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산책
과학을 정치가 해석할 때
지난 1월 7일, 미국 보건복지부와 농무부는 새로운 ‘식생활지침(DGA, Dietary guidelines for Americans) 2025–2030’을 발표했다.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Robert F. Kennedy Jr.) 보건복지부 장관과 브룩 롤린스(Brooke L. Rollins) 농무부 장관이 공개한 식이 지침 슬로건은 단순했다.
“Eat Real Food, 진짜 음식을 먹어라.”
정부는 거꾸로 된 새로운 식품 피라미드를 내놓았다. 위쪽에는 고기와 유제품, 지방이 자리 잡았고, 곡류는 아래로 내려갔다. 메시지는 분명했다. 이는 기존 ‘곡류 기저’ 피라미드와 상징적으로 결별하는 선언이었다.
새 지침의 핵심은 단백질 우선이다. 성인 하루 단백질 섭취량을 체중 1kg당 0.8g에서 1.2~1.6g으로 대폭 상향했다. 매 끼니마다 고품질 단백질을 먹으라고 권한다. 흥미로운 건 김치가 이 지침에 명시됐다는 점이다.
그런데 문서를 자세히 읽으면 고개가 갸웃해진다. 포화지방은 여전히 전체 열량의 10% 이내로 제한하라고 하면서, 동시에 전지방 우유(whole milk), 버터와 붉은 고기를 강조한다. 제한하라면서 먹으라는 말이다. 하나의 지도에 서로 다른 방향표가 동시에 꽂혀 있는 셈이다. 그리고 동시에 초가공 식품을 피하라는 말이 눈에 띈다.
하나의 지도에 서로 다른 방향표 같은 지침
마틴 마카리(Martin A. Makary), 미국 식품의약품안전처 위원장은 새로운 식단 가이드라인을 발표할 때 “이 날은 영양에 대한 낡은 교조의 종말”이라는 말과 함께 “우리는 수십 년간 속아왔다. 오늘이 그 음모의 종말이다”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과거의 지침들은 모두 산업계와 의학계의 음모론이며, 초가공 식품이 인류의 적으로 밀어붙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마땅찮은, 과학적이지 못한 단어,' real food'라는 것의 대척점이 무엇인지 대충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2015~2020, 2020~2025 DGA에는 초가공식품의 언급은 없었다. 초가공(ultra-processed), 고도가공 (highly-processed) 식품이 이제 단순한 “제한 대상”이 아니라 “공중보건의 위험 요소”로 표현한 것이다.
결국, 먹으라는 ‘진짜 식품(real foods)’의 반대편에 있는 가짜 식품의 중심은 초가공 식품이라는 자연적 매칭이 이루어진다.
이 논리를 밀고 나가면, 건강기능식품은 독극물이 된다. 초가공 식품의 범주에는 어떤 식품이 있는지도 모호한데, 총구는 초가공 식품으로 향했다. 가공 식품역시 인류가 수천 년 동안 이루어온 과학 문명의 산물이다. 과학을 정치가 해석하고 있다.
이번 지침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도 논란을 낳았다. 원래 미국의 영양지침은 전문가 위원회(DGAC, Dietary Guidelines Advisory Committee)가 수년간 연구와 공개 토론을 거쳐 보고서를 만들고, 정부는 이를 바탕으로 최종안을 작성해 왔다. 즉 위원회는 과학 보고서 작성까지를 담당하며, 정책 문서화는 정부팀의 몫이다.
DGA가 채택된 이후 위원회 내에서도 반발이 있었고, 의학분야와 영양학계에서도 반발이 심했다.
증거가 아니라 개인적 신념에 따라 건강한 지방을 재정의한 것이라고 말이다. JFK Jr.와 마틴 마카리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의 행보는 기존의 ‘주류 의학계 및 산업계’를 기득권 세력으로 규정하며 대중의 불신을 동력으로 삼는 포퓰리즘으로 정치해온 사람들이다. 주요한 도구는 음모론이며 과학적 증거보다 신념과 서사가 앞선다.
우리나라 식생활지침은 단순한 권고문 작성이 아니라 법적 기반에 따른 공식적 제도이다. 이는 국민영양관리법을 근거로 한다. 보건복지부, 농림축산식품부,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함께 협업하여 작성하며, 5년 주기로 지침이 만들어진다. 우리나라는 한국인의 식생활 문화와 일상 개선을 중심으로 한 ‘식습관 권고서’다. 미국은 영양 정책문서로 연방 영양프로그램의 기준으로 구속력이 더 있어 보인다.
포퓰리즘은 식품도 오염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식단이 서구화 된 이후부터 미국의 영양지침은 알게 모르게 우리나라의 지침에 영향을 주게 될 텐데, 이번 미국의 지침이 2026년 우리나라의 식생활지침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궁금하다. 영양지침은 결국 우리의 몸 위에 그려지는 지도다. 그 지도가 흔들릴 때, 우리는 더 천천히 읽고, 더 조심스럽게 따라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