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천하의 로펌도 예측 못한 ‘주병기 효과’
공정거래위원회가 롯데렌탈과 SK렌터카의 기업결합을 불허하자 재계와 로펌들은 깜짝 놀랐다. 대부분 ‘조건부 승인’을 예측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두 업체는 업계의 쌍두마차다. 합병되면 렌터카시장의 38.3%(장기렌터카·단기는 29.3~21.3%)를 장악한다. 하지만 나머지 시장을 점유율 1~2%의 수십개 영세업체나 경쟁력이 없는 캐피털 회사가 차지해 실제론 독점폐해가 우려된다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기업결합 신청자를 대리한 두 대형로펌은 다르게 전망했다는 후문이다. 롯데렌탈의 매각이 롯데그룹 구조조정의 핵심이란 이유에서다. 로펌들은 공정위가 산업계에 미칠 후폭풍을 고려해 ‘조건부 승인’을 내릴 것으로 봤다. 예측을 벗어난 공정위 판단에 주병기 공정위원장의 원칙적 입장견지가 상당한 역할을 했다고 한다. 합병을 불허하면 롯데의 매각이 늦춰지는 부담을 감수하면 되지만, 승인하면 독점 폐해를 소비자들이 그대로 떠안아야 한다는 논리였다고 한다.
공정위가 독과점 폐해 예방과 소비자 후생을 최우선해 판단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정부조직법상으로나 공정거래법상으로나 그게 공정위의 존재이유다. 하지만 그동안 공정위는 대형 합병사례 때마다 국민보다는 ‘산업 논리’에 편향돼 판단해왔다.
최근 사례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이다. 2022년 당시 공정위는 국내·국제노선 40곳이 경쟁제한 우려가 있다면서도 ‘조건부 승인’을 결정했다. 아시아나항공의 구조조정이 시급하다는 ‘정재계 논리’를 수용한 영향이 컸다.
두 항공사는 EU 등 해외 경쟁당국 심사를 거쳐 2024년 말 합병됐다. 공정위는 기업결합 승인 당시 “소비자 후생이 약화되지 않도록 강력한 조건을 부과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대한항공은 합병 1년도 못돼 인기가 낮은 노선의 좌석수를 규정(90% 유지) 이상으로 줄이거나 요금을 지나치게 인상해 2번이나 공정위 제재를 받았다. 한번 독점체제를 허용하면 결국 그 부담은 국민과 소비자, 중소기업으로 옮겨간다는 엄혹한 시장의 민낯을 보여준 셈이다.
‘렌터카 기업결합 불허’ 이후 공정위와 주병기 위원장에 대한 음해와 루머가 난무한 모양이다. 재계를 중심으로 “기업현실을 무시하고 국익을 해치고 있다”는 식의 비난이다. 일각에선 이런 비판여론을 정치권에 전달하며 여론전을 펴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그렇다면 공정위가 소비자 권익보다 기업 이익을 우선해 판단하고 정책을 추진해야 합리적인 것일까. 동의하기 어렵다. 나아가 주 위원장의 ‘더 용기 있는 결정’을 응원한다. 정부부처에서 그나마 ‘경제약자의 권익을 대변할 조직’인 공정위라도 제 역할을 해야 대한민국 균형발전이 가능하다고 믿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