대립이 똬리를 틀고 있다.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 동시 실시라는 잠정 목표도 이뤄지기 어려울 것 같다.

야간 옥외집회 금지와 관련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은 최장기 입법공백 사례로 남았다. 진보·보수 진영의 생각이 첨예하게 갈려 17년 가까이 논의가 겉돈다. 탄소중립기본법 개정도 현안 가운데 하나다. 헌재가 올해 2월 28일로 정한 법 개정 시한은 지키기 어려워졌다. 헌재는 2년 전 2031~2049년 국가온실가스 감축 경로 미규정을 이유로 탄소중립기본법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경제계 원성으로 법 개정이 이루어질지 의심스럽다. 기후위기 부담은 미래세대가 떠안게 됐다. 기후 헌법소원을 제기한 주체가 청소년과 영유아들이었다.

국회를 강제할 수 있도록 법제화해야 한다는 목소리 높아

위헌 법률 미개정은 단순한 입법 지연이 아니다. 헌법이 부여한 책무를 저버린 국회의 직무유기다. 여야가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민감도가 낮은 위헌성 법률을 정비하는 데 적극 나설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더 큰 문제는 위헌 법률을 방치해도 책임을 지울 수 없다는 점이다. 헌재의 법 개정 권고가 법적 강제성이 없어서다. 법조계에서는 국회를 강제할 수 있도록 법제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 법제화조차 국회 스스로 해야 하는 제도가 또 다른 장벽이다. 국회의 성실성을 기대할 수밖에 없어 답답하다.

김학순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