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수 가지치기

'닭발 가로수'에서 '함께 사는 나무'로

2021-04-19 14:21:25 게재

머리·몸통 자르기 등 '강전지' 법으로 금지해야 … 지자체별 '가로수위원회' 만들자

"굵은 나무줄기를 베어내면 세균이 침투하기 쉬워지고 잘린 면이 썩어 나무가 갑자기 쓰러질 수도 있다. 잘린 면에서 자라나는 가는 가지들은 굵은 가지보다 더 빨리 자라기 때문에 전기줄을 건드릴 위험이 높다. 결국 더 자주 가지치기를 해야 한다."

서울역사박물관 플라타너스들. 강전정으로 이른바 '닭발나무'가 된 상태다. 도로변 플라타너스들은 모두 잘려 작은 느티나무들로 바뀌었다. 사진 남준기 기자


서울환경운동연합이 최근 '가로수를 지켜주세요'란 제목으로 모금을 시작했다. 가로수 이야기를 알리기 위한 캠페인을 진행하고, 과도한 가지치기가 계속되는 원인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서다.

서울환경연합은 도시에서 더 이상 과도한 가지치기를 당하는 가로수가 없도록 올바르고 적절한 가로수 가지치기 매뉴얼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청주교육대학교 정문의 플라타너스 나무. 청주 지역의 플라타너스 길들은 유명한데 이는 지역의 자긍심으로 작용한다. 사진 최수경 제공


시민단체 '가로수를아끼는사람들' 조사 결과, 2013년부터 2017년까지 가로수와 관련된 민원의 94%가 가로수를 자르고 베어달라는 내용이었다. '간판을 가린다' '일조권을 방해한다' '병충해가 심하다' '열매에서 냄새가 난다'는 등의 이유로 나무를 베어달라고 한 것이다.

많은 가로수들이 굵은 나무줄기까지 가지치기를 당하는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과도한 가지치기가 가로수를 죽인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대전-금산 간 플라타너스 거리. 과도하게 성형된 모습에서 고통이 전이되는 듯하다. 사진 최수경 제공


내일신문 인근 경희궁공원에 가슴높이지름 1미터가 넘는 큰 버드나무가 있었다. 수령 100년 가까이 되었던 이 버드나무는 이제 밑둥만 남기고 사라졌다.

몇해 전 여름 줄기 하나가 부러져 나무 아래 벤치를 덮쳤다. 다친 사람은 없었다. 공원관리소는 안전을 위해 버드나무 원줄기만 남기고 가지를 깨끗하게 잘라냈다. 잎이 없어 광합성을 못한 버드나무는 잔가지를 열심히 내밀며 버텼지만 2년 후에 죽었다. 결국 밑둥까지 잘라내야 했다.

◆아예 기둥만 남은 가로수들 = 페이스북 '가로수 가지치기 시민제보 프로젝트'를 보면 이런 사례가 수두룩하다.

분당 오리역 3번출구 앞의 느티나무 가로수들. 이 정도면 '두절(머리자르기)' 수준을 넘어 '체절(몸통자르기)'에 해당한다. 사진 가로수를아끼는사람들 제공

경기도 성남 분당 오리역 3번출구 앞 느티나무 가로수들은 아예 기둥만 남았다. 나무 원줄기만 남기고 머리 부분을 썩둑 잘라내는 것을 '두절(頭切 : 머리자르기)'이라고 한다. 이 느티나무들은 두절이 아니라 아예 '체절(體切 : 몸통자르기)'을 당했다.

서울 회기역 인근 어느 상점 앞 벚나무는 사람 키보다 작게 모든 가지가 잘려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다. 게시자는 "나무를 찾아보세요"라는 제목을 달았다.

대전-금산을 잇는 옛 국도의 플라타너스 가로수들은 전기줄을 피해 과도한 가지치기를 해서 등이 90도로 굽은 할머니 같은 모습이다.

게시자 최수경 금강생태문화연구소장은 "이 도로는 플라타너스가 지붕을 이루는 거리로 '아름다운 거리숲'에 선정됐다"며 "그러나 아름다운 녹음터널을 위해 과도하게 성형당한 나무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안양 범계역 앞 은행나무들은 모두 전신주처럼 몸통만 남았다. 한 나무 밑둥엔 자전거나 오토바이 보관용으로 보이는 쇠사슬이 칭칭 감겼다. 나무 몸통엔 '금연구역' 안내판을 못으로 박아놓았다.

게시자는 "한 나무에게 일어난 끔찍한 범죄를 보고서도 아무 감정이 안 느껴지는지" 물었다. 그룹 관리자로부터 "올해 최악의 가로수"라는 대답이 나왔다.

서울 홍대입구역 거리의 느티나무. '머리치기'와 '가지터기' 전정의 전형을 보여준다. 아래 가지는 이미 썩어들어가고 있다. 사진 가로수를아끼는사람들 제공

◆'수관폭 목표' 명시하는 나라들 = 가로수나 도시공원 안에 있는 나무를 보호해야 한다는 법과 규정은 넘쳐난다.

△산림자원의 조성 및 관리에 관한 법률 △도시숲 등의 조성 및 관리에 관한 법률 △가로수 조성 및 관리 규정 △도시림 기본계획 △지자체의 가로수 조성 및 관리 조례 등등. 이런 법규가 있지만 '머리자르기' 등의 '강전지(강한 가지자르기)'를 막는 데에는 전혀 효과가 없다.

서울 마포구에는 '과도한 가지치기 금지 조례'가 있지만 홍대입구역 앞의 가로수 상태를 보면 있으나마나다.

경기도 고양시에도 '나무권리선언'이 있지만 강전지된 가로수들이 수두룩하다. 최근 일산 풍동 쌍용아파트 입구에서 30~60년생 왕벚나무 40그루가 싸그리 벌채되기도 했다.

도로법 상 가로수는 그냥 설치물이다. 산림청도 임업생산물로만 여기지 나무를 생명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가로수를 심을 때부터 수종 선택을 엉망으로 하니 당연히 제대로 된 관리가 불가능하다.

김레베카 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 연구원(환경사회학 박사과정)은 "하루 빨리 강전지를 절대 못하도록 법으로 금지하는 것이 유일한 대안"이라며 "가로수를 심을 때부터 지자체와 가로수위원회, 전문가들이 함께하는 협의체 구조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 연구원 사례연구에 따르면 해외 녹지 선진국들은 공유지와 사유지를 가리지 않고 행정구역 안에 있는 모든 나무를 공유자원으로 관리한다. 내집 마당에 있는 나무도 함부로 자르지 못한다.

서구 선진국들은 그냥 녹지비율을 늘리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가로수의 경우 UTC(urban tree canopy), 즉 '나무의 수관폭 비율'을 늘리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도시의 녹지확충 계획에 반드시 명확한 수관폭 목표를 명시한다.

호주 멜버른은 2040년까지 전체 도시면적의 40%까지, 미국 워싱턴주의 스포캔시는 2030년까지 수관폭 비율을 40%(현재 23%)로 높이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김 연구원은 "가장 중요한 것은 가지치기와 관련된 업체들과 산업 규모 자체를 줄이는 것"이라며 "또 강전정이 약전정보다 더 비싼 품셈단가 구조도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자체 관련 업무 담당도 아보리스트(수목관리전문가) 등 전문인력으로 대규모 보강할 필요가 크다. 특히 가로수를 지역 주민들과 함께 건강하게 가꾸는 쪽으로 업무 구조를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시민 일자리도 늘리고 가로수도 아름답게 가꾸는, 환경과 경제를 모두 잡을 수 있는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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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준기 기자 namu@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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